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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소유의 자유를 제한하라

미국 올랜도 클럽 참사 이후 오는 11월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총기 규제’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유리할까
등록 2016-06-23 16:33 수정 2020-05-03 04:28
미국 올랜도 총기 테러가 발생한 6월12일, 시민들은 백악관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 이 깃발은 1978년 이후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번 테러가 일어난 게이클럽 이름 ‘펄스’(PULSE)가 새겨졌다. REUTERS

미국 올랜도 총기 테러가 발생한 6월12일, 시민들은 백악관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 이 깃발은 1978년 이후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번 테러가 일어난 게이클럽 이름 ‘펄스’(PULSE)가 새겨졌다. REUTERS

“총기에 관해서 규제의 ‘규’ 자만 입에 올려도 정부가 마치 ‘계엄령’이라도 선포한 것처럼 비난을 합니다. 총기 규제 논의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게 미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지난 6월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총기 소지 자유화법’을 성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국 공영방송 <pbs>가 생중계한 ‘타운홀 미팅’(대통령과 시민의 대화)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슬람국가(IS) 추종 인물을 파악해도, 이들이 총기를 구매하는 건 막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FBI가 감시했던 범인
“미국이 왜 총기만큼은 다른 것처럼 대하지 못하느냐는 거죠? 질병관리본부(CDC)가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률 연구를 발주하는 것도 의회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이번 미팅에 오기 직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IS 누리집을 들락거리는 미국 시민 명단을 보고받았어요. 이 가운데 ‘IS 추종 의심자’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다른 시민과 같은 비행기에 타는 건 정부가 막을 수 있어요.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미국총기협회(NRA) 때문에 ‘IS 추종 의심자’가 미국에서 총이나 무기를 사는 건 막을 수 없어요. 신원 조회를 못하니까요. 누군지 아는데도 FBI가 총기 구매를 막을 권한이 없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답변은 ‘총기 소지 자유화’를 주장하는 한 시민의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이 시민은 “나쁜 사람의 행동만 규제하고 처벌하면 된다. 왜 착한 사람이 총기를 갖고 자기 자신을 지킬 권리까지 빼앗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소지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규제도 없는 지금 상황은 몰상식에 가깝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로부터 열하루 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사살된 범인 오마르 사디크 마틴(29)은 ‘IS 사상’을 추종하는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 이른바 ‘외로운 늑대’로 보인다. 그는 부모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아프간계 미국인으로, 6월12일 올랜도의 게이 전용 클럽 ‘펄스’에서 총기를 난사해 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하게 했다.
클린턴-트럼프 정면충돌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FBI의 감시 명단에 마틴이 두 차례나 포함된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13년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해외 이슬람 테러조직의 일원이며 FBI가 조사하면 이슬람을 위해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는 신고가 들어온 거였다. 이듬해 마틴이 미국인 IS 테러리스트 모너 모하마드 아부살라와 친한 사이라는 것이 알려진 뒤 FBI는 다시 마틴의 뒤를 캤다. 아부살라는 미국에서 시리아로 건너가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켰는데, 미국에 있을 때 마틴과 같은 모스크에 다니며 친분을 유지했다. 하지만 FBI의 두 차례 조사에서 테러 모의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후 마틴은 ‘감시 명단’에서 빠졌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마틴은 직장 동료에게 하루 수십 통씩 문자를 보내는 등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양극성장애(조울증) 증상을 보였다. 자신의 아내에게도 “외부 활동을 하지 말고 집 안에만 있을 것”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물들어 테러를 저질렀는지, 동성애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개인적 증오가 테러 동기가 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건 또다시 끔찍한 총기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총기 소지 자유화’ 논란이 대선 쟁점으로 뜨겁게 번지고 있다. 특히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게이클럽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난 만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둘은 부딪치고 있다.
“이번 테러로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성소수자 여러분, 여러분과 연대하는 수많은 미국인 가운데 저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클린턴)
“테러범인 극단주의 이슬람교도를 계속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면서 무슨 낯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위로를 건넵니까?”(트럼프)
“선정적인 반이슬람주의를 퍼뜨리고 무슬림 미국인들의 가족과 친구, 사업이나 여행 목적으로 미국을 찾는 무슬림 모두에게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인가요? 평화를 사랑하고 테러를 단호히 거부하는 대다수 무슬림 미국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클린턴)
“저 살인마가 왜 이 땅에 살게 됐죠? 솔직히 생각해보세요. 미국이 애초에 그 부모를, 가족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극단적인 사상 자체는 서구의 가치, 제도와 근본적으로 맞지도 않아요.”(트럼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을 감행하는 데 쓸 무기를 쉽게 구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올랜도와 샌버너디노에서 쓰인 공격용 총기 같은 살상무기의 판매는 당장 막아야 합니다.”(클린턴)
“클린턴은 미국인들에게 총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테러리스트를 받아들일 궁리를 하고 있어요. 적들이 우리 땅에 오는데 우리에겐 더 이상 총이 없습니다. 이제 저들은 원하는 대로 이 땅에서 활개 치고 다니겠죠.”(트럼프)
“FBI가 잠재적으로 테러에 가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총을 살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클린턴)
이 대화는 가 올랜도 테러 직후 클린턴과 트럼프의 연설 일부를 골라 논쟁 형식으로 이어붙인 것이다. 민주-공화 대선 후보가 ‘총기’ ‘이민’ 같은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정반대 주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슬림 배척은 호응 못 얻어

올랜도 총기 테러 이후 ‘총기 규제’가 미국 대선에서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는 “살상무기 판매를 당장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클린턴은 적들을 막을 총을 없애려 한다”며 반박한다. AP, AFP 연합뉴스

올랜도 총기 테러 이후 ‘총기 규제’가 미국 대선에서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는 “살상무기 판매를 당장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클린턴은 적들을 막을 총을 없애려 한다”며 반박한다. AP, AFP 연합뉴스


“오바마와 클린턴, 민주당은 미국인의 총을 모조리 압수하려 한다.”
이는 트럼프를 비롯해 미국총기협회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이 반복하는 주장이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시민의 질문에 답할 때도 “‘시민들의 총을 압수하려 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이렇게 끔찍한 총기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트럼프는 ‘총은 잘못이 없다. 총을 쓰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총기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 문제 있는 사람은 ‘미국인’이 아니라 무슬림, 이민자, 혹은 유색인종이다. 트럼프에게 이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와 동의어다.
총기 규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서도 의외의 결과가 있다. 트럼프가 총기를 옹호하고 무슬림을 배척하는 발언은 대선을 앞두고 자칫 표를 깎아먹는 자충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이트 콘 기자는 6월14일 ‘왜 총기 규제 문제가 트럼프에게 유리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설명했다.
콘은 퓨리서치 여론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노동자 계층을 공략하는 데 ‘총기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트럼프가 클린턴에게서 빼앗아올 수 있는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유권자층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층에서 ‘총기 소유 권리가 규제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이들이 대졸 이상 백인 민주당 지지층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아울러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하는 확실한 방법도 ‘총기 규제 반대’ 논리를 내놓는 것이다. 총기 규제는 보수층이 ‘민주당과 클린턴의 손에 맡기기 가장 싫은 이슈’로 조사된 바 있다. 보수층이 싫어하는 이슈가 이민, 환경, ‘큰 정부’와 세금, 문화적 다양성, 동성애 등이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반발을 부르는 게 총기 규제 이슈다. 트럼프로서는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도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올랜도 테러로 ‘무슬림을 미국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총기 문제와 반대로 무슬림을 배척하는 태도는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테러처럼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의 소행이라면 이민자를 막자는 주장은 별 효과가 없다. 마틴은 알려졌다시피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마틴의 전부인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종교가 나와 같은 무슬림이긴 했지만, 완전히 미국화된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외로운 늑대’와의 싸움은 연대로
테러집단에 대한 실질적 대응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알카에다가 ‘외로운 늑대’의 봉기를 선동해왔다고 해도, IS가 실체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들은 물리적 실체를 꼭꼭 숨긴 채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파고든다. 불만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외로운 늑대’가 되라고 사주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을 심는다.
‘외로운 늑대’와의 싸움은 전통적인 물리적 힘이나 정보력 우위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테러집단을 상대할 정치력과 함께 이들의 심리전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힘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는 건전한 대화나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칼럼니스트 마거릿 설리번이 올랜도 테러 당일에 쓴 칼럼은 주목할 만하다. 설리번은 “올랜도 사건이 일어난 지 채 1시간도 안 됐는데 수많은 정치인, 논평가들이 속보 뉴스에 출연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너무 쉽게 퍼뜨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다렸다는 듯이 ‘총기 규제가 문제다’ ‘이슬람교가 문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문제다’라는 주장이 아무 근거 없이 쏟아졌다. 사망자 수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 시각이었지만, “증오범죄가 아니다”라며 일찌감치 사건의 성격까지 규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올랜도 테러의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미국 사회가 취약했던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갈등과 충돌을 조정하는 것이 선거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다. 2016년은 마침 미국에 대선이 있는 해다.
내슈빌(미국)=송인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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