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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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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설명하려면 깁~니다

등록 2006-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연세대 교환과정에서 어울리는 ‘자이니치’들은 왜 모임의 이름을 못 정했을까…조선적·한국적·일본적, 하나부터 열까지 개인사 들어야 정체성 알 수 있다네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오인제(23), 장규수(26), 김석봉(22), 김성규(22), 김수영(24)씨는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이다. 부모님도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그들은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하는 조선학교를 나와 일본의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들은 한국인이지만 일본말이 자연스러운 경계인이다. 이들은 지난해 1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을 했다.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다.

한국 친구들에게 서글픔을 느끼다

현실에서 이들은 어느 사회에도 귀속되지 못했다.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를 한국 친구들에게 묻고자 ‘재일동포에 대한 설문조사’도 했다. 이 조사는 결과를 얻기보다도, 재일동포에 대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자신들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은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겪은 일들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은 일본에서 온 친구들을 다른 한국친구들에게 “일본 사람”이라며 소개했다. 그리고 한-일 축구경기가 열릴 때 어느 쪽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한국을 응원한다고 대답했는데 질문한 친구는 아주 신기해했다. 그들은 그럴 때마다 한국 친구들에게서 서글픔을 느꼈다. ‘한-일 교류파티’에 갔을 때도 그랬다. 즐기자고 간 파티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 자리가 나뉘어져 있었을 때 “재일동포인 나는 대체 어느 쪽에 앉아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일동포로서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이고 나니 모임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었다. 이들은 조선적·한국적·일본적으로 각기 다른 개인사를 가지고 있었고 모임을 규정하는 일은 힘들었다.

7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에 간 안인주(22)씨가 재일동포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이 한국인으로 일본 영주권자이지만 일본에서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우리’에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친구들과 공감하는 바도 크다.

스즈키 미야코(23)씨와 요시다 미네(23)씨는 둘 다 일본 국적을 지니고 있지만, 어머니들은 원래 재일동포‘였다’. 그러나 치마저고리를 입고 통학할 때 전철에서 날계란 세례를 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도 상처지만, 일본인과 결혼해 낳은 자녀들이 일본 사회에서 받을 차별을 피하기 위해,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귀화의 길을 택했다. 딸들은 재일동포를 차별하는 일본 사회가 싫다며, 어머니의 나라를 배우러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길 자청했다. 물론 자신들의 반쪽인 ‘재일’ 의식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김사야(23)씨는 끊임없이 욕을 듣고 자랐다. 북-일 관계가 나쁠 때는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김씨라고 욕을 듣고, 대포동 미사일 사건 때는 심하게 놀림을 받았다. 김석봉은 어머니가 파트타이머 수입을 가계에 보태기 위해 리명숙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하야시 아야코’라는 이름으로 일을 얻어야 했다.

“통일국적을 갖고 싶어요”

이렇게 다양하니 혼란스러운 건 당연. “우리는 같은 ‘자이니치’면서 모두 다르게 인식되고 불립니다. 또 자이니치라는 공통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개인사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다양한 정체성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자이니치의 정체성이 통일되는 날’, 우리 모임의 이름도 지을 수 있을 겁니다.” 대표 오인제(리쓰메이칸대 국제관계학부)의 말이다.

이들은 일본에서는 차별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오해받으며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맛보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풋살’이라 불리는 약식 축구경기가 열렸을 때의 일은 잊을 수 없다. 국제학사의 재일동포 친구들이 한 팀으로 뭉쳐, 결승전에서 연세대 학생들과 마지막 승부를 벌일 때였다. 숨가쁘게 작전을 짜면서 이들은 그냥 편한 대로 일본어를 썼다. 그때 응원석에서 야유가 튀어나왔다. “황당했지요. 우리한테 ‘어이, 고이즈미~’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널리 퍼진 몇 가지 잘못된 상식은 꼭 바로잡았으면 한다. 특히 ‘한국(적)’이 아닌 ‘조선(적)’은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쪽기사 참조). 학교 국제교류원의 한 담당자가 교환학생 중 ‘조선(적)’으로 온 오인제씨와 김석봉씨에게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개최된 북한과 일본의 월드컵 예선경기 결과를 화제로 꺼냈을 때다. 그러고는 “북한이 져서 안됐다”는 말을 건네왔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적=북한 사람’으로 인식해서다. 이럴 때 이들은 그게 아니라고 얘기는 해야겠는데, 설명하자면 길어서 고민하다가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같은 교환학생으로, 생후 2개월부터 부친의 일로 일본에 건너가, 현재 게이오대 3학년생인 한국적의 김성원(21)씨도 재일동포 친구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함께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뼈와 살>이라는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수업 시간에 담당교수가 ‘재일’이란 단어 밑에 조선인과 한국인을 남과 북으로 구분하는 것을 보고, 조선이 북의 개념이 아니라 ‘분단 이전의 조선’이라고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오인제씨는 연세대 ‘일본 현지 사정’이라는 수업 시간에 ‘재일 조선인 차별 문제’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토론 중에 한 여학생에게서 “그렇게 살기 힘든데 왜 귀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차별이 일본 정부와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본국 한국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다. 오인제씨는 그 원인으로 ‘재외동포법’을 든다. “이 법은 재미동포 해외투자를 위해 만들어져 조선적, 고려인은 다 배제된 법이잖아요. 물론 재일 한국인 ‘조선적’ 소유자는 같은 민족이라고조차 인식되지 않습니다.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를 배타적으로 취급하고, 무국적자 양산에 뒷짐 지고 있는 한국 정부. 하루빨리 남과 북이 합의해, 재일동포의 통일 국적을 제도적으로 보장했으면 합니다.”

어느 ‘조센징’이 자살하면서 남긴 말

남북한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은 불안정한 상태다. 그리고 일본 내 외국인의 90%가 재일동포임을 감안하면, 외국인 차별은 사실상 조선민족 차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젊은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좋았던 건, 차별의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로 살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정체성과 가치관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뜩한 유언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조선인이면서 일본으로 귀화한 도쿄대 출신 국회의원 아라이 쇼케이가, 당시 같은 국회의원이었으며 현재는 도쿄도지사인 이시하라에게서 ‘조센징’이라는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자살할 때 남긴 말. 그것은 “난 완전한 일본인이 되고 싶다”였다.



‘조선적’의 오해를 풀자

47년 독립국가 부재 때의 국적 표시… 국제적으로는 무국적을 의미

1945년 8월15일 일제의 패전 당시 일본에는 약 240만 명의 조선인이 있었으며, 재일 조선인의 95%가 한반도 남부 출신이었다. 전시에 탄광이나 토건 관계, 군수공장, 항만 하역 등에 강제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해방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식민지 출신 동포들의 국적은, 1947년 일본국헌법 시행 하루 전 ‘외국인 등록령’ 공포에 따라 한반도의 독립국가 부재를 이유로 국적 표시가 모두 ‘조선’이 된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성립 뒤 정부가 외국인 등록상에서 ‘한국’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하면서 국적은 ‘한국’과 ‘조선’ 두 개가 된다. 그러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체결 때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를 결정하는 ‘한-일 법적 지위 협정’이 마련돼 박정희 군사정권의 반공 일변도 정책과 조총련 타도 목표하에서 ‘조선’이라는 국적 기호를 ‘한국’으로 바꾼 사람들에 한해서만 ‘협정영주권’을 받게 된다.
현재 옛 식민지 출신자와 그 자손인 재일 조선인 약 51만 명이 ‘특별영주자’로서 영주권 보장을 받고 있는데, ‘한국’이 정식 국적인 반면 ‘조선’은 아직도 국제적으로 무국적을 의미하는 기호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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