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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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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5.2km, 고통의 거리는 이어져 있다

고향 가족들 걱정에 소식을 기다리고 모금을 하는 한국의 네팔인들
등록 2015-05-06 16:10 수정 2020-05-03 04:28

고향에 재난이 닥치면 이민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이 가지 못한다. 네팔 지진같이 천재지변이 일어난 곳으로 간다고 해도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마 다와 파상(한국명 민수·티베트명 텐징 델렉)은 발만 동동 구르지 않는다. 티베트인이지만 네팔에서 나고 자란 그는 긴급구호 물품을 보내고 싶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300만원, 히말라야 여행동호회 150만원, 노동인권회관 64만원, 황선영, 박경원, 이장규…. 이렇게 모금한 748만원으로 우비, 텐트, 침낭, 손전등 등을 사서 보냈다.

서울 원남동 네팔 하우스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한 네팔 사람이 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원남동 네팔 하우스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한 네팔 사람이 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도 오지인 고향 소식은 없었다

그가 보낸 물품은 동생이 이고 지고 간다. 카트만두의 단체 ‘드록포’(drokpo)에서 활동하는 셋째동생이 신두팔촉 지역에서 긴급구호 활동에 나선다. 마을의 90%가 파괴되고 사망자가 숱하지만,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해발 2600m 네팔-티베트 국경에 자리한 마을로 동생과 동료들은 형이 보낸 구호물품을 이고 지고 가야 한다.

지난 4월29일 만난 비노드 쿤워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주한 네팔인협회 회장인 그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 사거리의 ‘네팔 하우스’에 추모 분향소를 차렸다. 카트만두의 부모님, 동생들은 지금 밖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족은 집에 금이 가고 이웃이 숨지는 불행을 겪었다. 하루에 몇 번씩 동생과 통화하는 그는 “동물 사체들이 썩고 사람들이 배설한 오물이 쌓이면서 전염병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그의 전화가 울렸다. 비노드는 “지진 당일에 가족이 여행을 갔는데 며칠째 연락이 없어서 애타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비노드는 그가 보낸 가족 사진을 네팔의 지인에게 보내 가족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 한국의 남편은 네팔의 아내와 딸이 제발 걸어서 집으로 오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역 3번 출구를 나오면 10여 개 네팔 가게가 있다. 4월29일 만난 네팔 음식점 ‘야무나’ 사장 프라단은 가족 소식을 묻자 눈빛이 흔들렸다. “동생과 전화가 안 돼요.” 다행히 동생이 사는 곳은 네팔 동부로 피해가 크지 않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걸지만 닷새째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는 “산골이라 원래 이런 경우가 가끔씩 있었다”며 애써 안심하려 한다. 이날 밤 9시, 방송에서 네팔 뉴스가 나오자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도 오지인 고향 소식은 없었다. 그처럼 네팔 타운 사람들은 뉴스 채널을 켜놓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족 소식 챙기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서”

“지난 주말부터 사람들이 없어요.” ‘히말라얀 레스토랑’ 직원인 구릉 라비가 말했다. 며칠째 네팔 타운에 네팔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구릉은 “가족 소식 챙기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포카라 출신인 구릉은 “포카라는 피해가 덜하지만, 어제 뉴스에서 다시 진도 9가 넘는 강진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며 불안해했다. 여진이 계속되고, 천막으로 하늘만 가리고 노숙하는 네팔 사람들과 한국의 네팔인들도 함께 재난을 겪고 있다. 한국에 사는 네팔인은 2만9천여 명이다. 카트만두에서 서울까지, 4045.2km는 그렇게 이어져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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