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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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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자의 손에 무기 쥐어주는 미국

민주화 시위 벌인 이들을 체포·고문하는 바레인을 ‘동맹국’이라 부르며 무기수출 재개하는 미국
등록 2012-05-30 20:45 수정 2020-05-03 04:26

‘시리아 1점, 리비아 5점, 바레인 4점, 예멘 2점, 튀니지 7점, 요르단 5점.’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이집트 시민들이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를 하던 5월23일 영국 일간 이 내놓은 ‘아랍의 봄’ 성적표(10점 만점)다. 14개월여 민주화 시위 기간에 무려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시리아가 최하점을 받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혁명의 발상지’이자 ‘승리의 상징’이기도 한 튀니지에 최고점이 돌아간 것도 자연스럽다. 지난해 2월부터 15개월째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바레인에 대해 은 이렇게 평가했다.

무기징역 받고 단식하는 인권운동가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 가운데 민주화 열기가 가장 뜨겁고, 이에 맞선 정부의 탄압도 가장 극심하다. …거리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바레인의 현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5월25일 현재 각각 수감돼 있는 인권운동가 압둘라디 압둘라 후바일 알카와자(51)와 그의 딸 자이납(29) 얘기다.
바레인인권센터(BCHR) 대표였던 알카와자는 지난해 4월9일 시위 주도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바레인 당국은 ‘저항의 싹’을 무지르려고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뒤, 8명의 인권운동가와 함께 군사법정에 세웠다. 지난해 6월22일 선고공판에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8일 알카와자는 기한을 정하지 않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시위 참여자들을 붙잡아 가두지 말라는 게 요구 사항이었다. 5월25일 현재 그는 10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사슬에 묶여 있을 때, 존엄이나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갈 때, 독재의 범죄에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첫걸음은 두려움을 잊는 것, 그리고 깨닫는 것,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권리임을.”
자이납이 영문 트윗 계정 ‘@AngryArabiya’에 프로필로 올린 글귀다. 그가 영어와 아랍어로 운영하는 두 계정의 팔로어는 각각 4만1975명과 9323명, 자이납의 트윗은 바레인 민주화운동의 ‘게시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바레인의 봄’이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 투옥과 출소를 되풀이한 그는 현재 북부 이사타운의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바레인 법원은 5월21일 ‘공무원 모독’ 혐의로 자이납에게 벌금형을, 5월23일엔 ‘불법시위 모의’ 혐의로 1개월 구금형을 각각 선고했다. 그는 벌금 납부는 물론 재판정 출석조차 거부한 채, 동료 수감자들과 5월20일부터 연대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페르시아만 지역의 중요한 안보 동반자이자 동맹국인 바레인이 지금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바레인 정부가 이에 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해당한다.”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민주화만 관심
지난 5월11일 미 국무부가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 명의로 내놓은 성명의 일부다.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의 워싱턴 방문에 맞춰 내놓았다. 이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민주화 시위 탄압과 관련해 지난해 9월 잠정 중단했던 바레인에 대한 무기 수출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눌런드 대변인은 “바레인의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레인이 ‘외부 위협’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작전 반경으로 한다. 이로써 명확해졌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의 이익’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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