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체, 심리전만 더 지독해졌다

등록 2003-08-06 00:00 수정 2020-05-02 04:23

[아시아네트워크 | 아체는 지금]

양쪽서 ‘게릴라 지도자 사망설·여행설’ 등 유포… 사망자 발표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아체 계엄군사 작전이 11주째 접어들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국 언론통제와 외국언론의 현장접근 봉쇄로 아체는 여전히 암흑천지 속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말 외국언론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아체를 취재했던 은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해 아체와 자카르타를 연결해서 아체전쟁을 장기적으로 연속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의 결정은 국제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한 아체 시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뜻과 함께 그동안 단발성에 그쳐왔던 국제뉴스 보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다. 은 아체 계엄군사 작전 전 기간과 더불어 추후 예상되는 아체의 새로운 정치적 진로를 총체적으로 보도해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외국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아체를 취재해왔던 한국 시사주간지 의 정문태 기자가 일정을 앞당겨 월요일 수마트라 메단으로 떠났다. 그가 인도네시아 정부군(TNI)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아체를 떠났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버니 무수타파 기자가 2003년 6월24일치에 마지막 외국언론 의 아체 취재 종료를 보도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다. 변한 것은 없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여전히’ 외국 기자들의 아체 취재를 원천 봉쇄해왔고, 지금 아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이가 없다.

자마이카는 죽었다? 살아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이 사망자가 634명, 부상자가 558명으로 각각 늘어났다는 사실뿐이다. 하나 더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체포했거나 투항한 자유아체운동(GAM) 게릴라가 1227명. 가히 폭발적인 규모다. 전체 사망자에서 583명이 자유아체운동 게릴라라는 정부군 발표대로라면 자유아체운동은 이미 궤멸당했어야 옳다. 자유아체운동 게릴라를 최대 4천여명으로 추산한다면,

거의 반에 해당하는 1810명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산악게릴라전에서 병력 반을 잃고 살아남은 조직은 세계게릴라전사 어디를 들쳐봐도 없다. 게릴라 10명이 싸우려면 적어도 50명이 보급투쟁에 매달려야 한다는 게 상식인데, 정부군 발표대로라면 자유아체운동은 이미 모두 굶어 죽었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런 가운데, 11주째로 접어든 아체 계엄군사 작전은 지금 심리전이 한창이다. “북부아체에서 작전 중이던 특전사 요원들이 칸당을 기습해서 자유아체운동(GAM)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파세지역 대변인 자마이카 칸당을 사살했다.” 7월30일 인도네시아 정부군(TNI) 아체 계엄작전사령관 밤방 달모노 준장이 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는 마을 책임자가 자마이카의 주검을 확인할 때까지 특전사 요원들은 전혀 몰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하루 뒤인 7월31일에는 “자마이카는 아직 살아 있다”는 메일이 날아들었다. “정부군이 나를 사살했다는 발표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다. 날조된 발표 탓으로 기자와 친지들이 나를 찾아 내 전화통이 불날 지경이다.”

곧장 위성전화로 자마이카를 찾아 그의 생존을 확인했다. “개똥 같은 선전이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자마이카는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거짓 선전이라며 질문할 틈도 없이 줄줄줄 늘어놓았다. “정부군이 시민을 죽여놓고는 모두 자유아체운동 소행이라 주장했다. 지금까지 사망자 98%가 시민이었다. 군사작전지역(DOM) 선포기간이었던 1989년부터 1998년 사이에 인권단체들이 밝혔던 ‘사망자 99% 시민’이라는 사실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시민을 죽여놓고는 AK 소총 탄알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거나 또 주검 옆에다 무기를 차려놓고 기자들을 불러 자유아체운동이라며 사진 찍게 했던 게 정부군의 전통 선전술이었다….”

자마이카는 이번에 자신을 사살했다는 정부군 성명을 좋은 본보기로 들었다. “이번 칸당마을에서도 자말루딘이라는 주민을 살해한 뒤 주검 옆에 무기를 갖다놓고 나를 죽였다고 발표했지 않느냐!”

반대쪽 자유아체운동도 밑질 수 없다는 듯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는 지금 자유아체운동 사업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있다.” 자마이카 살해 소식을 놓고 난리를 피웠던 7월 마지막 주, 이번에는 자유아체운동 전체 대변인인 소피안 다우드 성명이 또 날아들었다. 같은 시각, 소피안 다우드가 육로로 아체에서 자카르타로 빠져나온 뒤 다시 인도네시아 국영 가루다항공을 타고 말레이시아로 갔다는 정보가 나돌면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발칵 뒤집혔다.

“나 정말 말레이시아 갔다 왔다니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양국 관계에 훼방을 놓겠다는 소행일 뿐이다.” 지난 화요일(7월29일) 인도네시아 반둥을 방문 중이던 말레이시아 외무장관 시에드 알바르는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양국 외교가와 경찰 당국은 모두 한동안 긴장에 휩싸였다.

7월31일, 며칠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위성전화로 소피안 다우드와 연결되었다. “말레이시아에 갔다 왔다. 그러나 난 자카르타를 거치지 않고 리아우를 통했다. 진짜다!”

누가 알리요.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인가. 전쟁에서 승리자란, 전투에서만 이겨서 되는 게 아니다. 전쟁이 총부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심리전을 통해서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판이니. 그러나 아직도 누가 전쟁의 승리자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인지 자유아체운동인지. 다만, 분명한 건, 이 전쟁은 시민을 타격목표로 삼아 시민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살해당하는 시민의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심리전과 거짓말 속에서.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 시사주간지 기자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