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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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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빈민가 탈환 이후

월드컵·올림픽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를 무력으로 장악한 브라질 정부…마약조직 대신해 일자리·교육·위생 서비스 제공해야 진정한 탈환은 이뤄져
등록 2011-11-24 10:44 수정 2020-05-03 04:26

장갑차가 굉음을 내며 움직인다. 하늘 위 요란하게 돌아가는 헬리콥터에서는 저격수가 지상을 향해 총을 겨눈다. 자동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특공대 약 3천 명이 골목골목을 장악한다. 브라질 2대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최대 판자촌 호시냐에서 11월13일 새벽에 벌어진 풍경이다. 마약조직의 소굴이 된 이 판자촌을 공권력이 장악하기 위한 작전이라는데,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치르는 브라질 당국의 ‘환경정화’ 사업이다. 양대 국제행사를 앞둔 브라질의 최대 숙제는 도시 미관 정비와 치안 확보다. 그런 점에서 이날 라틴아메리카 최대 빈민촌이라 불리는 호시냐에서 소탕작전이 펼쳐진 것은 상징적이다. 얼핏 지난해 한국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 강남의 가로등에 꽃들을 매달고 노숙자와 노점상 단속을 강화하지 않았던가.

흑인 노예에 뿌리를 둔 빈민가
호시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약 1천 개에 이르는 판자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호시냐는 상파울루에 이어 브라질 2대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도심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서쪽 사이 산비탈에 다닥다닥 자리잡고 부촌을 내려다보고 있다. 공식적인 인구는 약 7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2배 가까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판자촌에 사는 사람은 리우데자네이루 인구 600만 명 가운데 20%에 이른다.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의 치솟은 빌딩과 정반대의 모습을 한 호시냐는 ‘관광상품’으로 팔릴 정도다.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를 바라보는 구룡마을 비닐하우스촌 같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브라질 경제의 후면을 보고 싶었던 기자는 이곳을 방문한 뒤 2008년 2월 현장을 실감나게 전했다. “좁은 골목길 입구에 생선가게, 닭꼬치가게, 딱 보기에도 불량식품처럼 보이는 울긋불긋한 젤리 같은 과자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일행 중 하나가 닭꼬치라도 하나씩 사 먹자고 했지만 그 지독한 냄새와 골목길 여기저기에 고여 있는 더러운 물웅덩이,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닭꼬치를 먹는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호시냐는 21세기 세계 대도시의 그늘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빈민가)의 뿌리는 깊다. 18세기 말 끌려온 노예들이 풀려난 뒤 주로 살았던 이들 지역은 ‘아프리카인 지역’으로 불렸다. 아직도 주민의 절대다수는 흑인들이다. 1930~4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을 떠난 이들이 허드렛일과 날품팔이라도 찾아 도시로 몰려들자 팽창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브라질 북동부의 저개발 지역 출신들이 주를 이뤘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서울의 상계동이나 봉천동 등에 빼곡했던 판자촌의 형성 과정을 닮았다. 이들 파벨라는 오랫동안 방치됐고 그사이 마약조직 등 범죄조직들이 장악했다. 마약조직은 주민들에게 당국을 대신해 상수도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 지역에서 군림했다.
호시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코카인 분배의 핵심 근거지로 여겨진다. ‘무법천지’로 불린 배경이다. 1980년대 코카인 거래가 늘어나 마약조직 간 영역다툼이 벌어질 때면 유혈충돌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다른 판자촌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갱단이 버스를 불태우고 총격전으로 경찰과 맞서 최소 36명이 숨지는 등 사태가 일주일간이나 지속되기도 했다. 이날 작전 뒤 리우데자네이루와 브라질 정부 깃발이 게양된 것은 공권력이 마약조직의 손에서 이 지역을 되찾았음을 뜻한다고 당국은 밝혔다. 경찰은 11월10일 이곳에서 마약조직 두목 안토니우 프란시스쿠 본핑 로페스를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찰은 이렇게 2008년 이후 빈민촌을 장악한 뒤 20개의 경찰평화유지대(UPP)를 설치했다.

파벨라는 남미 어디나 있다
호시냐의 상황은 라틴아메리카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도심 주변은 ‘바리오’라 일컫는 판자촌들이 산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지난해 8월 현지 취재 당시, 택시 기사는 빈민촌 외곽까지는 기자를 태워줬지만 빈민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바짝 긴장하더니 결국 “안 되겠다”며 서둘러 차를 돌려나왔다. 현지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한국인 가이드는 애초 빈민촌 안내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은 안내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남미의 첫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칠레 산티아고에서도 고층 빌딩이 들어찬 도심을 몇 블록만 벗어나면, 마치 한국 농촌의 군 소재지나 면 소재지를 보는 듯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고질병인 빈부 격차는 극심한 주거지역의 분리와 치안불안으로 연결된다. 판자촌에 사는 빈민들은 범죄에 노출돼 죽어나가는 반면, 부촌은 아예 블록 입구부터 검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도록 차단한 곳이 수두룩하다.
영국 일간 는 11월10일 빈민촌이 들어찬 리우데자네이루의 삶을 이런 수치로 요약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이들의 비율이 미국 전체 평균보다 3배 높다. 런던에서 해마다 10만 명당 1.9명이 살해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37명이 살해된다. 중남미의 대표적 여론조사 기구인 ‘라티노바로메트로’의 최근 조사 결과, 18개 조사 대상국 국민의 최대 걱정거리는 범죄로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의 극심한 빈부 격차는 빈곤층을 판자촌으로 몰아넣고, 이들은 치안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또 그 속에서 범죄조직에 휘말리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판자촌을 밀어낸 자리에는 고급 주택 등이 지어지지만 이곳에 살던 빈곤층에 돌아갈 몫은 아니다. 빈민촌에 살던 주민들은 다시 도시 외곽으로 끝없이 밀려난다. 서울의 ‘뉴타운 개발사업’과 닮았다. 이런 현실은 브라질에서 무주택 도시빈민운동(MTST)이 벌어진 배경이다. 한국에서 도시빈민운동이나 철거민운동이 벌어진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디어 서커스’ 이후의 과제들
11월13일 호시냐 소탕작전은 수많은 언론사 카메라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성공’으로 끝났다. 하지만 ‘미디어 서커스’라는 비난도 받은 이 작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호시냐의 한 주민은 11월13일 인터뷰에서 “마약조직의 하급 조직원으로 일했던 청년층에게 수입, 교육, 일자리 기회가 없어졌다. 이제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총을 들고 판자촌 앞에 서 있더라도 이 지역 안에서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경찰만이 아니라 위생·건강·교육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가 같이 들어와야 한다”는 주민들의 하소연이 들린다. 브라질은 이제 세계적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고 월드컵과 올림픽은 그 부상을 더욱 재촉할 것이다. 파벨라의 빈민들에게는 무엇이 얼마나 돌아갈 것인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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