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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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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작전 중 문득 영화 같아 씁쓸” 미얀마 지휘관 증언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 미얀마 ‘도시게릴라부대’ 지휘관 꼬마웅을 만나다
“영화 같아서 더 쓰린 반독재 투쟁… 국제사회가 관심 가져달라” 호소
등록 2023-05-19 16:41 수정 2023-05-23 00:17
게릴라 부대가 밀림 속에서 훈련하고 있다. 꼬마웅(가명) 제공

게릴라 부대가 밀림 속에서 훈련하고 있다. 꼬마웅(가명) 제공

오래 군부독재를 겪던 미얀마는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정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승리하며 민주주의의 문을 열어젖혔다. 2020년 총선에서 NLD가 다시 대승을 거두자 군부는 2021년 2월1일 또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초기 평화적 시위와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저항하던 시민들은 군부의 총격과 함께 빠르게 무장투쟁으로 넘어갔다. 미얀마인들은 이를 ‘봄혁명’이라 칭한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시민방위군(PDF·People’s Defense Forces)과 도시게릴라부대를 조직했다. 한때 160여 개이던 도시게릴라부대는 대부분 군부에 체포되거나 와해돼 현재 수십 개가 활동하고 있다. 2023년 5월 초, 미얀마와 접경한 타이 서북단 매홍손의 한 민가에서 한 도시게릴라부대의 지휘관 꼬마웅(가명)을 만났다. 그에게는 젊은 날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내다 미얀마에 민주화가 진전되던 때 귀환했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워낙 상황이 치열한지라 인물이나 조직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까 조심스러워, 그가 쏟아낸 숨 막히는 정보전과 기습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못했다. 꼬마웅의 얼굴 사진도 싣지 못했다.

호랑이굴에서 호랑이와 함께 사는 도시게릴라
―PDF와 도시게릴라에 대해 말해달라.

둘 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자발적 무장조직이다. 비유하자면, PDF는 호랑이굴 앞에서 호랑이가 나오기를 기다려 잡는다. PDF는 지역 곳곳에서 군부를 타격하고 지역을 방어한다. 군부를 물리친 뒤 새로 구성할 연방군의 모태가 될 것이다. 반면 도시게릴라는 호랑이굴에서 호랑이와 함께 산다. 호랑이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오면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도시게릴라는 대도시에서 평범한 생활인으로 지내다 군부의 핵심을 공격한다.

군부는 양곤을 비롯한 대도시의 평화를 떠벌리고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까지 받는다. 양곤의 평화는 곧 쿠데타의 성공이자 우리 혁명의 실패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군부가 위장된 평화를 쿠데타 성공으로 포장하지 못하도록 도시를 흔드는 것이 도시게릴라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호랑이가 굴에서 튀어나가면 밖에선 PDF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2023년 3월 말 PDF 대원 셋이 치료하러 타이로 넘어갔다가 잡혀 바로 미얀마 군부 쪽에 넘겨졌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은 사살되고 두 사람의 생사는 알지 못한다. 4월 말에는 PDF 대원 둘이 무기와 함께 발각돼 타이에서 조사받고 있다. 또 미얀마 군부로 넘길까 걱정이다. 타이와 미얀마의 군부는 밀착 협력하고 있다. 타이 경찰과 끄나풀들은 밀입국한 미얀마 피란민을 잡아들였다가 돈을 받고 풀어주는 식으로 돈벌이한다. 자금과 무기 등 많은 것을 타이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선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국제사회가 우리 목숨에 관심 갖고 이런 일에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미얀마 군부 병력이 2023년 5월12일 미얀마 중부 사가잉주의 탄진 마을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태어난 지 넉 달 된 아기는 중상을 입고 아기 엄마는 숨졌다. <미얀마 투데이> 페이스북 갈무리

미얀마 군부 병력이 2023년 5월12일 미얀마 중부 사가잉주의 탄진 마을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태어난 지 넉 달 된 아기는 중상을 입고 아기 엄마는 숨졌다. <미얀마 투데이> 페이스북 갈무리

―어떻게 훈련하나.

PDF는 자발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도시게릴라는 좀더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도시에서 군부에 가까이 접근하고 지원 병력 없이 작전을 수행하니 주체적인 실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길에서 남루한 차림으로 과일 행상을 하는 사람이 은밀하게 타깃의 정보를 수집해서 가장 적절한 때 과일 더미 속의 무기를 꺼내 실행한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다. 작전 중에 문득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씁쓸하다. 대원들은 소수민족 특수부대에서 훈련한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교관들이 체력단련과 사격, 화학과 전자 지식 등을 가르친다. 만약 잡힐 경우 아는 것을 다 말하고 꼭 살아남으라 강조한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불필요한 정보는 교환하지 않는다. 대원들도 자기 팀 이외에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몰라야 그 목숨이 산다.

“잡히면 아는 것 다 말하고 살아남아라”
―자금조달은 어찌하나.

혁명은 돈이다. 대원들을 훈련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모든 과정에 큰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우리는 무기까지 개발하고 제작해야 한다. 자금조달에 국외 미얀마인들의 역할이 크다. 손을 들고 팔짝팔짝 뛰며 ‘나는 무엇을 할까요’ 외치는 이들을 향해 나는 치열한 투쟁으로 밝힌 불을 들었다. 그 불빛을 보고 동지들이 모여들었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봤던 오징어잡이배가 떠오른다.

자신과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이니 서로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말 신뢰해도 되는지 확인한 순간 우리는 손을 잡았고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은 현장에서 뛰고, 멀리 있는 사람은 모금에 주력한다. 나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제안했다. “후원만 하겠다면 그 돈 안 받겠다. 후원자가 아니라 혁명의 동지가 필요하다.” 허세가 아니다. 돈이 절실했고 동지는 돈보다 더 절실했다.

나는 여러 번 큰 위기를 겪었다. 동지와 자금을 다 잃고 죽음밖에 아무것도 안 남았을 때, 한 명 또 한 명 기적처럼 연결해가며 지금 조직을 만들었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의지하고 있다. 여전히 자금이 절실하다. 국제사회가 이 간절한 시민혁명에 관심 가져주기를, 한국 시민들이 함께해주기를 간곡히 청한다.

게릴라 부대원이 드론을 이용해 폭탄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꼬마웅 제공

게릴라 부대원이 드론을 이용해 폭탄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꼬마웅 제공

―많은 동지를 잃었다. 어떻게 견디나.

그냥 울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무엇을 할 수 있나. 하지만 슬픔에 길게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차피 이 일은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는다. 내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그 목숨에 보답하는 길 아니겠는가. 마음을 다잡아도 가끔은 그 죽음을 생각하고 울음이 쏟아지기도 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대원의 체포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붉어진 눈을 감았다.) 이 일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들의 목숨이 달렸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나와 동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죽더라도 미래 세대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기를 꿈꾼다. 먼저 간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나도 모든 것을 걸겠다.

급조한 군대, 드론 띄우고 로켓 만든다

―군부가 통치력을 과시한다. 현장에선 이를 어떻게 보나.

현재 군부는 양곤, 바고, 네피도, 만달레이 등 대도시 몇 곳을 통치할 뿐이다. 카야·카친·샨·카렌주 등은 원래 소수민족 지역이고, 사가잉·마궤주는 지금 완전히 전쟁터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군인은 군복을 입고 거리를 지날 수도 없다. 군부가 공군의 지원을 업고 오지 않는다면 대부분 전투에서 PDF가 승리한다.

군부는 지난 60년간 미얀마를 통치했다. 우리는 고작 2년간 급하게 군대를 만들었다. 무기도 없었다. 이 혁명을 시작할 때 국제사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60만 대군을 가진 군부와 맨손 시민들의 전쟁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웃었다. 그러나 우리는 PDF와 도시게릴라 활동을 시작했다. 무기를 달라는 요청을 국제사회가 외면할 때, 우리는 쇠를 두드려 무기를 만들었다. 지금은 로켓도 만든다. 2년 동안 이룬 진전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군부의 공군력에 대응하는 것이 힘겹지만 우리에게는 드론이 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정보기술(IT) 덕분에 실현되고 있다. 전문성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현장에 있고, 국외 전문가들이 온라인으로 기술을 지원한다.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정신력이다. 군부의 군인들은 무기를 가졌지만 의지는 형편없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뭉쳤다. 전투마다 군부는 큰 손실을 본다. 지금까지 전사자 수가 1만5천여 명에 이르고, 1만 명 이상이 PDF로 귀순했다. 군부는 60만 병력이라고 떠벌리지만 우리가 파악하기론 그 절반도 안 된다. 300명 규모 부대의 실인원이 100명도 안 된다고 한다. 한 사람을 입대시키면 성과금으로 500만짯(약 240만원)을 준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입대하나. 인원이 줄었다고 문책받을까봐 보고도 하지 않고 원래 수대로 나오는 월급을 지휘관급이 다 먹는다고 하더라. 완전히 썩었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우리가 승리한다.

시민방위군이 개발한 로켓. Burmese Edition 뉴스 페이스북 갈무리

시민방위군이 개발한 로켓. Burmese Edition 뉴스 페이스북 갈무리

―군부가 국가비상사태를 끝내고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르겠다고 한다.

군부는 선거로 쿠데타에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선거 자체가 불가능함을 자신들도 안다. NLD를 포함해 재등록을 거부한 40개 정당을 군부가 해산시켰다. 꼬꼬지라는 옛 민주화운동가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군사력으로 군부를 이길 수 없다. 이기더라도 이어지는 문제를 다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군부가 건넨 독약을 받아먹었다. NLD를 해산시켰다고 NLD가 정치판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NLD와 국민을 구분하기 어렵다. 민족통합정부(NUG) 구성원도, 지역에서 PDF를 이끄는 이들도 대부분 NLD 소속이다. 2020년 선거 결과 무효화를 선거권자 대부분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군부가 투표소를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은 대도시 몇 곳뿐이다. PDF가 투표소를 가만두겠나. 이런 지경인데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나.

미얀마를 평화와 번영이 깃든 나라로 만들 것

―혁명에 성공하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연방국가 건설을 논의하고 있다. 무력으로 군부를 몰아내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다음에 더 큰 일이 버티고 있다. 규모가 큰 소수민족은 자기 민족에게 자치권을 달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연방제로 가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기준이 민족이나 종교여서는 곤란하다. 카렌주라고 해서 카렌족만 사는 것이 아니다. 어디든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다. 그러니 지역을 기준으로 자치주를 세워야 한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다문화 사회를 이야기한다. 미얀마는 원래 다민족·다문화 사회이고 문화다양성이 살아 있는 나라다. 그런데 시대를 역행해서 민족과 종교를 내세워 서로 적대하고 배척하는 것이 말이 되나. 민족 중시 개념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 NUG는 소수민족 그룹에 ‘함께하면 평화와 번영이 있다’는 확신을 줘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각 소수민족과 주변국 사이에 얽힌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무척 복잡하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또 하나 큰 문제는 지금 누구나 무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한번 무장한 사람은 무기를 내려놓기 힘들다. NUG를 중심으로 군대를 통합하고 때가 되면 동시에 무기를 내려놓기로 지금부터 잘 합의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리 겸 군부 최고사령관이 2023년 3월27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 시내를 시찰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리 겸 군부 최고사령관이 2023년 3월27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 시내를 시찰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한국에서 오래 살다 귀환했다. 그 과정을 말해달라.

스무 살 무렵 한국에 가서 20여 년을 살았다. 물 먹고 밥 먹으며 몸이 자란 곳이 미얀마라면 내 정신을 키워 어른으로 만들어준 곳은 한국이다. 한국식 노동에 적응하기 바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미얀마 사람들이 보이더라. 미얀마가 한때는 잘사는 나라였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생하나, 민주주의를 빼앗겨 이렇게 됐구나. 절절 아팠다.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매일 미얀마를 생각했다. 혼자 살기에도 좁은 내 방에는 항상 미얀마 사람 대여섯 명이 어울려 살았다. 삐뚤어지려 하면 서로 붙잡아줬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구성하는 단체에 참여하거나 함께 만들며 재미나게 일했다. 한국인과 같이 활동하며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배웠다. 여러 이름이 떠오른다. (그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 이름들을 여기에 옮겨 적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처럼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 스승들이다.

그 배움을 실천하려고 미얀마로 돌아왔다. 크고 작은 실천을 이어가던 중 또 쿠데타가 터진 것이다.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물 위에 그림을 그린 듯하다. 이 혁명에 반드시 성공하고 이제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에는 미얀마 사회와 한국 사회를 더욱 깊이 연결하는 일도 넣으려 한다.

매홍손(타이)=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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