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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다, 대테러 전쟁?

쿠데타에 비판적인 국제사회 여론 비난하며 반대 세력과 테러와의 전쟁 선포한 이집트 군부… 아랍권 친미 국가 지지 나서
등록 2013-08-31 13:54 수정 2020-05-03 04:27

지난 8월19일 오전 이집트 북부 시나이반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경찰버스 2대에 수류탄 공격을 퍼부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경찰 훈련생 등 25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 언론들은 일제히 관련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전날 오후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 36명이 교도소 호송 도중 교도관들에게 집단 사살됐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를 비롯한 이집트 국영 텔레비전 방송 3사가 최근 하루 24시간 화면 왼쪽 상단에 달아놓고 방송을 하는 영문 자막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 만하다. ‘이집트는 테러와 싸우고 있다.’

시시 “국가 파괴 시도 좌시 않겠다”

이날 오후 이집트 공보국은 카이로 주재 외신기자들에게 한꺼번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집트 사태의 본질을 오도하는 편향된 보도”에 대한 항의 서한이었다. “무르시 정권을 돕기 위해 외신들이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은 이미 일상이 됐다. 등 외신들은 “무바라크 정권 시절 특혜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거머쥔 재벌들이 운영하는 민영방송에선 (쿠데타 직후부터)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범들’ ‘알카에다 연계 세력’ 등으로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려는 범죄적 계획과 무슬림형제단의 테러에 단호히 맞서겠다.” 이튿날인 8월18일엔 나빌 파흐미 과도정부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 역시 “무슬림형제단과 그 연계 세력의 폭력 사태를 비판하지 않은 국제사회의 편향된 시각”을 성토했다.
등 이집트 언론의 보도를 보면, 그는 이날 회견에서 ‘이집트의 주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주권국가인 이집트의 내정을 국제적 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은, 화해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내부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라며 “국제사회는 이집트가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분’이 가만있을 리 없다.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 겸 부총리 겸 육군참모총장이 8월18일 군경 지도부를 모아놓고 연설하는 장면을 국영방송 3사가 일제히 녹화 중계했다. 시시 장관은 8월14일의 학살극을 두고 “국민에게 테러 위협에 대처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고, 그에 따라 결연히 행동했을 뿐”이라며 “군경은 어떻게든 유혈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지만, 그들(형제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테러와의 싸움을 적극 지지하는 수많은 이집트 국민의 진정한 바람과 자유로운 의사를 무시하는 국제사회와 언론”에 대한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이어 “이집트 국민이 폭력에 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국가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을러댔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군 통수권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원조 중단 여부를 두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이른바 ‘아랍 형제국’들은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숨지기 않고 있다. 은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말을 따 “이집트가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보도했다. 바레인 왕실도 친무르시 시위대 진압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안정을 회복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건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하는 성명을 내놨다.

긴말 마라, 우리는 한편이다

앞서 아랍권의 대표적 친미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3개국은 7월3일 쿠데타 직후 이집트에 120억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EU의 원조 중단 가능성에도 군부가 임명한 이집트 과도정부가 ‘여유’를 잃지 않는 이유다.
실제 8월14일의 학살극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비난 발언에 대해, 아들리 만수르 임시대통령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무장세력의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박 성명까지 내왔다. 성명의 핵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우리도 한다, 대테러 전쟁. 그러니 긴말 마라. 우리는 한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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