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일어판이 2023년 8월15일 광복절에 출간됐다. 출판기념 저자 강연회가 9월9일 도쿄 시내 분쿄 시빅센터 강당에서 열렸고, 일어판에 해설을 쓴 사토 마사루와의 대담 겸 북토크가 9월12일 신주쿠 기노쿠니야서점에서 열렸다. 강연회는 ‘20세기의 봄을 산 여자들: 조선독립운동과 공산주의운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아래, 기노쿠니야서점 북토크는 ‘말해지지 않았던 조선 일본 근대사: 20세기의 봄은 무엇이었나’라는 주제 아래 열렸다. 두 행사 모두 참가비 1천엔의 유료였는데 40석의 기노쿠니야서점 북토크는 일주일 전 매진됐고, 출판기념 강연회도 100석이 거의 다 찼다.
일어판을 낸 아즈마북스의 기타하라 미노리 대표는 행사가 끝난 다음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올렸다. “한국의 역사소설 강연, 게다가 유료라니, 아무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조선희 작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불안을 토로했는데 분쿄구 시빅센터 실버홀은 만석으로, 사인회도 성황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책을 낸 저자이고 일본인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역사소설인데 출판기념 행사에 뜻밖에 일본 사회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 일어판 번역자 양징자씨는 자유민주당 정부가 극우 경향을 띠기도 하지만 “일본에 양식 있는 사람이 많다. 식민침략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려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꾸준히 있었다. 관동대지진 학살에 대해서도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고, 중국인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서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은 단체가 한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기타하라 대표도 그 ‘양심적인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셈이다. 그는 강연회 인사말에서 <세 여자> 번역출판에 대해 “나도 흥분하면서 읽었다. 몰랐던 역사, 알아야 할 역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즈마북스 누리집에는 <세 여자> ‘8월15일 독립기념일 출판’이라는 홍보 문구가 떠 있다.
참석자 일부는 재일동포고 한국처럼 일본도 책과 관련한 행사의 주 고객은 노장년층이지만 뜻밖에 젊은층이 꽤 눈에 띄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자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심을 보이고 신문 <한겨레>에 대해 묻기도 했고, 1920년대 한국에 신여성이 태동한 배경을 질문하기도 했다. 이웃 나라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샀다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을 한 사람은 기노쿠니야서점 북토크에 온 <세이쿄신문>의 학회사 취재부장 야마구치 도루였는데, 그는 “ 고명자가 죽는 대목이 굉장히 가슴 아팠다. 그의 죽음이 실제 어떠했는가” 물었다. 한국 독자에게 흔히 듣는 질문이지만, 일본인에게서 일어로 같은 질문을 들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홋카이도신문> 기자, 시사지 <주간 금요일> 편집장이 행사를 취재하고 인터뷰를 했다. <교도통신> 기자는 하네다공항으로 와서 인터뷰했다.
강연에 앞서 양징자씨가 강연 내용 가운데 ‘이념공세’라는 표현을 어떻게 통역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필자의 강연 내용 가운데 “<세 여자>가 6년 전이 아니라 지금 나왔으면 이념공세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정부는 식민시대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빨갱이라 공격하고 있다. 슬프지만 그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 대목이다. ‘이념공세’를 직역하면 일본인 참석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징자씨는 “예전에는 일본에서도 빨갱이라는 뜻으로 ‘아카’(あか)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사상탄압이 있었고 ‘레드 퍼지’(연합군 점령하 일본에서 있었던 공산주의 배격 움직임)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반공국가를 표방한 적은 없다. 지금 의회 안에 공산당이 있고, 의원이 참의원 중의원을 합해 23명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이끌어온 양징자씨는 강연회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전 관동대지진 100주년 관련 행사가 도쿄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나와 같이 투쟁해온 윤미향 의원도 추도식에 왔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관동대지진 관련 협의체를 만들었고 그쪽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일본 행사에 참여해주도록 요청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8월31일 두 곳, 9월1일 세 곳의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9월1일 오후 행사가 한국에서 논란이 됐다. 이 행사는 100여 개 단체가 참여했고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도 그중 하나였다. 이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 총련 사람을 만나려면 사전에 신고해야 하는데, 신고를 안 했다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은 총련 사람을 만나러 약속하고 온 것이 아닌데 사전 신청을 안한 것은 당연하다. 행사에서 총련 사람과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이념공세의 구체적 사례 중 하나다.”
한국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정권교체가 되는 것을 일본 시민단체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양대 진영의 팽팽한 갈등 와중에 여전히 진보가 이념몰이와 색깔론 공격을 당하는 것을 딱하게 본다. 한편 일본은 최소한 의회 안에 공산당이나 사회당을 허용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지만 실상은 1당 독재의 자민당이 다른 정당을 대단한 라이벌로 취급하지 않는 데서 오는 여유와 관용이다.
<세 여자>를 둘러싼 소박한 행사들은 두 나라 모두 극우 정치권력의 독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사이에는 양심과 상식이 만나는 접점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조선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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