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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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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장상은 씨가 따로 있다”

등록 2004-02-25 00:00 수정 2020-05-02 04:23

독립 이후 인도를 통치해온 네루-간디 가문… 최근 두 당으로 갈라져 권력투쟁 벌이기도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1506@hotmail.com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한국 속담은 인도에서는 틀린 말일 수 있다. 인도 최대 야당인 국민회의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56년 가운데 42년 동안 인도를 통치했다. 그 중 37년간 네루-간디 가문 출신의 인물이 인도의 총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분명 인도인들은 “왕후장상은 씨가 있다”고 여길 만하다.

소니아 간디, 혈통이 문제

인도의 초대 총리는 자와할랄 네루다. 그의 무남독녀인 인디라 간디는 네 차례에 걸쳐 인도 총리를 역임했다. 시크교도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시크교도의 성지인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을 무력으로 진압한 뒤 그는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 날 장남인 라지브 간디가 총리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자살테러범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라지브 간디가 암살당한 뒤, 그의 이탈리아인 아내 소니아 간디는 한동안 정치를 멀리하며 지냈다. 사실 그는 남편의 정계 입문 역시 극도로 반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구심점을 잃어버린 국민회의 당원들의 간청으로 결국 소니아는 정치에 입문하고 국민회의 당수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의 출신이 끊임없이 괴롭혔다. 최대 라이벌인 여당 국민당은 선거 때면 항상 “외국인이 이 나라의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유권자들에게 반문했다.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여 방글라데시를 탄생시킨 강한 인디라 간디를 숭배하는 인도인들조차 이 반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래서 국민회의에 선뜻 투표를 하지 못했다.

태생 문제는 소니아 간디라도 떼어버릴 수 없는 꼬리표였다. 금발이었던 머리를 염색하고, 인도의 전통의상을 입고, 힌디를 배우고, 인도인으로 귀화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국민당은 “소니아가 인도를 위해서 한 일은 11억 인도 인구에 두 사람을 보탠 것밖에 없다”고 비꼬는 지경이 됐다. 소니아 간디가 인도에 보탠 두명의 인구는 바로 아들과 딸인 라훌과 프리앙카이다.

이제 국민회의 당원들은 소니아 간디의 국적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책으로 그 아들과 딸을 꼽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 정치에 적극적이고 소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여동생인 프리앙카다. 70년생인 라훌 간디는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영국에서 일을 했던 탓에 인도 대중들에게 친근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게다가 과묵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

오빠보다 두살 아래인 프리앙카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어머니를 여러 측면에서 보좌해왔다. 소니아 간디의 지역구인 우트라 프라데시주의 아메티를 방문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대중 집회에서 그의 모습은 마치 연예인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프리앙카! 프리앙카!’를 연호하고 웃음을 머금은 프리앙카는 끊임없이 손을 흔든다. 그는 경호선을 뚫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아이들을 안아주고 어른들에게 그 지역의 언어로 인사를 건넨다. 추위에 떨고 있는 한 할머니에게 그 자리에서 자신의 숄을 벗어준 적도 있다. 무엇보다 프리앙카는 할머니 인디라 간디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닮은 외모뿐만이 아니라 결단력이 강한 성격도 인디라 간디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앙카 정계 입문에 관심 집중

지난 총선에서 소니아 간디가 이 지역에서 출마했을 때 상대편 후보였던 아룬 네루는 한때 라지브 간디의 절친한 친구였다. 국민당의 전폭적 지원으로 아룬 네루가 강세를 보이자 프리앙카는 바로 아메티로 달려갔다. “여러분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역적이 이 땅에 발을 디디게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라지브 간디를 등 뒤에서 찌른 사람입니다.” 선거 결과 아룬 네루는 참패했다. 프리앙카의 대중 연설 능력과 힘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월, 남매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지역구인 아메티를 함께 방문했다. 여전히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사람들 앞에 자주 나서는 쪽은 활동적인 프리앙카였고, 라훌은 수줍은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때문에 기자들은 프리앙카를 향해 “오빠에게 정치를 가르치기 위해 데려왔느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인도 정치권의 화두가 되어온 질문이 쏟아졌다. “언제 정치에 입문할 것인가?” 라훌 간디는 “아직은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없지만 그것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프리앙카는 “언제라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주일 뒤가 될 수도 있고 10년 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방문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고 단지 아메티 개발계획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보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선거 전에 보통의 출마자들이 흔히 하는 처신과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은 주민들과 접촉하고, 지역 당원들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이번 방문이 언제나처럼 수많은 민중들의 열광을 불러오자, 국민회의는 4월로 예상되는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두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4개 주에서 열린 선거에서 국민회의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도의 3개 주에서 완전히 참패했다. 그 일로 의기소침해진 국민회의는 그들의 출마가 절실하다. 국민회의 당원뿐만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로부터도 여러 형태의 출마 요청이 밀려들었다.

그들의 출마를 애원하며 성지순례를 하고, 예배를 하고, 심지어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중앙당사에는 혈서까지 도착했다. 또 전국 국민회의 지부들은 두 사람의 출마 지역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는 프리앙카가 바지파이 총리의 지역구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30대인 두 사람의 출마는 젊은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는 게 국민회의의 전망이다. 당직자들은 두 사람이 출마하지 않더라도 대학가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유세를 벌여주길 바라고 있다. 팔순 고령의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의 ‘풍부한 경험’을 내세우는 전략에 대해 국민회의는 두 사람의 젊은피로 대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당은 아직 입당조차 하지 않은 두 사람을 선거유세에 이용한다고 비난하지만 국민회의는 말한다. “선거유세에는 연예인도 동원되지 않느냐? 두 사람은 우리 당 의원의 자녀들이다. 뭐가 문제가 되느냐.”

두 사람의 활동이 전국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국민당이 주장하듯 현재의 인도는 1984년 인디라 간디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던 때와는 달라졌다. 적어도 5천만명의 유권자들이 그 이후에 태어났다. 네루-간디 왕조의 신화는 교육받지 못한 시골의 촌부들에게나 살아 있다고 국민당은 반격한다. 또한 지금껏 소니아 간디를 겨냥해 인도 최고위 자리는 순수 인도 태생에게만 허락되어야 한다던 국민당은 이제 그 인도인의 순도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 최고위 자리는 순수 인도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에게만 허락되어야 한다”고 국민당 총서기 프라모드 마하잔은 말했다.

국민당 입당, 큰어머니에 맞서다

이를 두고 국민회의는 “공식 사과하라”고 비난했지만, 이 발언은 국민당도 두 사람이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디라 간디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인 산자이 간디는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해 어머니를 돕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인 마네카 간디와 아들 바룬 간디는 지난 2월17일 국민당에 입당했다. 시아주버니인 라지브 간디에 맞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적도 있는 마네카 간디는 지금도 소니아 간디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바룬 간디가 태어났을 때 그를 돌본 것은 큰어머니인 소니아 간디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른 국민당 지도부와 함께 큰어머니의 국적을 문제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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