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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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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진 ‘슈퍼 대의원’ 떨고 있는 ‘슈퍼 주류’

미 민주당 대선 전당대회 슈퍼 대의원 투표권 제한 후폭풍…

높아진 ‘풀뿌리 후보’ 선출 가능성
등록 2018-09-04 16:13 수정 2020-05-03 04:29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왼쪽)이 지난 8월17일 앤드루 길럼 플로리다 주지사 후보 지지유세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왼쪽)이 지난 8월17일 앤드루 길럼 플로리다 주지사 후보 지지유세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보자들이 신발끈을 조여매고, 출발선 앞으로 모여든다. 깃발만 올라가면 앞뒤 안 가리고 한꺼번에 내달릴 기세다. 미국 대선은 2020년 11월에나 치러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미 정치전문 매체 은 8월30일 이렇게 보도했다.

“2020년 대선전의 본격 개막이 70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대권을 염두에 둔 상원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적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11월6일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2020년 대선을 위한 ‘비공식적’ 선거운동 기간이 선거 바로 다음날 시작되기 때문에….”

흔히 미국에서 초선 대통령은 당선 다음날부터 재선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모든 일정과 정책 결정 과정도 다음 선거와 맞물린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중간평가 성격의 ‘중간선거’를 하고 나면, 곧바로 차기 대선 준비에 들어간다. 중간선거에서 패한 대통령이라면, 당내 경선까지 걱정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과 정비례해, 야당 대선 주자의 수는 많아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변화 몸부림 거센 민주당</font></font>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은 당선 다음날부터 사실상 ‘레임덕’이다. 차기 대선에 나설 잠재적 후보자들도 일찌감치 흩어지고 뭉치기를 되풀이한다. 두 번째 중간선거까지 치르고 나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관심마저 멀어진다. 다음번 대선 준비가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지낸 시드니 블루먼솔은 1980년 펴낸 책에서 이런 상황을 ‘영원한 선거운동’이라고 표현했다.

중간선거를 두 달여 앞둔 미국 정치권에선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주의회 후보 결정을 위한 막바지 당내 경선이 한창이다. 2016년 대선에서 예상 밖 패배를 경험한 민주당에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거세다. 현역인 당내 주류 정치인에 도전장을 낸 청년 진보파가 미 전역에서 잇따라 기성 질서의 한 축을 허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2016년 대선 때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 후보에 열광했다. 대선 패배 뒤 이들 세대가 정치 전면에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말 미국 뉴욕주 14번 선거구 연방 하원의원 경선에서 차기 하원의장 유력 후보였던 10선의 조 크롤리(56) 의원을 꺾고 승리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28) 후보가 신호탄이었다. 8월28일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 경선에서 연방 하원의원 출신 그웬 그레이엄을 꺾고 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앤드루 길럼(39) 전 탤러해시 시장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11월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길럼 전 시장은 플로리다주 역사상 첫 흑인 주지사가 된다.

2020년 대선을 향한 민주당의 사전 준비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8월25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총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슈퍼 대의원’ 제도 개편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간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서 진보 성향 후보자들이 약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슈퍼 대의원 제도는 1984년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 때부터 도입됐다. 대중적 인기만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면 당의 정책 기조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본선 경쟁력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에 따른 조처였다. 실제 베트남전 찬반을 놓고 유혈 사태까지 벌어졌던 1968년 전당대회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선출직 대의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대선 후보를 뽑았던 민주당은 공화당에 참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도입된 슈퍼 대의원 제도는 당 소속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당 지도부와 주요 당직자 등에게 ‘당연직 대의원’으로 후보 선출권을 부여했다. 주별로 진행되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뽑힌 선출직 대의원은 특정 후보에게만 표를 줄 수 있지만, 슈퍼 대의원은 원하는 후보에게 자유롭게 표를 줄 수 있다. 이후 슈퍼 대의원 규모는 점차 늘어나 전체 대의원의 15~20%에 이르게 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진 경쟁</font></font>

슈퍼 대의원의 규모가 늘면서 영향력도 점차 커졌다. 당내 주류 세력인 슈퍼 대의원이 경선 초기부터 대거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면, 해당 후보에게 ‘쏠림 현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경쟁 후보가 정치 신인이거나 상대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 있을 때, 이런 현상의 부작용이 더욱 커졌다. 2016년 대선 때가 대표적이다.

2016년 대선 민주당 경선은 초반부터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니 샌더스 후보의 2파전으로 치러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으로 뉴욕주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 주류의 핵심이다. 버니 샌더스 후보는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경선에 도전장을 낸 ‘외부자’다. 당시 민주당 슈퍼 대의원 712명 가운데 클린턴 후보 쪽이 570명을 확보한 반면, 샌더스 후보 쪽은 44명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진 경쟁은 공정성 시비가 일기 마련이다. 본선에서 클린턴 후보가 석패하면서, 슈퍼 대의원 제도를 둘러싼 민주당 안팎의 비판이 거세졌다. 민주당전국위가 일찌감치 슈퍼 대의원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내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고위 당직자 등 현직 슈퍼 대의원을 중심으로 “후보 선출권이 없다면, 슈퍼 대의원은 뭐하러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2016년의 논란을 겪으며 교체된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제도 개편 논의가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톰 페레스(56) 전국위원회 의장과 하워드 딘·팀 케인 등 전국위 의장 출신 유력 인사들도 제도 개선에 힘을 실었다.

8월25일 압도적으로 통과된 개편안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1차 투표 때 슈퍼 대의원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는 후보가 없는 경우, 슈퍼 대의원도 참여하는 2차 투표가 치러진다. 하지만 통상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무대에는 2명의 후보가 오르는 게 관례다. 경선이 진행되는 사이 선출 가능성이 낮은 후보는 하나둘 경선 포기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주류 세력 일부 경선에서 교체</font></font>

슈퍼 대의원 제도 개편으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민주당 주류의 입김은 눈에 띄게 약해질 전망이다. 반면 풀뿌리에 기반한 정치인의 후보 선출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주류 세력의 일부가 경선에서 이미 교체됐다. 2020년 대선을 치를 민주당은, 2016년의 민주당과는 차이가 클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미국 대선전은 2018년 11월7일 본격 개막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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