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코피루왁’은 원산지에서도 비쌀까? 인도네시아에서 코피루왁은 한 잔이 평균 10만루피아(약 1만6천원)다. 한국에서 한 잔에 6만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4분의 1 가격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대졸 초임이 약 6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싸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반 커피 원두가 1kg에 약 2400원에 거래되는 것과 달리, 코피루왁 원두는 1kg당 최고가인 평균 10만원에 거래된다.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분비물로 만든 이 독특한 커피는 원산지에서도 꿈의 커피다.
코피루악은 불결한가
고급스러운 코피루왁의 이미지와 달리 농장은 소박했다. 지난 10월18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3시간 거리인 반둥시 팡알렝안에 위치한 코피루왁 농장을 찾았다. 40평 남짓한 공간에서 38마리의 사향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말로 ‘루왁’인 사향고양이는 보통 고양이와는 전혀 딴판으로 너구리에 가까웠다. 사향고양이가 사는 우리는 벽에 매달린 사향고양이의 작은 방, 그리고 방과 바닥을 이어주는 나무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몇몇 우리 바닥에는 분비물이 굴러다녔는데, 코피루왁 원료인 줄 알고 흥분해 물으니 농장주 난디누리 수프리핫(50)은 점심으로 닭고기를 먹고 배설한 순수한 분비물이라고 했다. 수프리핫은 인도네시아에서 코피루왁 붐이 일어난 2005년부터 코피루왁 생산을 시작했다. 그는 사향고양이가 매우 깔끔하고 까다로운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하루에 커피 열매 1kg을 주는데 여기서 제일 좋은 것만 골라먹어요. 열매에 조그만 흠집만 있어도 입에 대지 않아요.”
사향고양이는 잡식성 동물로 닭·장어·채소 등을 주로 먹는데 달콤한 커피 열매는 간식이다. 수명은 6~8년으로 평균 생후 6개월부터 커피 열매를 먹고 소화해낼 수 있다. 보통 사향고양이가 섭취한 커피 열매는 겉껍질과 과육이 소화되고, 속껍질과 얇은 막으로 싸인 원두가 분비물과 함께 나온다. 코피루왁을 식용으로 가공하려면 깨끗이 세척하고 속껍질과 얇은 막을 제거해야 한다. 이후 세척된 원두를 볶으면 코피루왁이 완성된다. 커피 열매가 사향고양이의 위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 뒤 발효된 상태로 나오는데, 이때 코피루왁 특유의 부드러운 맛과 쓰지 않은 뒷맛이 만들어진다.
이 독특한 생산 과정 때문에 코피루왁은 종교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억1천만 명가량의 무슬림이 사는 인도네시아, 바로 코피루왁의 원산지에서 말이다. 이슬람에서는 절대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을 ‘하람’(Haram)으로 규정한다. 돼지고기가 대표적이다. 불결한 물질에 노출된 식재료도 하람에 포함되는데, 코피루왁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울레마평의회(MUI)는 코피루왁이 할랄(Halal·이슬람 경전 코란이 규정한 방식으로 도살하고 조리한 음식)이라고 최종 결정했다. 평의회는 파트와(코란에 따른 종교적 해석 또는 견해)를 결정하는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최고 기관이다. 파트와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독실한 무슬림에게는 큰 영향력을 갖는다. 평의회의 마루프 아밈 의장은 지난해 7월20일 “코피루왁은 할랄이다. 단, 이슬람의 세척 방식에 따라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평의회의 이런 결정 뒤에도 코피루왁이 할랄인지 하람인지 논쟁은 일반인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다.
국영농장 생산 위한 인증
사실 울레마평의회가 내놓은 파트와는 하나 마나 한 게 됐다. 인도네시아 2억4천만 명 인구 중 88%인 무슬림 대다수가 이 결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틀라툴울라마(NU) 회원 아궁(30)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할랄 인증을 받은 코피루왁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라도 코피루왁광이라면 할랄 인증을 받지 않았더라도 마실 것 같다”고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무슬림인 시사주간지 기자 페리(29)는 “파트와는 권고사항일 뿐 무슬림들의 일상을 제약할 수 없다”며 “코란에서 금지하는 술과 담배도 다 하는데, 누가 코피루왁 할랄 인증을 확인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코피루왁 이전에도 파트와 결정은 권위를 잃었다. 종교학자들의 의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산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코피루왁 농장주 수프리핫은 울레마평의회가 권장한 할랄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할랄 인증서는 새로 사업하는 처지에서 사업등록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세척 방식이라고 받은 교육이 기존에 하던 것과 똑같았다. 코피루왁 생산의 주요 거점인 수마트라섬 동부 람풍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수카르디(35)는 “코피루왁이 할랄이든 하람이든 크게 상관없다”고 말한다. 수카르디는 한국과 홍콩 등 해외 수출에만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실한 무슬림이자 코피루왁광인 하룬(30)은 왜 이런 논쟁이 시작됐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파트와는 따지고 보면 종교와 별 상관이 없을 때가 많아요. 시점과 배경을 따져보면 이해관계가 보이니까, 사람들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죠.”
실제로 코피루왁을 둘러싼 논쟁은 산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코피루왁을 주력 수출품으로 대량생산하려던 국영농장 PTPN의 움직임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코피루왁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한 해 500~800kg만 생산되는 세계적 희귀품목으로 커피업계에서 노다지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커피&코코아 연구센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해 평균 26만t의 커피가 생산되는데 아라비카 커피가 70%, 로부스타 커피가 29%를 차지한다. 커피업계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한 해 약 650kg만 생산되는 코피루왁을 수출의 블루오션으로 본다. 코피루왁이 2008년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PTPN의 팡알렝안 지부도 코피루왁 생산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가 사는 인도네시아의 공기업이 본격적으로 코피루왁을 생산·판매하기 이전에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었다. 코피루왁이 할랄인가 하람인가였다. 코피루왁 논쟁은 이 국영기업이 지난해 6월 울레마평의회에 심판을 요청하며 시작된 것이다. 말하자면 코피루왁을 대량생산하려던 계획이 종교적 논쟁을 촉발한 셈이다.
한국인 위한 코피루악 농장
커피&코코아 연구센터의 수립 마와르디 박사는 해외의 코피루왁 수요 증가가 무리한 대량생산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코피루왁 수요가 특히 폭발적으로 늘어 한 해에 1t가량의 수요가 있죠.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1년에 최대로 생산해봐야 700kg에 못 미치는데 1t은 불가능하죠.” 코피루왁이 대량생산에 성공하더라도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야생에서 수집한 코피루왁 원료에 비해 사육해서 기른 사향고양이의 코피루왁은 품질이 떨어지는 탓이다. 최상의 코피루왁은 야생에서 나온다는 게 커피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커피 열매는 사향고양이가 섭취한 주식의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야생에서 만들어진 코피루왁이라야 고유의 독특한 맛과 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코피루왁이 인기를 끌자 2008년부터 많은 코피루왁 농장이 생겼지만 대부분 망했어요. 사향고양이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커피 생산 기계처럼 대했기 때문이에요.” 농장주 수프리핫은 코피루왁을 공장식으로 찍어내려는 시도는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꼬집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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