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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의 프랑스판 북풍

대선 앞두고 북아프리카 출신의 테러 이용해 ‘이슬람 혐오증’ 조장하는 사르코지 대통령… 안보의식 자극해 올랑드 사회당 후보와 지지율 격차 좁혔지만, ‘투표 않겠다’ 정치 환멸도 부추겨
등록 2012-04-13 16:18 수정 2020-05-03 04:26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프랑스에서 격한 바람이 불고 있다. 4월22일로 다가온 대선 1차 투표를 겨냥한 그 바람은 프랑스판 ‘북풍’으로 부를 만하다. 특정 사안을 부풀려 안보 위기감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권력의 술수는 아시아나 유럽이나 매한가지다. 한국에선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북풍의 유효기간이 끝났음이 드러났다. 프랑스에선 어떨까?

사르코지 선동하고 경찰은 실행하고
지난 3월11일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에서 북아프리카계 군인 1명이 오토바이를 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나흘 뒤인 3월15일엔 툴루즈 인근 몽토방에서 북아프리카계 군인 2명이 역시 괴한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어 3월19일엔 다시 무대가 툴루즈로 옮겨졌다. 그곳 오자르 하토라 유대인 학교에서 괴한의 총질로 어린 학생 3명과 교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 차례의 테러 모두 범행 수법과 도구가 일치했다. 소수인종을 노린 범행이란 점도 닮아 있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였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고, 알제리 태생 프랑스인 모하메드 메라(23)가 이내 범인으로 지목됐다. 메라는 포위한 경찰과 32시간 동안 대치한 끝에 지난 3월22일 오전 사살됐다. 클로드 게앙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등과 한 인터뷰에서 “메라가 (사살되기 전) 3건의 테러 사건 모두 자신의 소행이라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메라가 사살된 직후부터 프랑스 정치권은 때아닌 ‘안보 논쟁’에 휘말렸다. ‘포문’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먼저 열었다. 그는 3월22일 툴루즈의 오자르 하토라 유대인 학교를 직접 찾아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 관련된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자체를 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테러 관련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대선 후보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버릇이 있다”며 “새로운 반테러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다면, (메라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입법을 추진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가적 재난인 툴루즈 참극을 선거에 이용하려고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강성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4월2일 동부 낭시에서 선거 유세에 나서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에 반하는 발언을 한 모든 이들은 공화국 영토 밖으로 즉시 쫓겨날 것”이라며 “여기엔 어떤 예외도, 관용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새 프랑스 경찰도 바삐 움직였다. 지난 3월30일 낭트와 툴루즈 등 남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경찰특공대가 이른바 ‘이슬람 극단주의자’ 체포작전에 나섰다. <afp>은 “(이날 작전으로) 적어도 19명이 체포됐으며, 다량의 소형 화기도 압수됐다”고 전했다. 체포된 이들의 구체적인 혐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 경찰 당국자는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 사회에 위험이 될 만한 개인과 단체를 계속 추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당 집권 청사진 발표에 맞춘 소탕작전
‘강경몰이’는 이어졌다. <bbc>은 4월2일 “프랑스 내무부가 반유대인 발언을 하고 여성들의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을 강조한 아프리카 말리 출신 이슬람 성직자(이맘) 알리 벨하다드와 테러 연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알제리인 2명 등 3명을 각각 자국으로 추방했다”고 전했다. 이날 프랑스 내무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출신 이맘 2명과 튀니지 출신 남성 1명 등 3명을 추가로 추방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4일 이른 아침, 경찰특공대는 남부 마르세유 등지에서 다시 한번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겨냥한 동시다발 체포작전을 벌였다. 이날 붙잡힌 무슬림은 모두 8명에 이른다. 경찰 쪽은 작전에 앞서 언론에 이런 사실을 미리 알렸고, 긴박한 현장 상황은 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올랑드 후보가 집권 첫해의 청사진을 발표한 날이었다. 올랑드 후보의 야심찬 공약이 테러범 소탕작전 소식에 묻혔다. 중도파인 ‘민주운동’의 프랑수아 바이루 대선 후보가 이날 <afp>과 한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 가능성을 높이려고 무슬림 테러 용의자 검거작전의 ‘무대 연출자’로 나섰다”고 비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움직임이 나온 것은 기실 ‘메라 사건’ 이전부터다. 극우정당인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말 “집권하면 (가축을 마취 또는 기절시키지 않고 단칼에 잡는) 이슬람식 할랄과 유대교식 코셰르 도축 방법을 법으로 금지시키겠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지난 3월 초 “(재집권하면) 합법 이민자 규모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각국에서 이주해오는 무슬림 인구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프랑스 무슬림 인구는 줄잡아 400만~600만 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선 ‘북풍’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포털 야후 프랑스판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LH2’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테러 사건이 벌어진 이후 사르코지 대통령이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메라 사건’ 이후 사르코지 상승세
지난 3월4일 발표된 조사 결과를 보면, 올랑드 후보는 30.5%의 지지율로 사르코지 대통령(23%)을 7.5%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툴루즈와 몽토방에서 잇따라 2건의 테러 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3월18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두 후보 간 격차가 3%포인트까지 줄어들었다. 이어 4월1일 발표된 최신 여론조사에선 사르코지 대통령이 27.5%까지 치고 올라오며 올랑드 후보(28.5%)를 1%포인트까지 추격해왔다. 장뤼크 멜랑숑(15%) ‘좌파전선’ 후보가 선전을 거듭하며 올랑드 후보의 지지층이 이탈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메라 사건’ 이후 사르코지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세는 분명 도드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되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간 가 프랑스여론조사연구소(IFPO)에 맡겨 실시해 지난 4월1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명 가운데 1명(32%)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앞서 3월17일 발표된 같은 조사에선 ‘기권하겠다’는 응답이 29%였다. ‘헛된 바람’이 위세를 부리자, 정치권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멸감’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fp></bbc></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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