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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타락 vs 군정의 탄압

타이 정글사원의 돈세탁 및 부정 헌금 수령, 호랑이 밀수출·도살 논란 틈타 전 총리 탁신 세력 확장 경계하며 불교계에 철권통치 휘두르는 군정
등록 2016-07-07 08:19 수정 2020-05-02 19:28
#장면1

지난 6월16일 타이 특별수사국(DSI)은 경찰 병력을 동원해 방콕 북부와 가까운 빠툼타니 지방 담마까야 사원으로 진입하려 했다. 작전은 실패했다. 신도 수백 명이 사원 진입로에 앉아 오랜 시간 미동 없이 집단명상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경찰이 사원에 진입해 체포하려던 이는 사원의 주지승 담마차요였다. 그는 최근 돈세탁 및 부정 헌금 수령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었고 타이 국내 언론의 머리기사에도 종종 올랐다. 4월25일 담마차요는 경찰 출두를 약속했지만 “너무 아프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드론까지 띄워 3.64km²의 방대한 사원 구조 파악에 나섰고 “필요 병력이 2만5천 명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장면2

그보다 보름 전쯤인 5월30일, 이번엔 방콕 서쪽 방향에 위치한 깐짜나부리 지방의 한 불교사원 앞에서 공권력과 사원 쪽이 실랑이를 벌였다. 루앙따부아 사원, 일명 ‘호랑이 사원’이다. 국립공원부 야생동식물보전팀 소속 무장순찰대원, 수의사, 경찰 등 수십 명은 그날부터 5일간 이 사원의 호랑이 147마리를 압수해 국립공원 시설로 이송했다.

사원서 발견된 호랑이 와인, 가죽, 사체
6월2일 타이 방콕의 호랑이 사원에서 불법으로 도살된 호랑이 가죽이 발견됐다. AP 연합뉴스

6월2일 타이 방콕의 호랑이 사원에서 불법으로 도살된 호랑이 가죽이 발견됐다. AP 연합뉴스

사원은 그동안 호랑이를 불법 사육하고 옆 나라 라오스와 베트남을 거쳐 중국으로 밀수출한 의혹을 받아왔다. 2014년 12월 호랑이 3마리가 실종됐다는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나오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새끼 호랑이 40여 마리의 사체가 냉장 보관돼 있었고, 죽은 새끼 호랑이를 구겨 담은 ‘호랑이 와인통’이 발견됐다. 호랑이 사체 부위를 활용한 부적도 나왔다. 주지승 비수티사라데라의 방에선 거대한 호랑이 가죽이 나왔다. 타이는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호랑이 사원은 1999년 타이-버마 국경 인근인 깐짜나부리 지방에서 밀렵꾼에게 어미를 잃고 “난민이 된” 호랑이 새끼 2마리를 보살피면서 ‘야생동물보호센터’ 노릇을 시작했다고 주장해왔다. 호랑이 사원의 불법 사육 문제를 지적한 타이야생동물의친구들재단(WFFT) 대표 에드윈 뷔엑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호랑이 사원은) 다른 코끼리캠프에서 1마리당 5만밧을 주고 4마리를 구입하면서 호랑이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찌됐든 왜 불교사원이 성적 흥분을 일으킨다는 호랑이 와인을 제조하는가. 6월9일 기자회견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겠다던 주지승은 갑자기 “심장이 아프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불교사원과 공권력이 반목하던 6월이 질퍽하게 지나갔다. 그동안 승려들의 성 추문이나 호사스런 생활이 입방아에 오르내린 일은 적잖이 있었지만 호랑이 사원의 타락상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사원은 입장료 600밧을 받고, 호랑이와 사진을 찍거나 먹이를 주는 경우 돈을 요구하며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계불교야생동물보호소’라는 간판은 ‘보호료’가 필요하다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이 사원에서 6년을 보낸 자원봉사자 탄야 에르진리오글루는 타이외신기자클럽이 6월15일 마련한 긴급토론에서 “호랑이 보호에 중점을 둔 자원봉사자들은 사원의 투어리즘 행태에 불만이 많았다. 다방면으로 이런 행태를 제약하려 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찻라폰 탐통은 “여자는 승려들의 공간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린 정말 호랑이 부적, 와인, 가죽에 대해 몰랐다”고 했다.

호랑이 사원으로 발칵 뒤집힌 6월 초순부터 담마까야 사원의 대치 상황이 고조된 중순을 지나며 타이 사회는 충격과 번민에 빠졌다. 생명윤리는 물론 불교상업주의, 정교분리 원칙 등 그동안 관심 영역 밖에 있던 담론이 쏟아졌다.

두 사원은 닮은 점도 있지만 쟁점 면에선 차이가 있다. 우선, 두 사원 모두 ‘정글사원’(Forest Temple)으로 시작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정글사원은 초기 불교의 고행을 실천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산사를 말한다. 그러다 신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 던져준 인기와 이윤을 챙기기 시작했다.

불교상업주의 대명사 담마까야 사원

담마까야 사원 역시 1970년 일종의 정글사원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1980~90년대 타이의 경제성장 궤도에 적극 융화하며 불교상업주의의 화신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타이의 여타 사원과 달리 깔끔한 풍경과 놀라우리만치 잘 조직화된 사원은 ‘헌금을 강조하는 불교’에 개의치 않는, 돈이 있는 중산층과 부유층을 빨아들였다.

이동통신사 디택(DTAC) 대표인 분차이 벤차롱꿀도 신도가 됐다. 현 주지승 담마차요의 돈세탁 혐의와 맞물려 기소된 끌롱찬 신용조합 수빠차이 스리수빠악손 전 대표는 14억밧(약 460억원)의 ‘헌금’을 갖다 바쳤다. 2009년 미국 뉴욕주립대가 출간한 책 (Nirvana for Sale?)는 이런 담마까야 사원의 불교상업주의를 집중 분석하기도 했다. 불교상업주의의 대명사 담마까야 사원에서 탈이 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과 2002년에도 담마차요 스님은 돈세탁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담마까야 사원에 대한 군정 수사에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꼬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호랑이 사원과 담마까야 사원의 차이다. 전자는 생명윤리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법 집행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 후자는 사법처리 과정 자체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담고 있다.

공권력이 진입하기 며칠 전, 기자를 만난 파수라 단타마노 담마까야 사원 국제관계국장은 군정의 표적수사를 의심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72살 아픈 노승을 체포하겠다고 2만5천 명 병력을 운운한 건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고 했다. 또 “헌금이 세탁된 돈인지 부정한 돈인지 알기 어렵다”며 “모든 헌금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항변했다. 6월16일 신도들 명의로 낸 성명은 “주지승은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 한 사법절차에 응하지 않으셔야 합니다”라며 군정의 정통성을 에둘러 비판했다.

승려 첩자 활용한 군정
전문가들은 현재 타이 불교를 둘러싼 갈등에 탁신 세력을 저지하려는 군정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2010년 5월 군의 레드셔츠 진압 당시 끌려가는 승려들. 이유경

전문가들은 현재 타이 불교를 둘러싼 갈등에 탁신 세력을 저지하려는 군정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2010년 5월 군의 레드셔츠 진압 당시 끌려가는 승려들. 이유경

담마까야 사원 수사는 지난 1월에 시작돼 지금까지 해결을 보지 못한, 타이 불교 최고지도자 승왕직 임명 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지난 1월 타이승가협회는 ‘70:0’ 만장일치로 빡남 사원의 주지승 마하 라자망갈라찬(90·이하 솜뎃추앙)을 제20대 승왕 후보로 추대했다. 추대된 후보는 총리의 추인을 거쳐 국왕이 임명하면 공식화된다.

그러나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가 추인 절차를 미루고 있다. 솜뎃추앙 후보가 담마까야 사원과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담마까야 사원은 군정의 정적이나 다름없는 전 총리 탁신 세력과 선이 닿아 있다. 군정 처지에선 솜뎃추앙 승왕 체계를 허용하면 담마까야 사원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고 그로 인해 탁신 세력이 종교계에서 영향력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담마까야 신도들의 정치 성향은 다양하지만 군정은 사원 자체를 ‘탁신 세력’으로 보고 저지에 들어간 셈이다. 이는 군정이 지금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통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고 불교계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담마까야 사원을 비롯한 타이 불교계의 ‘상업주의’ ‘도덕적 타락’ 등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권력의 수사는 정치적 목적을 바탕에 깔고 있다. 불교학자 솜릿 루에차이는 “종교를 향해 정권이 휘두르는 칼은 종교 자체의 타락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군정은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해 승려를 첩자로 활용하고, 승려들은 또 이에 응하고 있다. 붓다 이싸라가 대표적이다. 그는 승왕 후보자의 벤츠 부품 밀수입 의혹을 제기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쁘라윳 총리가 승왕 후보 추인을 미루는 데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담마차요에 대한 돈세탁 및 부패 혐의 수사를 촉구한 것도 그다.

붓다 이싸라는 군인 출신으로 현재 중부 나콤파톤 지방 오노이 사원 주지승으로 있다. 그는 2013~2014년 ‘방콕 셧다운’ 등을 주도하며 7개월 동안 방콕 거리를 어지럽힌 왕정주의 시위대(이른바 ‘옐로셔츠’)의 마지막 버전인 민중민주주의개혁위원회(PDRC)의 지도부 중 한 명이었다. 언제나 경호원을 대동하며 과격한 정치승려의 행보를 보여온 인물이다. 예컨대 2014년 2월1일 잉락 친나왓 정부 시기 총선 하루 전날 방콕 북부 락시 구역에서 투표함 이송을 방해하며 총격전을 촉발한 PDRC 시위를 조직했다.

엄밀히 말해 타이 국민은 승왕 승계에 별 관심이 없다. 약 95%가 불교도라지만 개인 신앙이거나 삶의 지침일 뿐이다. 국민적 정서에 의거해 타이는 제도적·문화적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주의 전통을 잘 유지해왔다. 이웃 나라 버마나 스리랑카처럼 불교와 민족주의를 접목해 소수민족과 소수종교를 공격하는 ‘불교 쇼비니즘’의 광기 같은 건 타이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교분리 원칙 흔들리는 타이

그런데 오히려 정권이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정교분리 원칙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종교가 정치 위에 군림하는 여느 신정국가들과 달리 현재 타이 군정은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즉, 정치가 종교를 통제하려 들면서 종교-정치 분리라는 근대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복잡한 정치 수사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에 빠진 타이 불교의 타락은 그 자체로 미동 없는 진실이다. 정치 분쟁에 지치고 타락한 종교 뉴스가 지겨운 타이에선 요즘 종교를 ‘회의’하는 자가 늘고 있다.

빠툼타니·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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