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의 정수와 원리 간직한 현대적인 집짓기’ 실천하는 도목수 박충수씨
사람들은 삶의 3분의 1가량을 집에서 보낸다. 그러나 평소 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다. 자고 먹고 쉬는 터전에 대한 진지한 되짚음은 거의 없이 사는 게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다만 ‘사는 동네가 어디냐’ ‘집값이 얼마냐’ 따위가 큰 관심인 듯싶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다수가 살고 있는 집의 건축양식은 채 100년이 안 되는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나머지 5천년 가까이 살아온 우리네 집에 관한 역사는 문화재의 한 범주로 취급하고 현재의 생활에서는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적인 건축물에 비해 불편하고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골동품으로 취급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우리나라의 전통적 집짓기 방법과 정신이야말로 가장 환경친화적이며 생태적이다. 한마디로 건강과 마음의 평온함을 고려한 건축방법이었다. 그것을 지금 이 시대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장인이 있다. 바로 ‘도목수’ 박충수(45)씨다.
사계절 변화 반영하는 꿈틀거리는 집
‘도목수’란 목수 가운데 상목수를 칭한다. 여러 목수를 총괄하는 위치, 즉 건축현장으로 말하면 현장소장이나 책임자를 뜻한다. 흔히 전통건축에서 현장을 총괄하는 이를 ‘도편수’라 부르는데, 경남지방에서는 ‘도목수’라고 한다.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에 사는 박씨는, 서부 경남인 함양·산청 등 지리산 근방에서 알아주는 손기술과 눈썰미를 지녔다고 알려졌다. 박씨는 집짓기 방식에서 ‘우리 전통의 정수와 원리를 그대로 간직한 현대적인 집짓기’라는 자신만의 건축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박씨가 여느 도편수와 다른 점은, 대부분 도편수들이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예술적인 전통건축을 추구하는 반면, 박씨는 선조들의 집짓기에 관한 원리와 방법을 현대적인 집짓기에 끊임없이 도입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박씨가 남들이 예술적 가치를 추구할 때 돈벌이를 위해서 이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씨는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집짓기를 했다. 지금까지 무리해서 여러 채를 한꺼번에 지은 적이 없다. 일감이 들어와도 마다한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박씨가 집 짓는 일을 시작한 것은 서른을 넘어설 때였다. 산청군 일대인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했다. 목수가 된 뒤 한참 지나서 자신의 집안 내력을 알고 목수가 천직임을 알았다. 할아버지가 바로 지리산 근방에서 알아주는 도목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박씨가 추구하는 길은 그 자신의 소박한 품성과 달리 지향 자체의 장대함에 담겨 있다. 서구적 건축이론과 방법만이 판치는 한국 건축의 현실에서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규모지만, 우리네 집짓기에 관한 지혜와 슬기를 최대한 살려서 구현한다는 점이다. 사계절 변화에 그대로 적응해 꿈틀거리고 살아 숨쉬는 집, 그것이 바로 그가 내세우는 전통건축의 핵심이다. 집짓기에 대한 그의 일관된 철학이기도 하다.
나무와 흙의 절묘한 어우러짐
본래 집이라는 것은 추운 때는 따뜻하고 더울 때는 시원한 것이 근본적인 요구다. 그래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 집짓기는 항상 이것이 핵심적인 요구였다. 이를 가장 잘 수용하고 있는 것이 나무와 흙이다. 우리 전통 집짓기에서는 철저하게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는다. 미국식 통나무집의 단점은 자연의 변화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습도가 일정한 곳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습도 변화가 많은 곳에서는 이런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최근 팬션이나 전원주택 양식에서 통나무가 소재로 쓰이지만, 대부분 전통건축의 기본원리를 모르는 채 외국에서 도입된 건축방식을 무조건 따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우리 풍토에 맞지 않는 방식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통건축은 변화를 폭넓게 수용하는 특징을 지닌다. 전통양식의 장점을 ‘나무와 흙의 절묘한 어우러짐과 조화를 통한 살아 숨쉬는 집’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건축의 기본인 한옥구조는 기둥과 보의 연결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짜임 자체가 유연하고 신축적이다. 그래서 짜맞추고 나면 한몸이 된다. 진동과 하중을 최대한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옥구조법이다. 그래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이 지진 등의 진동에 강하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교토·고베 등에 대형 지진이 생겼을 때 내진설계가 된 현대적인 건축물들은 엿가락처럼 무너졌는 데 반해 수백년 된 사찰 등 전통 목조건축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구조의 튼튼함과 아울러 경관도 큰 장점이다. 제대로 지어진 집이면 사람이 보았을 때 각이 지지 않고 모가 나지 않는다. 집과 주변경관이 모가 나지 않고 융화돼 있다. 나무 자체의 질감이 가장 자연친화적이다. 자르고 깎고 다듬어 짜맞추는 목조건축은 고도의 정교함을 요구한다. 아울러 공장에서 기계로 재료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자연소재인 나무와 흙을 그대로 쓴다. 여기에 수백년 이어져온 손동작과 눈대중이 어우러진 기술과 감각이 수십평짜리 건축물을 그대로 구현해낸다. 옆에서 지켜보면 신기할 정도다. 이것이 우리네 전통건축의 역량이다.
박씨는 전통 집짓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을 꼽는다. 집 짓는 전체 과정에서 나무를 하나하나 다듬을 때 마음가짐과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된 집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적 감각이나 타고난 손재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를 만지는 사람의 정성이다. 자연소재는 정성스레 손을 놀리지 않으면 비록 죽어 있는 나무라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정성으로 죽어 있는 나무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재창조하는 것이 우리네 집짓기의 본래 정신이다.”
그러나 이런 정신은 살리되 모든 것을 수작업 위주로 할 수는 없다. 나무를 다듬기 위해서 대패와 톱으로만 하기에는 도저히 단가가 나오지 않는다. 전기톱과 엔진 다듬기 등을 적절히 써야 어느 정도 작업기간을 줄일 수 있다. 전통적인 장비만을 사용하여 집을 지으면 인건비 때문에 건축비가 강남의 빌라 이상으로 뛰게 된다.
옛날에는 ‘집짓기’를 ‘밥짓기’라고 했다. 밥만 주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집 짓는 것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건축을 하는 목수도 현격히 줄었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이 문화재나 사찰을 건축하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고급인력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노임이나 품도 일반 건축기술자보다 훨씬 비싸다.

사진/ 대들보와 서까래가 올라가고 본격적인 기와집의 모양이 시작되는 공장. 나이테가 뚜렷하게 나오는 소나무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자리잡은 송진으로 인해 부식이 방지된다(왼쪽). 최근에 박충수 도목수가 짓고 있는 경남 산청의 한 문중 재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집도 짓지만 가끔 전통 한옥을 짓기도 한다(오른쪽).
아무런 내장재가 필요 없다?
박씨는 전통장비와 기계를 적절히 섞어 사용한다. 기본공정에서 큰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것은 전기톱이나 엔진 다듬기 등을 쓴다. 마무리 부분은 역시 정성으로 맺음해야 하기에 손대패나 끌을 써야 한다. 그래서 건축비용은 일반주택이나 아파트 수준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내장식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도시의 아파트 값보다 비싼 편은 아니다. 전통 집짓기 방식은 기본적으로 천연소재라 보온이 잘 되고 방음이 좋다. 또한 흙이 두껍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밑으로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잡아준다. 아울러 습도 조절이 잘 되어 사람이 살기 쾌적한 집이다.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집에 꼭 필요한 재료만 쓴다. 평당 건축비가 일반 건축비보다 조금 높지만 결과적으로 인테리어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비슷하다.
요즘 아파트를 비롯한 일반 건축은 인공적인 화학소재를 과다하게 쓰고 있다. 특히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재도 아무런 제한 없이 마구잡이로 쓴다. 분양가가 수억원이 넘는 대도시 아파트의 경우 모델하우스에서 일하는 도우미들이 각종 화학소재의 인테리어 내장재 때문에 종종 실신하는 경우까지 있으며 각종 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만큼 내장재가 페인트와 접착제 등 강한 자극성 소재를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전통 집짓기는 아무런 내장재가 필요 없다.
박씨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일찍이 목수가 되기 전에 불교적인 삶을 지향했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수양을 한 인생역정도 지닌 듯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는 끝까지 말끝을 흐리며 정확한 답을 피했다. 그저 “다 그렇게 살아왔지요. 뭐 별다른 것이 있었겠습니까”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그의 눈빛엔 청정함이 배어 있다.
박씨는 산속에서 은거하고 조용히 자연과 벗하며 사는 게 꿈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후배들은 집 짓는 일을 크게 펼쳐보자고 제안한다. 박씨를 따르며 함께 집을 짓는 후배들은 다소 불평이 있다. “아름다운 집을 짓든, 살기 좋고 실용적인 집을 짓든, 많이 지어야 밥도 해결되고 예술도 되는 것인데, 박 도목수는 그런 집착이 덜하다”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들어오는 물량은 소화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수익을 우리네 집짓기를 알리고 그 체계를 정리하는 것에 투자할 작정이란다. 현대적인 생활건축에 전통 집짓기의 철학과 방법을 결합시키는, 이 일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에 투자하기로 후배들과 결의를 모은 것이다.
박씨 가족은 부인과 두 딸 등 네 식구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그가 직접 지었다. 두 딸 고은(12)양과 진아(9)양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집 좋다고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박씨 집에는 마루의 대들보에 굵은 줄로 그네를 설치했다. 집안에서 신나게 그네를 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들보를 설치한 집에서만이 가능한 일로, 전통양식의 집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기둥과 대들보 등 집의 기본 틀은 전통을 따르되, 전통양식에서는 모두 분리돼 있는 본채마루·화장실·부엌을 한곳에 통합시킨 그의 집은, 그가 추구하는 건축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창한 생태건축 이야기하지 않지만…
두 딸의 방은 2층에 있다. 방 가운데에 큰 창을 냈는데, 전면 가득히 지리산이 펼쳐진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지리산 천왕봉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본래 집터도 주변의 산자락 가운데 절묘한 위치에 잡았거니와, 자연생태계의 질서와 그 속의 자연경관까지 고려해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원리에 충실한 집, 그것이 박씨 가족이 사는 집이다. 사실 그의 집도 별다른 기교는 없다. 다만 본래의 그 원리가 절묘하기에 쓰임새 또한 남다른 집이다. 그래서 이 집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이면 지인들이 찾아와 한보따리 음식을 펼쳐놓고 마당에 모닥불을 피운다. 그 옆에서 때로는 막걸리, 때로는 과실주 등 술자리의 어우러짐이 있다. 그 자체가 낭만이고 멋이다.
박씨는 전통의 높은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명망 있는 건축가의 반열에 아직 이름이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집과 살기 좋은 집 모두를 구현한 예술가이자 건축가다. 그는 거창한 생태건축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집을 짓는 방법과 철학은 철저하게 생태적이다. 한국적 생태건축을 현실에서 가장 잘 이해하며 응용하고 있는 목수였다. 그의 집 짓는 세계는, ‘원리에서 소재까지 거기에 사는 사람이 자연의 기운과 가장 잘 호흡하고 아늑하게 사는 것’, 바로 그것이다.
산청= 글 · 사진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h@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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