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펼쳐보자. 북위 29~39도, 동경 60~75도에 아프가니스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내륙국인 아프간은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특히, 겨울이 매섭다. 북동부 산악지대인 누리스탄에는 빙하지대가 있을 정도다. 중국 국경과 맞닿은 와칸 일대의 겨울철 평균기온은 영하 15℃를 밑돈다. 추위가 낯선 곳은 아니란 얘기다.
지난해 카불 일대 동사자 100명 이상
미국의 민간 기상예보업체 ‘애큐웨더’의 자료를 보면, 금요성일을 맞은 1월4일 아프간 수도 카불은 햇볕이 좋은 맑은 날이었다. 낮 최고기온은 영상 3℃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밤이다. 해가 지면 온도가 급속도로 내려가, 밤 한때 영하 15℃까지 기온이 떨어질 것이란다. 그 밤에, 아프간의 아이들이 얼고 있다. 더러는, 그렇게 죽기도 한다. ‘15년 만의 최악의 폭설과 강추위’라던 지난해 겨울에 특히 심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과 인근 고르, 바다흐샨 등 3개 지역에서만 지금까지 41명의 동사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가운데 서너 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어린이로, 카불에서만 24명이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유혈 사태를 피해 고향을 떠나온 국내난민(IDPs)이다.”
지난해 2월21일 은 카불 현지발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비슷한 시기 도 카불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지원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2월 초까지 카불 일대 난민캠프에서만 5살 이하 어린이 21명과 노인 2명 등 23명이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겨울 내내 카불 일대 난민캠프에서 동사한 이들은 1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프간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는 당시 무함마드 다임 카카르 아프간 이재민지원청장의 말을 따 “난민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평소 불만 사항을 과장해서 쏟아내는 게 그네들의 생리”라며 “동사자가 그렇게 많다는 건 여전히 의문”이라고 전했다. 올겨울엔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까?
“올해도 어김없다. 목숨을 걸고 추위와 싸우고 있다. 매일 밤이 악몽 같다. 겨울이 두렵다.” 카불 최대 규모라는 차라히 캄바르 난민캠프에서 아내 2명과 자녀 18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하지 도스트 무함마드는 지난해 12월19일 독일 <dpa>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레반 세력이 성한 남부 헬만드주 출신이라는 무함마드의 난민 생활은 벌써 5년을 넘겼단다.
지난해 6살 아들 잃고 올핸 3살 아들 걱정
카불에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은 지난해 12월13일 내렸다. <dpa>은 겨울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카불 난민캠프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수도시설이 있을 리 없다. 땅바닥에 삽으로 구덩이를 파놓으면 그대로 화장실이다. 인도지원단체가 내준 담요와 옷가지가 지닌 것의 전부다. 연료도 없다. 길에서 주워온 페트병과 쓰레기, 폐타이어, 헌 신발 따위를 태우며 추위를 잊는다.”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은 이미 시작됐다. 는 지난해 12월29일치 기사에서 “차라히 캄바르 난민캠프에서 12월28일 3살 난 어린 소년이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며 “그는 올겨울 들어 공식 확인된 첫 동사자로 기록됐다”고 전했다. 숨진 소년의 이름은 ‘자난’이었다. 신문은 그의 아버지 타즈 무함마드(38)의 말을 따 “이 겨울에 아이들을 더 잃을까봐 두렵다”고 전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 유엔난민기구(UNHCR)는 자난이 살던 캠프에서 지내고 있는 900여 난민 가구에 긴급 구호물품을 전달했단다.
또 다른 난민캠프인 나사지 바그라미에선 동서지간인 라히마(24)와 샤히드(45) 두 여성이 아이들과 함께 산다. 생후 8개월인 갓난아기부터 13살 청소년까지 모두 14명이다. 는 “이들의 남편들은 6개월여 전 남부 헬만드주의 마르자 지역 고향 마을에서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며 “살아남으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카불로 피란을 온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이들 16명이 살고 있는 흙으로 지은 오두막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천장에선 연신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렸다. 난방기구는 없었고, 그저 바닥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지펴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들 모두 감기에 걸린 듯, 눈물과 콧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8개월 된 니아즈 무함마드도 감기에 걸린 상태다.”
같은 캠프에 사는 바이둘라(55)는 지난해 아들 아르딘(6)을 잃었단다. 다시 찾아온 혹독한 겨울, 그는 3살 난 아들 이스마일이 ‘다음 차례’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아이는 열흘째 감기를 앓고 있다. 그나마 올겨울엔 유엔난민기구가 천막을 지원해줘 지붕을 덮을 수 있었다. 지난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결과다. 국제법적으로 ‘난민’이 되려면 국경을 넘어야 한다. 자기 나라에서 떠도는 국내난민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적어도 지난해까지는 그랬다는 얘기다.
카불은 아프간의 수도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인도지원단체는 줄잡아 2천 개가 넘는다. 지난 10년 세월 동안 쏟아져 들어온 인도지원기금만도 35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니 묻게 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건가? 은 지난해 12월31일치에서 마크 보든 유엔 아프간 인도지원단 부대표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아프간 정부로 전달된 인도지원기금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실제 난민들을 위해 사용된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10%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세계 각국이 지원하기로 했던 인도지원기금 4억4800만달러 가운데 실제 지원된 액수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결국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올겨울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내게도, 매일 밤이 악몽 같다.”
지난해 40개였던 카불 일대의 난민캠프는 올해 55개로 늘어났다. 대부분 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며 생겨났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카불 일대에만 약 5200가구 6만여 명의 난민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아프간 전역 국내 난민 약 46만 명
국제 인도지원단체인 ‘노르웨이난민위원회’(NRC)의 자료를 보면, 현재 아프간 전역을 떠돌고 있는 국내난민은 약 46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6만6천여 명이 2012년 새로 난민 대열에 합류했단다. 지난해 11월에도 3만3천여 명의 신규 난민이 발생했다. 아프간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해를 넘긴 올겨울, 아프간의 추위는 지난해보다 덜 매서울 것이란 예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만한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dpa></d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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