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로 찾는 민주노총의 선택… 일방적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은 거대한 저항 불러
민주노총이 ‘변화’를 선택했다. 현장의 뜨거운 관심과 중요성을 반영하듯 91.7%라는 높은 대의원 참석률 속에 치러진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이수호 후보의 54.8% 득표라는 비교적 큰 표차로 승부가 갈렸다. 대의원들은 ‘민주노총의 변화와 혁신’ ‘또 다른 민주노총’을 원했다.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은 이수호 새 집행부가 3년간 민주노총 노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리고 노-사, 노-정, 노-사-정 관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전투성 약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
벌써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이번 선거를 ‘온건파의 승리’ ‘새 집행부가 곧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 ‘투쟁보다는 대화에 주력할 것’이라는 식의 주관적 희망을 담은 전망을 쏟아내면서 대타협과 무분규, 상생의 노사관계를 이후 민주노총의 변화 방향으로 주문하고 나섰다. 정부 또한 한술 더 떠서 분석자료를 통해 대정부 관계와 전투적 조합주의, 장외투쟁 방식의 변화를 전망하면서 전투성 약화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이 선택한 변화가 과연 언론과 정부가 기대하는 그런 식의 변화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의 성급한 접근으로는 그들이 바라는 민주노총의 변화와 노사관계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후 이수호 새 집행부의 변화 방향을 전망해보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의 쟁점과 진행 양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수호-유덕상 양 후보 진영은 공약과 정책토론 과정에서 교섭과 투쟁노선의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냈지만, 그동안 전노협부터 이어지는 민주노조운동의 정통성과 성과를 계승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여기서 대의원들은 당위적 총파업 남발, 현란한 투쟁 구호 속에 조합원을 대상화하는 사업 방식에 비판적 입장을 나타냈고, 대화와 교섭을 개량과 굴종으로 매도하면서 터부시하는 관념적 맹동주의에 등을 돌렸을 뿐이다. 그동안의 투쟁 자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노총 투쟁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나아가 진정한 ‘노동자의 힘’은 기존 방식대로의 강경투쟁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통해, 즉 조합원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대중 투쟁노선과 지도부의 책임지는 자세, 내부 조직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의원들은 무원칙한 변화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자존심을 지키는 변화,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는 절제된 변화를 요구했다.
유덕상 후보를 지지한 44.9%는 여전히 지금 이대로의 민주노총을 원했다. 즉, 아무도 보수언론과 정부가 희망하는 그런 식의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후 민주노총의 변화는 외부의 호들갑과는 달리 내부 혁신 및 시스템 정비를 중심으로 일단 진행될 것이고, 외부적 변화는 더욱 신중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 여부와 자본의 태도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번 선거결과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노사정위원회 참여 등 교섭과 투쟁방식의 변화 여부보다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모색과 역할 변화’ 등 내용적 측면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수호 신임 위원장은 새로운 정세 변화와 도전에 맞서 노동운동의 질적 전환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수호 위원장은 기존의 수세적·방어적 투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 공세적 노동운동론’을 정립하고, 시장과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보수 담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임기 내 준비된 총파업 투쟁은 노동자 ‘인간선언’을 한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정치선언’을 한 1996~97년 노동법 총파업 투쟁에 이어 또 하나의 역사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대중 중심 활동 통해 파괴력 극대화
그리고 노동운동의 역할을 협소한 공장과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1500만 노동자 계급과 국민들이 함께하는 사회적 의제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기업별 임단협 투쟁을 넘어 사회개혁·사회 공공성 투쟁을 적극 전개하고, 산별교섭, 사회적 교섭 등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를 확보하여 주요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4·15 총선에서 노동자 후보 의회 진출을 통한 정치세력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민주노총의 이런 새로운 모색은 대중 중심의 활동 노선을 강조해온 집행부가 들어섬으로써 이전보다 안정된 집행력과 내부 민주주의 강화로 사업 추진에 훨씬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통적인 투쟁 구심인 제조업과 함께 전교조·공무원노조·운수·보건의료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약진이 예상된다. 한편 새 집행부는 기존 ‘국민파-중앙파-현장파’라는 불분명한 경향성 중심, 인맥 중심의 정파운동 구도와 내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더 큰 단결로 가는 내부 통합을 과제로 안고 있다.

이제 공은 정부와 사용자에게로 넘어갔다. 민주노총이 선택한 변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정부와 사용자는 노사관계의 기본이 대립과 갈등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 노조의 역동성을 사회 민주주의 발전과 평등·연대·노사관계 발전 등 사회적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지나치게 대립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대립적일 수밖에 없는 노사관계를 풀어가는 국정 철학과 노동정책, 교섭구조 등 법과 제도, 사회연대 의식이 ‘지나치게 빈곤’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민주노총의 변화를 바라기 전에 왜 지금의 노동운동이 전투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이번 선거기간에 제기된 민주노총 기존 투쟁노선에 대한 내부 비판이 곧바로 정부와 자본의 잘못된 노동정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온건파의 승리=투쟁성의 약화=파업 없는 노사관계 개막’이라는 식으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한국적 노사관계에서 민주노총 내부의 온건과 강경은 대외적으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전투성을 키우는 데 일등공신이고 한국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반성과 변화 노력은 없이 민주노총의 변화 선택을 투쟁을 안 할 것으로 오해(?)해서 환영하고 나서는 모습은 한편의 슬픈 코미디다.
과연 선진적 노사관계의 적은 누구인가
지금처럼 정부가 누구를 위한, 어디를 향하는 이정표인지 모를 ‘노사관계 로드맵’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지속하는 한, 또 사용자들이 기업가 정신을 망각하고 자본의 불법적 비자금 조성과 불투명한 경영, 노조 탄압과 부당노동 행위를 계속하는 한 민주노총의 변화는 더 강력한 저항과 연대 투쟁일 뿐이다.
파업을 사회 혼란으로만 바라보는 전근대적 노사관이 바뀌고 국제 수준의 노동3권이 보장되고 산별교섭과 사회적 교섭 등 열린 교섭문화가 확보될 때 비로소 한국의 노사관계는 민주노총의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변화가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의 자성과 변화이다. 올해 상반기 노동현장의 주요 쟁점인 주5일제 시행, 비정규직 대책, 산별교섭, 연금제도 개선,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등에서 정부와 자본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해본다.
이주호/ 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기획국장 zoo@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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