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봄’은 지난해 1월26일 시작됐다. 한 달여 전인 2010년 12월17일 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날 하산 알리 아클레는 독재에 항거해 제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이어 2월에 ‘분노의 날’이 선포되더니, 3월 들어 시위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왕국’에서도 저항이 싹을 틔운 게다. 인터넷 백과사전 는 정부의 시위 금지령을 뚫고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시리아 전역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진 그해 3월15일을 ‘시리아 혁명’의 첫날로 기록하고 있다.
시리아군 주둔 등으로 얽힌 양국
그로부터 14개월여, 시리아의 불안한 정세가 남쪽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 애초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직후부터, 레바논이 그 영향권으로 빨려들 것이란 불길한 전망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왔다. 이유는 자명했다. 레바논이 오랜 내전의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한 직후인 1976년부터 시리아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규모 병력을 레바논에 주둔시켰다. 2005년 철군 이후에도, 레바논 정치권에 대한 시리아의 ‘입김’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니 시리아의 ‘들불’이 레바논 땅으로 옮아붙는 것은 시간문제였을지 모른다.
그 ‘조짐’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한동안 잠들어 있던 레바논의 우환덩이는 지난 1년여간 조금씩 커져왔다. 18개 정파·종족으로 갈가리 찢긴 레바논 사회가, 시리아 사태란 촉매제를 만나 ‘세포분열’을 재개한 게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찬성과 반대, 크게 보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섰다. 둘 사이의 간극은 조금씩, 꾸준히 벌어져왔다.
친아사드 진영은 시아파 정치조직인 헤즈볼라와 드루즈 계열에서 분리해 나온 아말, 그리고 기독교도 일부로 채워졌다. 이들은 시리아의 현 사태를 서방의 암묵적 지원을 받고 있는 수니 강경파가 주도하는 것으로 본다. 반면 수니파와 일부 기독교도, 절대다수의 드루즈인들이 뭉친 ‘반아사드 진영’은 시리아에서 ‘혁명적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양쪽 모두 자기 관점에 따라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각각 해석한다. 시리아의 내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수록, 양쪽의 견해 차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다. 나지브 미카티 총리가 이끄는 레바논 정부는 ‘중립’을 택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바논 북부를 통해 이뤄지는 무기 밀수를 막아달라는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마지못해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니파 집단 거주 지역인 북부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시리아 난민과 반군이 몰려드는 것에도 애써 눈감아왔다. 몇 차례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미카티 총리 정부의 ‘줄타기’는 제법 성공적으로 보였다. 더는 아니게 됐다.
지난 5월20일 레바논 북부 아카르 외곽의 군 검문소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검문에 불응한 채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을 향해 근무를 선 병사가 총격을 가한 게다. 차 안에는 수니파의 고위 성직자인 셰이크 아메드 압둘 와히드가 타고 있었다. 와히드는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리아 반군 진영을 물밑에서 적극 지원해왔다. 이날 총격으로 와히드와 그의 경호원 1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와히드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도 베이루트의 타리크 자디다 지역에서 다시 총성이 들려왔다. 한번 시작된 총성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이윽고 로켓 추진 유탄발사기까지 등장했다. 치열한 총격전은 이튿날인 5월21일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아랍 위성방송 는 “(이날 총격전으로) 적어도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1975~90년 무려 15년 세월 동안 내전을 치른 레바논에선 거의 모든 진영이 여전히 무장을 하고 있다.
“어디에도 레바논 국기는 없다”
영국 일간지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레바논 정규군이 근무하는 검문소에서 총성이 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와히드 일행은 검문소 도착에 앞서 이곳을 통과할 것이란 사실을 현지 군 당국에 통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전이 끝난 이후 지난 20여 년간 레바논에서 이슬람 성직자가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전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상황은 심각했다. ‘파국’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지난 5월21일 와히드의 장례식이 그의 고향땅인 북부 비레 지역에서 열렸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주민 압델 아지즈 단달(45)은 <ap>과 한 인터뷰에서 “시리아 혁명을 열정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셰이크 와히드를 살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영국 는 인터넷판에서 장례식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셰이크 와히드의 넋을 기리는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졌다. 군 당국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거듭 약속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앞다퉈 ‘자제’를 호소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징조가 있었다. 그날 장례식장에선 레바논 국기가 보이지 않았다. 옛 시리아 국기와 (수니파 정치 연합체인) ‘3·14 동맹’의 깃발은 도처에서 펄럭였지만, 어디에서도 레바논 국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따져보자. ‘옛 시리아 국기’는 1930년대 사용됐던 ‘녹·백·흑’ 3색기를 말한다. 아사드 대통령의 부친인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이 이끄는 바트당이 집권한 이후, 깃발을 이루는 3색 가운데 녹색을 적색으로 바꿨다. 지난해 시위가 시작된 이래 ‘옛 3색기’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의 상징이 됐다. ‘3·14 동맹’의 깃발이 상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05년 2월14일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가 백주에 폭탄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내전 이후 철저히 분열된 레바논을 하나로 묶어 재건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돼왔다. ‘암살’ 배후로 오랜 세월 레바논 내정에 간섭해온 시리아의 정보기관이 지목됐다. 하리리 전 총리가 숨을 거둔 지 한 달 남짓 만인 그해 3월14일, 레바논 전역에서 대규모 반시리아 집회가 열렸다. 이른바 ‘백양목 혁명’이다. 그날의 시위를 주도한 정치조직들이 모여 꾸린 게 ‘3·14 동맹’이다. 29년 넘게 레바논에 주둔해온 시리아군은 결국 한 달여 만인 같은 해 4월26일 전면 철군을 마쳤다.
“폭력 사태의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
그러니 와히드의 장례식은 하나의 ‘전조’로 보인다. 이미 국경을 넘어선 시리아 사태의 파장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다. 아랍 위성방송 는 5월21일 인터넷판에서 “분명한 것은 레바논 정부가 시리아 내부 상황에 대해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트리폴리 등 북부 일대와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레바논이 마주한 ‘새로운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레바논 영자지 는 5월24일 인터넷판에서 “현 폭력 사태의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고 주장하며 ‘3·14 동맹’ 쪽이 미카티 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와 거국정부 구성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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