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경제·외교, 군사·기술적 능력을 모두 갖춘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이다. 중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2022년 10월12일 미국 조 바이든 정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국제 지형의 급격한 변화, 특히 중국을 협박하고 억제하고 봉쇄하고 최대한 압박하려는 외부의 시도에 맞서, 우리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확고한 전략적 결의를 유지하고 (…) 강압적인 힘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투지와 결의를 보여왔다.”
-2022년 10월16일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2년 가을,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자국의 최대 위협 세력으로 지목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10월12일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출범한 지 20개월 만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세계 패권의 ‘유일한 경쟁자’로 명시하고 견제 전략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해 공표해왔는데,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처음이다.
10월16일 중국은 일주일 일정의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개막했다. 향후 5년을 이끌어갈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이번 당 대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대관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은 첫날 업무보고 연설에서 ‘외부의 강압’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국지전 승리”까지 언급했다. 세계 양대 강국인 두 나라가 신냉전 대결 구도의 최전선에서 부딪치는 현실이 거듭 확인된다.
중국공산당 당 대회는 중국 지도부가 임기 중 성과를 보고하고 국가 전략 청사진을 제시하는 최대의 정치 행사다. 9671만 명 당원 중 핵심 간부인 중앙위원 200명도 새로 선출한다. 중국 안팎의 최고 관심은 당 대회 폐막 다음날(10월23일)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 쏠렸다.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7명과 당 총서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국가주석을 겸임한다.
앞서 10월12일, 제19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7중전회)는 “시진핑 동지의 당 중앙 핵심, 전당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한 것은 전당·전군과 전국 각 민족 인민의 공통된 염원”이라고 결의했다고 중국 관영 뉴스통신 <신화>가 보도했다. 차기 지도부 구성에서 시진핑 체제 연장을 예고해둔 셈이다. 2018년 중국공산당은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한 헌법 규정을 삭제하고 ‘시진핑 사상’을 헌법 전문과 당헌에 새겨넣어 시진핑 장기집권의 길을 닦았다.
시진핑 주석은 10월16일 당 대회 개막식에서 방대한 분량의 ‘업무보고’ 요약본을 1시간45분에 걸쳐 읽는 연설을 했다. 중국 정부가 영문으로 번역해 공개한 보고서에는 ‘중국 특색의 위대한 사회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 모든 방면에서 현대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단결하자’는 제목이 달렸다. 전략적 과제로는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 신성장 동력과 공동부유, 인민의 삶의 질 향상, 국방 현대화, 일국양제 고수, 세계 평화와 발전의 증진 등을 아울렀다.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2035년부터 금세기 중반까지는 번영하고, 강하고, 민주적이며 조화롭고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2단계 전략’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경제와 관련해서도 특정 국가를 단 한 번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보’(Security)라는 단어가 80번이나 등장한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시진핑 주석이 연설에서 미국에 보내는 간접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특히 “시진핑이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처음 ‘협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세계에서 중국을 “협박·억제·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이다.
대만 문제는 미-중 갈등의 핵심 현안 중 하나다. 시진핑은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며 대만 문제 해결은 중국인의 몫”이라며 “우리는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고 모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옵션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방침은 외부 세력의 간섭과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 분리주의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가 “군사력 신속 전개”와 “국지전 승리”를 언급한 것도 관심을 끈다. 10월17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보도를 보면, 시진핑은 당 대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서에서 “군사력 사용이 정상화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군사작전을 쉽게 전개하고, 위험과 갈등을 통제하며, 국지전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개된 영문판과 시진핑의 당 대회 연설에는 이 대목을 생략했다. 앞서 2017년 19차 당 대회 업무보고에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국지전 승리’(To Win Regional Wars)로 초점을 좁혔다. 대만에서 무력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조 바이든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의 글로벌 우선순위의 첫 번째로 ‘중국과의 경쟁 우위와 러시아 제약’을 꼽았다. “우리의 비전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전략적 도전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수정주의적 외교 정책을 겹치는 강대국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현상 변경 세력’으로 표현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가리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라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걸고 ‘일대일로’를 추진한다. 이는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다. 미국은 이런 움직임을 자국의 세계 패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본다.
미국은 “우리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현상 변화에 반대한다”며 자국을 정점으로 한 세계 질서의 변화를 용인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한 지역에서 국제 질서 붕괴는 다른 지역까지 위험에 빠뜨린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의 완전한 독립이나 중국의 대만 통일 모두 중대한 현상 변화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자칫 무력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두 나라의 근본적 시각 차이에서 비롯한다. 중국은 대만을 반드시 통일해야 할 자국의 일부로 여긴다. ‘하나의 중국’은 결코 양보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대원칙이다. 1984년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정치체제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경제체제가 공존하는 ‘일국양제’를 중화권 통일 정책으로 공식화했다. 이후 중국 지도부는 일국양제가 중국의 완전한 통일 이전까지만 유지되는 한시적, 과도기적 상태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반면 미국은 대만을 사실상 중국과 별개의 주권국가로 본다. 미국은 197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는 수교 당시 중국이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대만의 일국양제 상태가 무력통일로 해소되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할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다”라고 단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바이든은 앞서 2021년 8월과 10월에도 같은 답변을 한 적이 있다.
1979년 1월1일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바로 그날, 미국에선 ‘대만관계법’이 발효됐다. 이 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서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미국의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며 “평화적 수단 이외의 방법으로 대만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대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못박았다. 나아가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무기와 서비스를 제공”하며 “대만 국민의 안보 또는 사회·경제체제를 위협하는 무력이나 기타 형태의 강압에 대한 미국의 저항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대만 안보를 위한 미국의 무력 개입을 허용하는 법적 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의 연장으로 ‘중국몽’이라는 야망 실현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미국은 유일 패권국 지위에 도전하는 중국의 팽창을 묵인할 수 없다. 기성 제국과 신흥 강국의 충돌은 외교·안보와 독자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경제 안보를 두 축으로 앞으로도 한동안 위태롭게 이어질 전망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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