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서 주목받는 최대 정치 스타는 단연 미셸 바크먼(55)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의 첫 시험대인 8월13일 ‘에임스 스트로폴’(비공식 예비투표)은 또 하나의 확인 무대였다. 그는 전체 투표수 1만6892표 가운데 28.6%인 4823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바크먼은 “2012년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버락 오바마가 단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티파티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
바크먼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티파티의 총아’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상한 증액협상에서 채무상환불이행(디폴트) 위기까지 몰아간 게 하원의 티파티계였고, 그 대표주자가 바크먼이다. 바크먼은 연방정부 조세를 늘리는 것은 물론 국가부채 상한을 올리는 데조차 반대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것도 티파티의 영향이 컸다. 세금을 늘려 향후 10년간 약 4조달러의 국가부채를 줄이는 ‘그랜드바겐’이 성사됐다면 국가신용등급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바크먼의 부상은 티파티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1773년 영국에 맞선 보스턴 차 사건에서 따온 티파티 운동은 2009년 연방정부의 천문학적 자금의 경기부양책에 반발하며 정치적 조명을 받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민간 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 증가와 그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에 반발하며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영향력을 강화했다. 연방정부가 헌법적 권한 이상을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융 및 의료보험 개혁 등으로 인한 재정지출이 급증해 보수적 유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정치컨설턴트 스티브 미첼은 “티파티는 미국 사회 분노의 물결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 및 티파티 지지 후보의 대거 당선으로 이어졌다.
바크먼은 티파티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는 “우리 국민이, 너무 거대해지고 너무 많이 쓰고 우리의 자유를 너무 많이 빼앗아간 정부로부터 독립을 되찾는 순간을 대표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크먼은 미국의 국가부채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비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 세대가 “경제적 자유를 파괴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대 티파티 단체인 ‘티파티 패트리어츠’ 공동 설립자인 마크 매클러는 “바크먼은 원칙이 있고 티파티 가치와 일치하는 행동을 취해온 것 같다. 바크먼은 하원 지도부가 티파티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때 지도부와 꾸준히 맞선 사람 중 한 명”이라고 <cnn> 인터뷰에서 평가했다. 은 6월26일 “바크먼의 부상은 티파티 보수주의 운동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데 도움을 준 이후에도 강력한 세력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바크먼은 미국 우파, 특히 경제적 강경 보수주의의 가치를 담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바크먼은 미국의 사회적 강경 보수주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는 자녀 5명의 친엄마이자, 23명의 어린이를 위탁받아 키웠다. 노르웨이 루터파 후손인 부모 밑에서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그는 자녀들을 홈스쿨링으로 직접 가르쳤다. 그러나 규정에 따라 위탁아를 학교에 보내야 하자, ‘엄마로서의 걱정’과 ‘미네소타의 교육정책을 바로잡으려는 마음에’ 교육위원회 선거를 시작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게이는 슬픈 삶… 사탄의 일부”
미국에서 사회적 보수주의자를 가리는 잣대 중 하나가 동성애에 대한 태도다. 그는 동성애를 혹독하게 비난해왔다. 2004년에는 게이에 대해 “슬픈 삶이다. 사탄의 일부다”라고 말했다. 동성애에 대해 ‘질환’ 또는 ‘성적 장애’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요즈음 세상에 공개적으로 좀체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그는 낙태에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바크먼이 동료 의원들을 ‘반미’가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고려하면, 그가 어느 정도 강경 보수주의자인지 짐작이 간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주의로 가는 마지막 단계”라고 주장했다. 바크먼은 정부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구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막는 ‘백열전구 자유선택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환경보호국(EPA)을 “일자리를 잡아먹는” 조직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지구적 의제가 된 온난화에 대한 그의 시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크먼의 사회적 강경 보수주의 색채는 종교적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오럴로버츠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법학 수업과 함께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는 곳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바크먼은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이던 2006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결정하려고 기독교계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사흘 동안 단식하고 기도했다. 그는 “신이여,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바크먼은 2006년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하느님이 말하셨습니다. 순종하라, 아내들이여. 여러분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바크먼은 적당한 조세 비율을 소득의 10%라고 말하는데, 교회의 ‘11조 헌금’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강경 보수주의 색채가 짙다 보니 강경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에 자주 등장한다. 보수 기독교단체인 ‘신앙과 자유연대’ 랠프 리드 회장은 6월28일 <bbc> 인터뷰에서 “바크먼은 사회적 보수와 티파티 활동가들의 결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독특하게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리드에 따르면, 기독교 복음주의자이자 사회적 보수는 공화당 경선 유권자의 41%를 차지한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강경 보수주의를 드러내는 티파티 역시 사회적 강경 보수주의 가치를 공유한다. 에 따르면, 티파티 지지자들은 일반 공화당원들보다 더 보수적이며 스스로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평가한다. 오바마를 상당히 ‘리버럴’하다고 여기며,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이 정치인들에 ‘불만족스럽다’고 하는 반면 티파티 지지자들은 ‘화가 난다’고 느낀다. 자신을 티파티 지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18%가 공화당 지지자이며, 백인이고 남자로 결혼했으며 45살 이상이라고 와 <cbs> 2010년 4월 공동 조사에서 나타났다.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소득이 높고 교육도 많이 받았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중산층과 부유층을 돕기보다는 저소득층을 돕는 데 과도하게 치우쳐 있으며, 오바마가 다수 미국인들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25%는 오바마가 흑인을 백인보다 선호한다고 여기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일반 미국인이 11%인 점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페일린보다 더 지적이고 세련된
거슬러 올라가보면, 공화당은 그동안 보수적 풀뿌리 운동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지지 기반을 강화해왔다. 미국은 ‘딕시크랫들’(Dixiecrats)로 불린 보수적 남부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1960년대 흑인 민권정책 등 진보적 정책에 반발해 공화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꾸면서 이념적·정책적 성향에 따른 정당 지지 기반 재편이 일어났다. 이후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 뒤 공화당이 사회적 쟁점에서 기독교 우파 등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와 연계를 본격화했다. 1980년대 이후 공화당은 감세, 작은 정부와 같은 경제적 문제는 물론 인종, 낙태, 동성애, 학교 예배, 이민 등 사회적 문제들을 정치쟁점화하고 보수적 백인 유권자를 끌어모았다. 1970년대 후반 세금저항 운동, 1980년대 도덕적 다수, 1990년대 기독교 연합, 2000년대 복음주의 개신교도 단체들과 연대를 강화해왔다. 이들은 감세와 작은 정부는 물론 전통적 가치의 수호를 주장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티파티와 공화당의 연계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공화당의 보수적 이념 성향이 사회적 보수주의보다 경제적 보수주의가 더 강화돼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협상에서 드러났듯, 공화당이 티파티의 등장 이후 경제적으로 더욱 보수화된 것은 뚜렷하다. 오바마 캠프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공화당을 놓고 “지금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티파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는 8월12일 “(우리는) 공화당이 가당찮게 티파티 교리에 무릎 꿇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공화당은 과거부터 줄곧 우파적 색채를 강화해왔고, 경제위기와 맞물려 경제적 보수주의 색채가 더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는 7월1일 “공화당이 서서히 오른쪽으로 이동하다가 티파티의 등장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바크먼도 티파티를 비롯한 강경 보수주의자의 표심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8월13일 “티파티든, 사회적 보수든, 재정적 보수든, 국가안보 보수든 함께 뭉치면 그 위대함이 미국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분석가 찰리 쿡은 “과거 공화당에서 바크먼은 말도 안 되는 후보지만 현재의 공화당에서 그는 진짜 도전자”라고 평가했다.
바크먼이 떠오르자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빛을 잃었다. 바크먼은 페일린보다 더 지적이고 세련되고 노련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페일린은 미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후원금 모금 능력에서도 많이 뒤진다. 페일린은 2011년 상반기 160만달러를 모금했다. 반면 바크먼은 지난해 선거에서 하원 435명 가운데 가장 많은 1350만달러를 모금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바크먼의 모금액이 대부분 200달러 미만의 후원금에서 모아졌다는 점에서 득표력을 무시할 수 없다. 보수 선거조직단체인 프리덤워크스의 브렌던 사타운하우저 국장은 “대통령감으로 바크먼에 대해 물으면 티파티 운동 안에 지지가 많다. 하지만 페일린에 대해 물으면 ‘우리는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대통령으로는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다”라고 전했다.
티파티 지지는 양날의 칼
그렇다면 티파티를 비롯한 미국 강경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바크먼의 앞길은 탄탄대로인가? 바크먼에게 티파티의 지지는 여전히 양날의 칼이다.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협상 타결 뒤 조사를 보면, 티파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지난해 4월 18%보다 크게 늘어난 40%에 이르렀다. 자신이 티파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6%에서 18%로 줄었다. 티파티가 공화당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크게 늘어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칼럼니스트 캐슬린 파커는 7월30일 칼럼에서 “오바마를 쫓아내려는 티파티 회원들은 자기 지도자의 신뢰를 갉아먹고 국가를 손상시킴으로써 오히려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을 높였다”며 “티파티는 워싱턴에 너무 배어들어 유독성 물질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강경한 우파 정치인 바크먼이 공화당 경선에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다른 경쟁자를 이기더라도 오바마와 맞서 중도층의 표심을 잡고 당선될 수 있을지 공화당 막후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념적으로는 국가의 지나친 개입에 반대하는 보수 성향이지만 각종 사회보장 혜택이 철회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 재집권도 1994년 의회를 장악한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무리하게 보수적 정책을 추진한 데 대한 역풍의 영향이 컸다.
당장 민주당은 공화당을 티파티와 최대한 연계시키려 하고 있다. <ap>은 8월17일 오바마 진영이 공화당 전체를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티타피와 연결시키고 있다며, 이 전략이 성공하면 티파티와 연계가 없는 롬니 같은 공화당 후보에게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버트 기브스 전 백악관 대변인은 “티파티에 충성을 맹세할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함께 일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국위 광고는 공화당 의원들과 대선후보들이 “극단적 티파티 정책을 수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낙인 작전은 과거에도 유효했다. 1996년 빌 클린턴 재선거에서 민주당은 공화당 대선 후보 밥 돌을 “돌리치”라고 낙인찍었다. 돌을 당시 궁지에 몰려 있던 깅리치 하원의장에 빗댄 것이다. 민주당은 공화당 주요 대선 예비후보들의 주요 이슈에 대한 태도가 비슷해지면, 오바마 진영이 공화당 후보 전체를 한꺼번에 ‘친티파티’로 몰아가기가 더 쉬워질 것으로 본다. 대신 오바마는 스스로를 실용적인 문제 해결사로 부각하면서 티파티의 강경 보수주의에 지친 무당파를 잡는다는 전략이다.
행정·정치 경험 일천한 약점
이제 서서히 대선주자들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바크먼은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강력하게 비난해왔지만, 위스콘신에 있는 자신의 가족농장에 2001년 이후 15만4천달러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크먼은 행정 경험도 없고, 2007년 3월부터 하원의원으로 생활해온 게 연방정치의 전부라는 게 약점이다. 이 때문에 은 8월15일 “미국인들은 말은 번지르르한데 의원으로서 성취한 게 없고 행정 경험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바크먼은 그가 오바마의 보수적 버전이 아니라는 점을 유권자에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바크먼과 티파티의 성패는 내년 초면 드러날 것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ap></cbs></bbc></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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