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미얀마)의 최대 도시 랑군은 동남아의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다. 크고 작은 광고판, 새로 들어온 중고차들로 붐비는 도로, 보행로에 들어선 상점과 찻집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랑군 시내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버마 개혁·개방의 중심지인 이곳은 민주화와 경제개발에 대한 기대로 한창 들떠 있다.
반면 랑군에서 1480km 떨어진 카친주의 수도 미치나 근처, 와잉모시에 자리한 마이나 난민촌에는 매일같이 난민이 도착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그 밖에도 10여 개의 난민촌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규모인 마이나 난민촌에 수용된 난민은 420여 가구, 23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18살 이하 미성년자가 800여 명이다. 유엔난민기구가 설치한 임시 거처는 대나무로 지어진 30m 남짓한 길이의 공동주택이다. 최대 5~6가구가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마이나 난민촌에 있는 난민들은 대부분 2011년에 살던 마을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지난 9월 난민촌을 찾았을 때, 바로 전날 그곳에 도착했다는 네 아이의 어머니인 타우미(47)는 가슴팍에 젖먹이 남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전쟁은 그녀로부터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헤어진 가족과 만나기 위해 내전 지역과 국경을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치렀고, 3년 만에야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타우미는 90개가 넘는 난민촌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10만 카친 난민 중 한 명이다. 전쟁의 상흔이 깊은 이들에게 버마의 개혁·개방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버마에서 공식적으로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정 정부가 출범한 지 어언 5년이다. 11월8일 총선은 정치 개혁의 척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NLD)과 과거 군사정부가 세운 여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매일같이 도착하는 새로운 난민수치 여사는 버마의 억압받는 군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하지만 그녀가 주창하는 비폭력주의 대중운동은 버마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투쟁의 전부가 아니다. 지금 버마에는 수십 개의 소수민족이 이끄는 반정부 무장단체가 있다. 올해만 해도 전국적으로 5개 반군 단체가 각지에서 정부군과 300차례가 넘는 교전을 벌였고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유엔에 따르면 내전과 민족·종교 분쟁으로 2011년 이후 발생한 난민의 수가 버마 전역에 50만 명이라고 한다.
카친주와 북부 샨주는 내전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카친독립군을 비롯한 반군 단체들이 정부군과 싸우고 있다. 버마의 젖줄인 이라와디강의 근원지이기도 한 카친주는 히말라야산맥의 끝자락과 닿아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다.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지만 거주민은 169만 명에 불과하다. 2011년 6월 이후 버마 정부와 카친독립군 간 휴전협정이 파기되면서 17년 만에 다시 내전에 휩싸였다.
카친주에는 난민촌이 모두 90개가 넘고 미치나 반경 60km 내에도 30여 개의 난민촌이 자리하고 있다. 카친주에는 500개가 넘는 교회와 성당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단체가 바로 카친침례교단이다. 카친침례교단은 종교단체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민간인 구호와 의료·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카친 난민촌 74개를 관리하고 있다.
“9월부터 다른 구호품은 모두 중단되고 쌀만 지원되고 있습니다. 난민촌은 지금 미어터지고 있습니다. 피란민 중에 정신적 외상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고요.” 그래도 지원이 가능한 난민촌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카친침례교단의 라마야 목사는 말했다. 수프라붐 지역에서 3개월 전 발발한 전투로 1200여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들은 전투를 피해 도시에서 20km 떨어진 정글로 피신해 있다.
그런데 버마 정부는 지난 6월 카친침례교단이 하천 운송으로 난민들의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것을 금지했다. “정부는 구호물품이 반군에 전달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고 라마야 목사는 말했다. 카친침례교단은 비밀리에 구호품을 운송하려 애쓰고 있지만, 정부군의 눈을 피해 물자 수송을 하다보니 결국 반군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카친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친 반군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았다. 17년 휴전 기간 동안, 정부군은 카친족 억압을 강화했다. 버마 정부는 카친주에 주둔하는 군인을 대폭 늘렸을 뿐 아니라 토지와 자원을 수탈했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정부군에 의한 강제노동과 범죄에 노출됐다.
“난민촌이 마을보다 안전해요”10대 자녀 둘을 둔 자오룽(47)은 마을에서 떠나던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졌어요. 짐을 제대로 쌀 시간이 없어 조금의 돈과 옷가지만 챙겨 떠났습니다.” 전투가 잠잠해진 뒤에도 원래 살던 마을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지뢰나 미폭발 탄두가 마을에 남아 있을 위험이 있고,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정부군도 두렵기 때문이다.
“뭐라도 건질 것이 있을까 해서 마을에 다시 간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난민촌이 내가 살던 마을보다 더 안전해요. (정부) 군인들이 종종 카친 여성을 성폭행하므로 군인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버마 국내외 인권단체는 버마 정부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강제노역·살해·성폭행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고발하고 규탄해왔다.
지난 1월, 북부 샨주의 쿳카이 마을에서 카친침례교단 소속의 여교사 두 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20살과 21살인 여교사들의 주검에는 성폭행과 잔혹 행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격분한 카친 지역사회는 살인 사건이 정부군의 행적이라고 지목했지만 버마 정부와 군은 지금까지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민정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버마 정부군이 소수민족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폭행은 2010년에서 2014년 동안 100건이 넘는다고 버마 여성연맹은 발표했다.
힘겨운 상황의 난민들에게 11월8일 총선은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할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0월3일 수치 여사가 미치나를 방문해 대규모 선거운동을 벌였다. 연설에서 수치 여사는 “야당(NLD)은 버마에 있는 모든 민족을 대표하는 당이며, (선거에) 승리한다면 다른 정당들과 함께 국가적 화해와 민주적 연방정부를 꾸리기 위해 함께 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친 사회는 총선에 다소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카친침례교단의 라마야 목사는 “카친족 사람들 중에 선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변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친 난민들은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지금까지 카친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는 서운함을 표시했다.
카친 문제에 침묵해온 아웅산 수치에도 냉담난민 자오룽은 “내 살 집도 없기에 선거에 관심이 없다. 굳이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면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난민촌에 전날 도착한 타우미는 총선이 열린다는 사실도 마이나 난민촌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있었던 난민촌은 반군이 통치하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아예 선거가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저녁이 되자 난민촌의 부엌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난민촌 중앙 공터에는 내전에 희생된 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공터 옆 난민촌 사무소 앞에는 전날 도착한 난민들이 보급품을 받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버마에 봄이 온다면, 이들 소수민족에게도 그 봄이 찾아올까.
버마=김경미 스웨덴 웁살라대학 평화분쟁학 박사과정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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