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아시아]
무소유와 계급조화를 주창한 간디, 정신의 등불인가 혼란스런 성찬인가
| 국제사회는 주저함 없이 아시아를 21세기 세계의 중심으로 꼽는다. 그러나 그 아시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속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반쪽의 이해’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아시아에 대한 가려진 진실, 숨겨진 사실, 왜곡된 가치, 조작된 역사를 찾아내 그 이면을 밝힘으로써 아시아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이번주부터 새로운 연재 기획 ‘뒤집어 본 아시아’를 독자들께 올린다. 이 기획을 통해 활발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

“천당과 지옥 중 어디를 택할 것인가?” 요절한 람 레흐만에게 천사가 물었다. “어디든 보여줄 수 있으니 결정만 하시게.” 람은 우물쭈물 천당을 택했다. 그곳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꽃향기가 넘쳤지만, 재미는 없었다. “싫어?” 천사가 다시 물었다. “글쎄, 사람들이 순수하긴 해도 너무 고리타분해서… 즐길 줄도 모르고. 지옥은 어때?”
간디와 먼로, 천국에서의 통정?
그리하여 다시 지옥으로 내려온 람에게 염라대왕 왈,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게 좀 불쾌하겠지만 받고 싶은 벌을 선택할 자유는 있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람은 구이가 된 남자들과 동태가 된 여자들을 보면서 질겁했다. 가스실을 들락거리는 아돌프 히틀러도 보였고, 고문당하고 있는 징기스칸, 히로히토, 골다 메이어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발가벗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릴린 먼로가 정을 통하고 있었으니! “와, 마하트마는 행운아야. 좋은 일 한 걸 되돌려받는 모양인데, 바로 저거야. 내가 원하는 벌도….” 그러자 천사가 귀띔했다. “저건 간디가 벌을 받는 게 아니라 마릴린 먼로가 벌받는 거야.”

유명한 우스개인데, 세상 사람들은 운명적인 죽음을 놓고 숭고한 초인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사람들은 그에게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마하트마라는 별칭을 붙였다)를 즐겨 이야깃거리로 삼은 모양이다. 인도 독립투쟁의 정치적 원동력인 간디는 인류의 정신적 좌표로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 세계사에 올랐고, 자유의 전령사, 대담한 영혼, 온화한 거인, 비폭력의 사도, 평온의 바다, 사회의 예언자, 거룩한 존재와 같은 수많은 별칭을 얻었다. 오직 순수한, 오직 때묻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과 함께.
역사상 간디처럼 완벽하게 정화된 인물이 또 있을까? 사람들이 간디의 위대함을 반박하는 것을 두려워 한 탓에 간디의 생각과 행동의 심장부를 한번 제대로 겨눠보지도 못한 채 ‘시비를 걸 수 없는 위인’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인도의 아버지’로도 모자랐는지 간디는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외친 압제로부터의 해방, 정치적 자유, 개인적 순수, 가난에 대한 연민, 패배자에 대한 보호, 사랑의 공동체, 풀뿌리 민주주의, 비종교주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상들은 대를 이어 지금도 세상 구석구석을 누빈다.
간디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그리 새로울 것도 더 발굴해낼 것도 없는 실정이지만, 오늘은 ‘아시아 네트워크’의 체질대로 좀 ‘삐딱한 눈’으로 간디를 바라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간디는 적어도 노동자들과 평등한 계급을 염원한 이들에게는 히틀러와 같은 존재였다. 국가를 바라보는 간디의 눈과 개인을 바라보는 간디의 눈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았고, 따라서 간디 자신의 동선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선명하지 못했다. 이래서 간디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으로 또는 성의 부문에서도 자신의 주장과 달리 자주 뒷걸음치는 이상한 태도를 취했고, 그 사실들은 모조리 은폐되어 왔다.
젊은 여성과 ‘욕망’을 실험하다

좋은 본보기가 있다. 간디는 힌두와 이슬람의 통일을 외쳤다. 심지어 람(힌두)과 라힘(이슬람)이 하나되는 노래를 작곡할 정도로. 그런 간디를 세상 사람들은 이슬람을 진정으로 존경한 힌두라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기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또 어떨까? 성적 욕망 억제라는 지독한 강박관념에 시달린 간디는 순결함에 도달하겠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를 옆에 재우면서 어떻게 자제했는지를 장황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간디는 이 실험에서 얻은 자기 제어를 승리자의 기분으로 설파했지만 대부분의 남성들도 그 정도 실험이라면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꼭 성인이나 초인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 실험의 대상이 된 여성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여성의 심정은 묻지 않아도 좋은 것인가?
그러면 간디가 노동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자. 이것은 간디의 사회적 역할 가운데 가장 큰 논쟁거리며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간디는 1917년 구자랏의 아흐메다바드에서 신생 노동조합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아흐메다바드는 1870년대부터 면방직과 제조업이 융성했던 곳으로 영국의 맨체스터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섬유산업이 절정에 오르면서 아흐메다바드의 경기도 폭등했다. 그럼에도 아흐메다바드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임금 삭감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들고일어났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제조업자들은 간디에게 접근했다.
간디는 제조업자들에게 노동자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한 노동조합(Majoor Mahajan Sangh) 결성을 지원토록 제의했다. 그러나 그의 구상에는 협력과 조정만 담겨있을 뿐 파업과 같은 산업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노동자의 진정한 권리를 위한 갈등과 투쟁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 이슬람이거나 힌두 극빈자층에 속하는 직조공과 염색공들은 중세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MMS는 종교적·신분적 차별성을 바탕에 깐 동업조합이었지 노동조합이 아니었다.
지배계급에 봉사한 간디의 노동운동관
간디는 종교적 관용을 설파했고 빈곤층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결코 종교적·세습적 계급제도의 타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공고한 카스트 위에 위대한 자신의 성을 쌓았다. 제조업자들은 MMS의 기능을 산업확장 계획 속에 노동자들을 편입시키는 것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따라서 제조업자들에게 MMS는 임금의 회수를 위해 강력한 기율을 매기고 작업조건을 통제하는 도구였다. 실제로 MMS가 만들어지고 난 뒤 제조업자들은 오히려 막대한 수익을 올린 반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푼돈뿐이었다.
이건 간디의 ‘무소유’ 철학이 MMS의 ‘계급조화’ 이데올로기를 추동한 결과, 대기업가들이 부는 팽창해 나갔고 무소유를 실천한 노동자들은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부는 사회의 소유물이라는 간디의 이상이 MMS 지도력의 뼈대를 이루며 노동자들을 무장해제시킨 결과다. MMS가 제조업자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정체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뭄바이 노동자들은 일련의 투쟁을 통해 임금 인상과 8시간 노동을 확보했고 각종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힘을 키운 뭄바이는 점차 인도 전역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노동자를 향한 간디의 패착은 계속되었다. 1935년 간디는 영국 식민통치자로부터 비위 상하는 상투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른바 ‘가족임금’이라 불리는 이 식민통치자들의 제의는 노동자 가족들이나 실직자들의 생존비용 명목으로 임금을 인상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가족당 한명 이내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여성들을 모조리 일터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천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
타협적인 노동운동은 아흐메다바드를 비롯한 구즈랏 전역에서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패권을 양보하거나 자유주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강력한 지배계급의 성을 쌓게 했다. 구즈랏지역의 이런 폐쇄적인 신분중심제 사회구조는 종교적 원리주의와 맞물려 결국 지난 3월 이슬람에 대한 가장 악질적인 학살을 가능하게 한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도에서 유일하게 집권당인 바르티야 자나타당(BJP)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인 구즈랏에서, 집권당의 지원을 받는 힌두원리주의자들 손에 2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해당한 그 비극의 뿌리는 과연 어디였던가? 간디를 다시 생각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오늘날 바르티야 자나타당은 1948년 간디를 살해한 책임이 있는 힌두원리주의 세력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소유와 계급조화를 주창한 간디에게 노동자들의 신분해방투쟁은 과연 식민통치를 연장시키는 악질적인 조건이었을까? 그가 원했던 공동체나 더 나아가 국가의 개념에서 과연 노동자들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간디는 자신의 철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태생적 신분제가 지배하는 인도의 불평등 계급주의적 사회구조나 결함을 은폐했거나 적어도 무시해버렸다. 국가의 설립 과정은 통합과 균질화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러야 한다는 대원칙 마저 무시한 채.
간디의 불가촉천민에 대한 견해도 같은 논리였다.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자면 반드시 단결해야 하는데, 불가촉천민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것이 간디의 생각이었다. 이런 간디의 입장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내세운 다릿(불가촉천민을 포함한 최극빈계급)운동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당시 암베드칼-뒤에 인도헌법(불가촉천민을 힌두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의 주요 기안자가 된-이 주도한 다릿운동의 숫자는 거대하게 불어났고, 그 실체는 주류 힌두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지방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릿은 시간당 노동 기준량과 의회의 선거민 분리 같은 것들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와 대립한 간디는 1932년 단식투쟁을 벌이며 다릿의 지도자 암베드칼이 분리 선거를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결국 다릿에게 15% 의석을 할애하고 불가촉천민들의 학교 입학을 허가한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물론 다릿의 요구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선에서.
모순적인 간디, 인도가 치른 대가
간디가 주창한 마을자치(그람 스와라즈)의 개념도 국가 창설의 시각과 마찬가지였다. 이 지방자치 민주주의의 이상은 내키지 않는 다릿에게 마을 협의회 자리를 허용하는 겉치레였을 뿐이다. 간디주의자의 유산, 그것을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사회 해방의 등불이라기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간디주의자의 유산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유투쟁의 심장이었고, 간디는 더 할 수 없는 큰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인도라는 국가 건설이 노동자의 인격과 자유에 우선한다고 떠들어대는 동안, 노동자의 신분해방과 계급평등의 자유는 더 멀어져 가고 말았다. 결국 인도는 이런 모순적인 간디를 지닌 대가를 톡톡히 치러왔다. 내부 분열 등 간디 시절의 역사적인 문제들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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