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시위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격렬한 저항의 몸짓이다. 혼자 시작한 일이 둘이 되고 셋이 되더니, 마침내 온 나라를 뒤흔다. 3주째를 넘긴 터키 시위 사태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무용가 겸 행위예술가인 에르뎀 귄뒤즈가 이스탄불 중심가 탁심 광장에 나타난 건 지난 6월17일 저녁 7시께다. 메고 있던 가방과 들고 있던 물병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두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광장 맞은편에는 무수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문화회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귄뒤즈의 눈길이 회관 벽에 내걸린 터키 국기와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대형 초상에 고정됐다.
“시위대 강제 해산, 총리가 해야 할 일”
그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날 밤 11시께 ‘서 있는 남자’(두란아담)란 신조어가 트위터 인기어로 등극했다. 이즈미르·에스키셰히르·안타키아 등지에서도 시민들이 광장이나 공원으로 몰려나와 가만히 서 있기 시작했다. 수도 앙카라에선 ‘서 있는 여자’(두란카딘)도 등장했다. ‘서 있는 시위대’가 해산한 것은 이튿날 새벽 2시6분께였다. 귄뒤즈는 6월18일 일간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탁심 광장에서 사람들을 몰아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게지 공원에 나무를 심는다. 이거야말로 최악의 폭력이다.”
지난 6월15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앙카라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겨냥한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개막됐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터키 경찰은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을 포위했다. 이내 최루탄과 물대포가 춤을 춰댔다. 탁심 광장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됐다. 공원과 광장은 봉쇄됐다. 쫓겨난 시위대는 도시 전역에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밤새도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앙카라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6월16일에도 이스탄불 곳곳에선 탁심 광장으로 향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의 공방전이 불을 뿜었다. 이날 탁심 광장에서 10km 남짓 떨어진 카질리케스메 공원에 에르도안 총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앙카라에 이어 이스탄불에서도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린 게다. 그는 ‘명연설가’로 알려져 있다. 가 전한 이날 그의 연설을 보면,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터키의 현실을 알고 싶다면, 눈을 들어 이스탄불의 카질리케스메 공원을 보라. 여기 모인 수십만 명은 불을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여기 모인 수십만 명은, 화염병이나 던지는 반역자가 아니다. 무엇을 하건,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날 시위대 강제 해산에 대한 ‘입장’도 내놨다. 그는 “게지 공원 시위대 강제 해산은 총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일
을 하지 않는다면 총리직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위대는 게지 공원에 텐트를 쳐야겠다고 고집한다. 그렇게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싶으면, 경치 좋은 고원지대로 갈 것을 권한다”고 비꼬았다.
강제 해산 작전 이후에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시위 사태에 대한 경고, 아니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 도시의 거리를 유린한 자들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기록을 모두 뒤져 한 명씩 끝까지 찾아낼 것”이라며 “사태를 부추긴 언론과 소셜미디어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른바 ‘아랍의 봄’ 다음에 ‘터키의 봄’이 왔다고, 수치심도 모른 채 떠들어댄다. ‘터키의 봄’은 이미 2002년 11월3일에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날은 AKP가 첫 집권에 성공한 날이다. 이제 연설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할 차례다.
‘에르도안 대통령-귈 총리’ 체제 논의
“나를 독재자라고 말한다. 어떤 독재자가 시위대와 면담을 하는가. 세상의 어느 독재자가 게지 공원 시위 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가.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나만 한 총리는 없다.”
집권 이후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자신감’은 여전해 보인다. 하지만 집권 AKP 내부에선 모종의 변화가 느껴진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 2015년 총선까지를 내다보고 미리 마련해둔 ‘정국 구상’이 이번 시위 사태로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연임 제한 규정에 걸린 에르도안 총리의 임기는 2015년까지다. 애초 그가 일찌감치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위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AKP 쪽의 관심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전면적인 개헌과 에르도안 총리의 대선 승리에 집중돼 있었다. 최근 터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재선 도전이 가능해진 압둘라 귈 대통령은 이런 정국 구상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전면 개헌이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한 차선책도 마련돼 있었다. 대통령의 당적 보유 금지 규정만 헌법에서 들어내는 부분 개헌론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에르도안 총리는 2014년 8월 대선에서 당선되더라도 당권을 유지할 수 있다. 2015년 총선 때 공천권도 행사가 가능하다. 총선에서 AKP가 압도적 지지를 다시 얻으면, 이를 근거로 다시 한번 전면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는 복안인 게다. 이마저 무산되더라도, 일단 대선에서 승리한 뒤 대통령의 권한을 차근차근 강화해나간다는 게 ‘플랜 C’였다.
하지만 시위 사태 발생 이후, 귈 대통령의 행보가 중요해졌다. 에르도안 총리와 달리 그는 시위 사태 초기부터 민주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위대에 포용적 태도를 보였다. 자연스레 ‘정치적 자산’을 쌓은 게다. AKP 내부에서 오래전 용도 폐기했던 ‘시나리오’가 최근 다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는 6월19일치에서 “집권당 내부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귈 총리’ 체제에 대한 논의가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터키판 ‘푸틴-메드베데프 모델’인 셈이다.
시위 사태가 만들어낸 휘발성 강한 터키 정국이 선거와 맞물리면서 어떻게 흘러갈지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잔뜩 ‘여유’를 부리곤 있지만, 에르도안 총리 정부 역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지금으로선, 강·온 양면에서 여론을 떠보는 모양새다.
무아메르 굴레르 내무장관은 6월18일 기자들과 만나 “대중을 선동하거나 사회 불안을 야기할 만한 행사를 알리거나 논의하는 내용을 담은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는 원천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날엔 불렌트 아린크 부총리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시위 사태가 지속되면 ‘군’ 투입도 불사할 것”이라고 을러댔다. 겁없이 덤벼드는 시위대를, 어떻게든 주저앉히겠다는 얘기다.
경제개발 약속과 소통, 온건책 제시
‘온건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제시됐다. 터키 개발부는 6월18일 연평균 경제성장률 5.5% 달성과 1인당 국민소득 1만6천달러 진입을 뼈대로 한 제10차 경제개발5개년계획(2014~2018년)을 발표했다. 에르도안 총리가 지난 10년여간 쌓아온 ‘업적’을 기억해달라는 투다. 6월20일엔 AKP 소속인 카디르 톱바쉬 이스탄불 시장이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 위치를 바꿀 때도 반드시 여론을 반영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이쯤에서 끝나는 걸까? ‘불만의 여름’을 지나고 있는 터키의 공원과 광장마다, 오늘도 사람들이 서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