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연료만 아니었다면 밀과 옥수수의 국제 재고량이 그처럼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고, 기름 추출에 이용되는 곡물 가격이 3배나 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 일간지 은 2008년 7월4일 세계은행(WB)이 작성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국제 식량 가격 상승분의 75%가 곡물에서 추출되는 바이오연료 사용 증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 4월 초순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공식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았다. 은 그 이유로 세계은행의 고위 관계자 말을 빌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을 당황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당시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세계은행 "바이오연료 곡물가격 최대변수"
바이오연료는 생물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다. 휘발유와 경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에탄올(휘발유 대체)과 바이오디젤(경유 대체)이 대표적이다. 바이오에탄올은 사탕수수·옥수수 등에서, 바이오디젤은 해바라기씨·팜유 등에서 주로 추출한다. 아직은 기존 휘발유와 경유에 바이오연료를 혼합해 자동차 연료로 주로 쓰인다.
세계은행 보고서의 논리는 2010년 6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0~2019년 세계 농업생산 보고서’에서도 재확인된다. 이 보고서는 세계 식량 생산과 곡물 가격에 영향을 끼칠 최대 변수로 유가와 함께 바이오연료를 꼽았다. CJ제일제당의 송정호 곡물전략팀장은 “미국이 과거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쓰이던 옥수수를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쓰는 등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곡물이 많이 소비되면서 곡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곡물 가격이 오르는 데도 미국과 브라질 등은 바이오연료 생산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비중이 1990년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6%에서 지난해 35%까지 늘었다. 더구나 올해 옥수수 생산량은 3억1600만t으로 전년(3억3300만t)에 비해 17% 줄어들 전망이지만,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비중은 1억2600만t으로 전년(1억1600만t)에 비해 10% 늘어날 전망이다. 사탕수수를 이용해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브라질도 2009년 250억ℓ이던 바이오에탄올 생산량을 2017년까지 640억ℓ로 늘릴 계획이다. 바이오디젤 비중이 높은 유럽연합도 바이오에너지의 사용량을 2020년까지 4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바이오연료 생산 확대의 근거로 ‘청정에너지’를 꼽는다.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에 비해 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는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하지 않아 지구온난화나 환경파괴에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 감축이 환경에 더 유익
하지만 바이오연료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는 2008년 3월11일 바이오디젤 공장에서 흘려보낸 동·식물성 기름이 앨라배마와 오하이오주의 강을 오염시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연료용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브라질·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광대한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그곳의 습지가 말라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아울러 제3세계에서 대규모 농장 개발을 하면서 현지 농민들이 쫓겨나는 사회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OECD가 바이오연료 정책보다 에너지 소비 감축이 환경에 유익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OECD는 2008년 발행된 ‘바이오연료 정책’에서 “바이오연료 같은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에너지 절약으로 유해가스 방출을 줄이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바이오에너지 활성화를 녹생성장 정책에서 중요 과제로 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상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곡물가 상승 등 논란이 많아 아직 바이오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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