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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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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억달러어치 원유가 증발하는 앙골라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지만 ‘절대빈곤’은 여전한 아프리카… 극소수 지배 엘리트와 그들과 결탁한 다국적 자본이 이익을 독점해 빈부 격차는 오히려 심해져
등록 2013-06-02 15:15 수정 2020-05-03 04:27

아프리카 중남부,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DRC·이하 콩고) 사이에서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땅이 앙골라다. 영국 면적의 5배에 이르는 국토는 세계에서 22번째로 넓다. 자원도 풍부해서 막대한 원유·천연가스 매장량과 다이아몬드·철광석 등 다양한 광물자원,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토지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세기를 넘긴 전쟁 이후 눈부신 도약 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앙골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873달러로 추산됐다. 전체 조사 대상국 183개국 가운데 88위로 중위권 이상의 ‘성적’이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선 보츠와나·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그럼에도 약 1800만 명 인구의 40%가량이 절대빈곤층이다. 보건·의료 체계의 수준을 미뤄보는 척도인 5살 이하 어린이 사망률도 1천 명당 161명꼴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높다. 앙골라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다. 이유가 뭘까?
1975년 11월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직후부터 앙골라는 내전에 휩싸였다. 집권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 정부와 앙골라전면독립국민연합(UNITA) 반군으로 갈린 나라는 끝 모를 유혈을 지속했다. 냉전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러시아와 쿠바는 정부군 쪽을, 미국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권은 반군 진영을 적극 지원했다. 내전은 세기를 넘겨 2002년 4월에야 공식 종료됐다.
27년 가까운 내전의 포화를 딛고, 앙골라 경제는 눈부신 도약을 시작했다. 2002년을 시작으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인 2008년까지, 앙골라 경제는 연평균 15%씩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잠시 7~8%대로 주줌했던 앙골라의 경제성장률은 2011~2012년을 지나며 다시 10%대를 돌파했다. 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유자원의 힘이 컸다.
등 외신 자료를 종합하면, 원유·천연자원은 앙골라 수출의 90%를 떠받치고 있다. 정부 수입의 80%, GDP의 50%도 여기서 나온다. 앙골라 정부는 원유 부문에서만 연간 적게는 30억달러에서 많게는 6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단다. 그럼에도 의료·복지·교육 부문 투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은 지난 5월10일치에서 IMF의 보고서 내용을 따 “2012년에만 앙골라 국영 에너지 업체(소난골)에서 43억달러 규모의 원유 수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1979년 집권한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은 지금껏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각종 광물자원과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눈부신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의 열매는 극소수 지배 엘리트와 그들과 결탁한 다국적 자본이 독점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 격차가 되레 심각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콩고 대통령과 그의 친한 친구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5월10일치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날 아난 전 총장이 주도하는 전문가 집단 ‘아프리카진보패널’(APP)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120쪽 분량의 연례 보고서를 내놓고, “선진개발국 정부가 자국 기업이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유지해온 잘못된 관행을 끊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선진개발국에선 단순히 정부의 재정수입 감소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선 수많은 어머니와 아이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APP의 보고서를 보면, 아프리카 대륙 54개국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지난해 6%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신흥개발국을 중심으로 원자재 수요가 큰 폭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모잠비크와 탄자니아는 천연가스의 주요 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니와 시에라리온은 막대한 철광석 매장량이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앙골라와 맞닿아 있는 잠비아와 콩고 역시 각각 구리와 코발트 수출이 활황세란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에서 만연한 빈곤이 줄고 있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잠비아와 아프리카의 대표적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선 최근 몇 년 새 되레 빈곤율이 높아졌다. 천연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PP는 보고서에서, 그 대표적 사례로 콩고에서 2010~2012년 이뤄진 5건의 구리·코발트 등 광물자원 개발사업을 추적·분석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ENRC란 카자흐스탄계 광산업체를 예로 들어보자. 이 업체는 이스라엘 출신 사업가 댄 거틀러가 보유하고 있던 구리광산 개발권을 7500만달러에 사들이면서, 지난해 콩고에서 생산량 규모로 업계 3위를 기록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콩고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사들인 거틀러가 지불한 금액은 1500만달러였다. 불과 몇 달 새 6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게다. 그는 조제프 카빌라 콩고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단다.
역외 조세회피처에 차려진 이른바 ‘유령회사’를 통해 자원개발권을 ‘수상한 가격’에 넘긴 사례도 발견됐다. 구리·코발트 광산 개발권을 콩고 정부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플로레트’란 회사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권을 다른 업체에 팔아넘겼다. 매입자는 거대 다국적 원자재 업체인 ‘글렌코어’와 ‘유라시아 천연자원’이었다. APP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거래 대상이 된 광산개발권 5건의 총감정평가액은 약 16억3천만달러였다. 그럼에도 콩고 정부가 개발권 매각대금으로 받았다고 밝힌 금액은 단 2억7500만달러에 불과했다. 감정가격과 실제 거래금액의 격차는 약 13억6천만달러로 콩고 정부의 한 해 보건·의료 예산과 교육 예산을 합한 금액의 2배에 해당한다. 콩고의 5살 이하 어린이 사망률은 지구촌 최상위권이다. 취학기 어린이와 청소년 가운데 70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한편 콩고 정부에서 개발권을 사들인 업체(또는 업자)는 이를 다시 거대 원자재 업체에 되팔았다. 이들이 단기간에 챙긴 수익률은 평균 512%, 최대 수익률은 무려 980%에 이른다.”
조세회피처 자산에 세금만 매겨도
활황을 거듭하고 있는 광산업계를 통해 거둬들이는 조세수입도 턱없이 적다. 잠비아의 구리업계는 2011년 한 해에만 무려 100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렸다. 하지만 잠비아 정부가 업계에서 거둬들인 세금은 고작 2억4천만달러에 그쳤단다. 업체 대부분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역외 조세회피처를 이용했기 때문이란다. 아프리카의 국부가, 이렇게 새고 있다. 여전히 가난한 이유다.
그래서다. 6월17~18일 북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제39차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역외 조세회피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적절해 보인다. 세계적 인도지원단체 옥스팸은 지난 5월22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케이맨제도 등 세계 각지의 조세회피처에 맡긴 자산의 총규모는 18조5천억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자금에 적절한 세금을 부과하면, 세계 각국은 연간 1560억달러 규모의 조세수입을 추가로 올릴 수 있다. 인류 모두에게 (절대빈곤선의 기준인) 하루 1.25달러를 지급하는 데는 연간 660억달러면 충분하다. 조세회피처에 숨겨놓은 자산에 적절한 세금만 매겨도, 지구촌에서 절대빈곤을 뿌리 뽑는 데 필요한 비용의 두 배 이상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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