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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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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맞은 카터, 바람 앞의 남북

남과 북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한 카터 전 미 대통령… MB의 강경고립주의로 ‘기회’ 놓쳐 남북관계 더 경색될 수도
등록 2011-05-04 17:04 수정 2020-05-03 04:26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1994년 6월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그렇게 반응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전했을 때다. “카터는 김정일 대변인이다.” 지난 4월28일 이명박 정부의 핵심 당국자는 그렇게 평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전한 카터의 핵심 메시지는 남북 정상회담이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만큼 울림의 크기가 다르다. 1994년 카터는 한반도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2011년 카터는 남과 북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했고, 남한에서는 졸지에 ‘친북좌파’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김정일은 왜 카터를 만나지 않았나

17년 전과 지금 같은 점이 있다. 북핵 협상은 교착이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당시 김영삼 정부도 북-미 양자대화를 반대했다. 평양이 워싱턴으로 가려면, 반드시 서울을 통해서 가라는 태도다. 북한과 협상하려는 미국의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카터를 통해 정상회담 카드를 커내든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를 선순환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남쪽의 대북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 1994년에는 성공했고, 이번에는 실패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어르신들'(The Elders)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어르신들'(The Elders)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번에 김정일은 정상회담 제안을 카터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공항으로 가는 카터를 불러세워 메시지를 전했다.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카터를 만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번에 당연히 만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8월 카터의 2차 방북 때,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이유로 카터를 만나지 않았다. 예의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터가 아닌가? 민주당 출신의 전직 미국 대통령이고, 1994년 한반도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당사자다. 그래서 이번에는 만날 줄 알았다. 방북 형식도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어르신들’(The Elders)의 단체 방북이었다. 충분히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만날 수 있는 형식을 갖췄다. 그리고 카터 방북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에 체류했다. 그런데, 왜 굳이 만나지 않았을까?

다른 직접적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만날 수 있는데도 만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북한의 초청외교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말을 하고 싶을 때, 곧잘 초청외교를 활용한다. 뉴스의 초점이 될 수 있는 저명한 인사를 초청해, 마이크로 쓰는 것이다. 마이크는 성능이 좋아야 한다. 세계 여론의 집중도가 높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이나 한국 정부에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쇼는 자주 하면 약발이 떨어진다. 성능 좋은 마이크는 흔치 않고, 자주 사용하기도 어렵다. 신중하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 들어와 몇 번의 마이크가 주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다. 가장 성능 좋은 마이크다. 전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고, 현직 국무장관의 남편이며,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북한이 착각한 것이 있다. 당시 클린턴은 소리 나지 않는 마이크였다. 왜 그런가? 방북 목적이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 석방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인질 협상과 관련해, 대가는 없다는 것이 공식 방침이다. 여기자들을 데리러 간 클린턴이 공개적으로 정치·군사적 현안, 다시 말해 김정일이 미국에 원하는 바를 미국에 와서 떠들기 어려웠다. 물론 당시 오바마 행정부도 대화 의지가 높지 않았다. 클린턴 초청외교는 실패했다. 지난해 8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도 표면적인 방북 목적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이었다. 억류자 석방 외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번에도 억류자는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러나 카터는 억류자 석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방북 목적은 6자회담 재개 환경을 조성하고, 식량 지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남북대화를 중재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입장은 무엇일까? 카터라는 마이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남북관계다. 이미 6자회담 재개는 미-중, 북-중 연쇄 접촉을 통해 가닥을 잡았다. 이른바 3단계 접근법이다. 먼저 남북대화를 하고, 북-미 대화를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입구다. 미국과 대화하려면 여기를 통과해야 한다.

YS와 MB의 결정적 차이

김정일은 카터를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과 연평도를 묶어서, 북한의 책임을 제기하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반응하기 어렵다. 천안함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어떤 울림이 있겠는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마이크를 쓰지 않았다.

정책을 전환하려면 명분과 계기가 필요하다. 17년 전에도, 김영삼 정부 안에서 카터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북한 대변인’이라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 계기를 극적으로 활용했다. 대북정책을 정반대로 전환했고, 정부 안의 보수적 분위기를 일거에 돌려놓았다. 만약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가 달라졌을 것이다. 북-미 제네바 합의와 어울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꿨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완고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김영삼은 너무 자주 바뀌어서 문제였지만, 정치인으로서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 국면을 내다보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없다. 정치적이지 않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둔감하다. 케케묵은 북한 붕괴론과 ‘뉴라이트적 신념’뿐이다. 천안함 문제를 너무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이제 유연성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대화 의지가 없는데, 계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남북관계도 6자회담도 서울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일종의 고립주의 외교다. 지난 4월 중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 들렀을 때, “북한의 성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진심을 확인할 때까지 만날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이 보도했다. 반공산주의자 입장에서 이제 미국에 ‘노’(No) 하는 시대인가? 중국도 우습게 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터가 평양을 방문하는 동안 중국 쪽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서울을 방문했다. 홀대와 무시가 곳곳에서 풍긴다.

한국의 힘이 세졌다. 되게 하는 것은 어려워도, 안 되게 하는 능력은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오바마 행정부의 아웃소싱 외교 때문이다. 중국에 압력을 가하고, 한국의 태도에 편승하는 전략 말이다. 중동 사태처럼 더 중요한 외교 현안이 산적해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한국과의 경제적 실익을 더 중시하는 전략 말이다. 그런 상황 때문에 그동안 이명박 외교가 통했다.

앞으로도 그럴까? 동북아 주변국의 변화를 앞장서 막을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렵다. 교착 국면을 주도해온 한국의 구실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이상, 이제 팔짱 끼고 구경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협상을 해야 한다. 이미 미국은 식량 지원을 위해 미국 비정부기구(NGO)의 실태 조사를 허용했고, 북한 관료들의 경제 시찰을 받아들였으며, 베를린에서는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참여해 미국 사람들과 비공식 대화를 갖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모두 민간 차원이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 안에서 더 이상 한국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너무 늦었지만, 서서히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낙관하기 어려운 한반도 정세

이명박 정부는 기회를 놓쳤다.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북한 특사단이 와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가 첫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2011년 카터 방북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남쪽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상회담 말이다. 이제부터는 어렵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매달린 측면이 있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4·27 재·보궐선거 결과는 ‘한 방에 훅 간다’는 바로 그 한 방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이기에,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면 주변국들도 무시한다.

앞으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6자회담은 재개될 것이다. 물론 어려운 협상이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이 중단된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당연히 핵 포기의 대가도 비싸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다. 앞으로도 한국이 협상에 부정적이면, 그래서 남북관계가 안 풀리면 6자회담도 내용적으로 진전되기 어렵다.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협상을 주도할 능력, 과거보다 약하다. 낙관하기 어려운 정세다. 물론 대화가 시작되면 현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대립의 근원을 해소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상황은 악화된다.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쓴 카터와 ‘어르신들’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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