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용역경비업체 직원이 폭로한 구사대의 실체, 거기엔 조직폭력배와 노숙자들이 있었다
폭력의 세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20세기는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저물었지만, 이 나라 노동현장은 아직도 폭력의 세기와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80년대 구사대 폭력의 망령이 21세기 초입에도 ‘용역경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들어 용역경비원의 폭력은 울산 효성노조, 건설운송노조 수원지부 등 전국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개입해왔다. 그동안 용역경비의 폭력행사는 노조의 일방적 주장에 그쳐왔지만 한 용역경비회사 직원의 폭로로 그 실체가 어렴풋이나마 밝혀지고 있다.
5월16일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 수도권의 한 시청청사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30대 남자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중키에 짧은 머리를 한 김영호(가명)씨는 “효성 울산공장에 투입됐던 용역경비업체의 직원”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씨는 불안한 듯 연신 주위를 힐끔거리며 (주)효성 울산공장에 투입된 용역경비의 실체를 설명했다.
효성 울산공장에 등장한 200여명의 불청객
김씨에 따르면, 3차례에 걸쳐 700여명의 용역경비 직원들이 효성 울산공장에 투입됐다. 이들 중 200여명은 전국 각 지역에서 동원된 조직폭력배이고, 100여명은 서울역 등지에서 모은 노숙자들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1차로 투입된 400여명은 ㄱ컨설팅, ㄷ경호 등 용역경비업체가 대구, 구미, 서울 등지에서 모은 사람들”이라며 “특히 대구와 구미에서 동원된 100여명은 지역 조직폭력배들”이라고 말했다. 효성 노조쪽도 “노조 총회를 이틀 앞둔 5월14일 오후 4시쯤 대구, 경북 번호판을 단 10여대의 봉고차가 회사 정문으로 들어왔다”며 “용역경비원들이 탄 이 차가 도착하기 전날부터 이미 ‘구미에서 수백명의 구사대가 내려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반면 (주)효성쪽은 “조직폭력배와 노숙자들이 다수 동원됐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당시 급박하게 용역경비원을 보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두명 조직폭력배나 노숙자가 끼어들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가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용역경비 인력이 투입된 5월14일 효성노조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사수대 규찰을 강화했다. 이날 밤 울산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500여명이 효성 울산공장에 모여 새벽까지 규탄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반발이 조직화되자 곧이어 2차 용역경비원들이 투입되었다. 김씨는 “이때 동원된 150여명의 용역경비원 중 50여명은 전라도지역 조직폭력배들”이라고 밝혔다.
잇따른 용역경비원들의 투입에도 파업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3차에는 철거용역 전문업체까지 동원됐다. ㄱ산업이 모집한 150여명의 용역경비원 중에는 일당 4만∼5만원을 받고 동원된 서울역, 영등포 등지의 노숙자들이 섞여 있었다. 김씨는 “노숙자들은 눈빛만 봐도 다른 용역경비원들과 구분될 만큼 거칠고 공격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용역경비원 투입은 폭력사태로 이어졌다. 5월25일 새벽 회사에서 파업전야제를 진행하던 노조원들과 용역경비원을 앞세운 회사쪽이 충돌해 노동자와 회사간부, 용역경비원 등 100여명이 부상을 입은 것이다. 5월28일에도 연이어 충돌이 빚어져 80여명의 노동자와 용역경비원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날 노조쪽이 충돌현장에서 용역경비원들로부터 압수한 식칼과 가스총, 전기충격기, 사제장총 등 흉기가 공개되기도 했다.
위력적인 사제폭탄·사제총 등으로 중무장
노조 진압에 동원된 이 무기들에 대해 김씨는 “처음에는 1m 길이의 각목과 규정된 경호업체 장비만 가지고 공장에 들어갔다”면서 “격돌이 심해지면서 회사쪽에서 2m짜리 쇠파이프를 지급했고, 자기방어 차원에서 사제총까지 동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수부대 출신 일부 경비업체 직원들은 니트로글리세린과 흑연 등을 구입해 사제폭탄 50여개를 만들어 컨테이너 박스에 넣어두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우편봉투 속에 화약을 설치해 봉투를 여는 순간 터지게 되는 이 사제폭탄은 밀폐된 실내 공간 20여평을 순식간에 불태울 정도의 화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씨는 “일부 쇠파이프를 휘두른 노조원들은 마치 조직폭력배 같았다”며 “일방적으로 노조가 당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회사쪽도 “처음부터 회사 입장은 ‘비폭력’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며 “용역경비원들이 ‘맞아죽겠다’고 항의해도 쇠파이프조차 지급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더구나 사제폭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만약 알았다면 결코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회사쪽의 주장이다.
어느새 노동쟁의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조연’이 된 용역경비업체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현재 경찰청에 등록된 전국의 용역경비업체는 모두 1945개다. 김씨는 “무허가업체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일 것”이라며 “이중 60% 이상의 업체들이 노동쟁의에 개입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수익구조에 대해서도 “용역경비시장의 규모는 총 2조원가량 이르는 것으로 안다”며 “요즘은 이중 70% 정도의 수익이 노동쟁의 개입으로 얻어진다”고 추산한다. 그에 따르면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던 때부터 노동쟁의에 개입하는 일이 많아졌으며, 지난해 말 건설운송노조가 생기고 이를 진압하는 데 투입되면서부터 부쩍 일거리가 늘었다고 한다.
다단계피라미드구조로 이뤄져 폭리를 취할 수 있다는 점도 용역경비업체들이 노동쟁의에 몰리는 요인이다. 김씨에 따르면 효성쪽과 원청 용역경비업체 사이에 계약은 1인당 15만원에 이뤄졌다. 하지만 서너 단계의 하청을 거쳐 최종 용역하청업체에 내려온 일당은 6만원. 한 사람당 9만원을 용역업체들이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중간 수수료를 9만원으로 잡고, 효성에 1차로 투입돼 열흘 남짓 고용된 400여명으로 용역업체들이 챙긴 수익을 계산해보면, 9만원×400명×10일=3억6천만원이 나온다. 여기에 부상을 당했을 경우 나오는 사후 보상금까지 감안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 김씨는 “용역경비원이 부상당했을 경우, 2주 진단에 10만원, 3주 진단에 20만원이 통상적으로 회사에서 지급된다”며 “이중 30%도 용역경비업체들이 챙긴다”고 전한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각 용역경비업체들은 일상적으로 회사를 찾아다니며 노동쟁의에 개입한 자사의 성과를 홍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쟁의 전문 해결사들이 회사를 지킨다?
용역경비업체들은 대개 소수의 상근 인력으로 운영되는데,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전문 하청업자를 통해 인력을 모은다. 법적으로 시설 경비를 서려면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한국경호협회로부터 교육필증을 받는 등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인력 수급구조가 이렇다보니 조직폭력배, 노숙자 등 무자격자들이 동원되기 일쑤다. 김씨는 “이번 효성에 2차로 투입된 150여명은 교육 필증이 없는 대표적 무허가 인력”이라고 전한다. 서울 전문 용역경비하청업자인 이아무개씨가 동원한 이 인원들은 흔히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노동쟁의 전문 해결사들이다. 김씨에 따르면 ‘프리랜서’들은 평균 20∼30명 정도가 인력풀을 형성하고 있다가 쟁의 상황이 발생하면 투입된다. 수도권에만 500명, 전국적으로 1500명이 넘는 프리랜서들이 있다고 김씨는 추정한다. 이어 김씨는 “효성에 2차 인력 150명을 모아준 이아무개씨는 서울에서 300여명의 프리랜서들을 관리하는 큰손이고, 서울역 노숙자들을 끌어모은 신아무개씨는 30년 넘게 철거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탈법과 불법이 빈번한데도 경비업법상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경찰은 그저 수수방관할 뿐이다. 김씨는 “이번 효성공장에서도 노조원과 용역경비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 경찰이 옆에 있었지만 전혀 한 일이 없다”고 밝힌다. 김씨는 또 “경비업체가 쟁의 현장에 투입되면, 인력배치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게 돼 있다”며 “대부분 가짜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내지만 경찰은 전과유무만을 형식적으로 확인할 뿐 신고된 경비직원이 실제 근무중인 직원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거나 불법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조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전한다. 파업현장뿐 아니라 일상적인 관리업무도 소홀하긴 마찬가지다. 등록된 용역경비업체는 한국경호협회와 관할 경찰서의 정기적인 점검을 받아야 한다. 총기휴대 유무, 경비인원 투입의 적법성, 정식직원 채용 유무 등이 점검사항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경호협회는 회사의 요청에 따라 경비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직원에게도 교육이수증을 발급해주는 일이 흔하고, 경찰들은 순찰 나와서 용돈만 받아간다”고 전한다. 이런 유착관계는 “설령 사고가 생겨도 벌금형 정도가 고작”이라고 김씨의 경험으로 요약된다.
김씨가 폭로한 사실에 대해서 울산 남부경찰서쪽은 “아는 바가 없다”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주)효성도 “쇠파이프 등 먼저 폭력을 휘둘러 직원 수백명을 다치게 만든 것은 노조쪽”이라며 “노조가 증거를 부풀려 폭력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무기로 무장한 용역경비원들과 효성노조원들 사이의 물리적인 대립은 지난 6월5일 새벽 전경 3600여명을 투입한 경찰의 강제진압작전의 성공과 함께 끝났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밀려나온 노조와 경비용역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9일 노조가 경영진 3명과 용역경비업체 대표 등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울산지방경찰청에 고소·고발한 것이다.
전국을 무대로 기승… 생명 위협도 느껴
용역경비업체의 폭력적 개입은 비단 효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 들어 용역경비원들의 노동쟁의 개입은 전국 곳곳에서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지난 6월7일 민족자주·민주주의·민중생존권쟁취 전국민중연대(이하 민중연대)의 기자회견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용역경비원과 노조원이 갈등을 빚은 곳은 건설운송노조 수원지부, 안산 동아공업노조, 한국통신 114노조 등 10여곳에 이른다.
먼저 4월부터 파업을 시작한 건설운송노조 산하 각 지부들이 용역경비원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4월18일 부천의 유진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 진입을 시도하다 용역깡패 60명에게 폭행을 당해 조합원 4명이 부상을 입었다. 노조원들은 “소화기를 뿌려대며 달려드는 용역깡패들에게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며 “현장에 있던 경찰 300여명에게 신변보호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이어 4월22일에는 서울시 구로구의 제일레미콘 지부 노조사무실이 용역경비원들에게 유린당했다. 이날 새벽 노조사무실에 난입한 용역경비원 50여명은 노조 현판을 부순 뒤 비디오카메라, 컴퓨터 등 노조 물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때 노조사무실에서 잠자던 노조원 8명은 채 옷을 챙겨입을 틈도 없이 잠옷 바람으로 끌려나와 폭행당했다고 한다.
5월에는 안산 동아공업과 한국통신 114노조의 여성조합원들이 용역경비원과 청원경찰에게 봉변을 당했다. 5월11일 농성중인 동아공업 여성노동자들을 20여명의 용역경비원과 회사 관리자들이 덮쳤다. 16명의 여성조합원들은 정문에 드러누운 채 저항했지만 이내 들려나왔고, 일부 조합원들은 바지가 벗겨지는 수모까지 당했다. 마침 지지방문을 와 있던 기아자동차 화성지부 정형기 대의원은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이어 5월31일에는 회사의 분사방침에 반발해 분당 본사에서 농성중이던 114 여성조합원들이 회사쪽 청원경찰에게 집단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경비를 맡은 청원경찰 30여명은 이날 오후 6시쯤 폭력을 휘두르고 노조쪽의 집기를 부쉈다. 이 폭력사태로 여성조합원 1명이 화분에 맞아 실신했고 조합원 이기국(36)씨가 뇌진탕으로 전치 3주의 부상을 입는 등 36명이 다쳤다.
용역깡패가 공권력의 2중대란 말인가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용역경비원들을 앞세운 회사 폭력이 자행되지만 이들이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형편이다보니 노동계에서는 “용역깡패들은 결국 ‘제복을 입지 않은 공권력’에 다름아니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민중연대는 지난 6월7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권이 공권력의 2중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부추기거나 지원하는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와 경찰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교섭 거부와 ‘시설보호’ 명목의 용역경비 투입, ‘국민여론’을 앞세운 공권력의 강제진압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은 오늘도 여전하다. 폭력에 점점 둔감해지는 여론 속에서 최소한 합리적 해결의 가능성마저 봉쇄하는 용역경비의 폭력이 계속되는 한, 폭력의 세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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