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가 물러난 데 이어 아랍권의 왕정국가까지 흔들리고 있다. 주한 리비아인·이집트인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민주화 제4의 물결’로도 불리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의미 등을 직접 들어봤다._편집자
악수를 한 뒤 리비아인 조아하리 모하메드는 대형 사진부터 꺼내 펼쳤다. 그가 보여준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 희생자 사진들은 어찌나 참혹한지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봐라. 카다피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다.” 그의 친구인 이집트인 샤반 하무다도 2월11일 퇴진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성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어가 서툰 모하메드와는 의사소통이 때로 힘들어 하무다가 통역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은 말보다 더 잘 분노를 전달했다. 하무다도 통역하지 못하는 말은 영어를 더 잘하는 다른 아랍인 친구를 전화로 연결해가며, 자신들의 분노를 처음 만난 기자에게 털어놓으려 애썼다. 모하메드는 2월25일 서울 이태원 주한 리비아경제협력대표부 앞에서 카다피 퇴진촉구 시위를 벌였고 하무다도 참석했다. 두 사람은 “알라도 반정부 시위를 찬성할 것”이라며 “시위대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모하메드는 약 4년 전부터, 하무다는 약 1년 전부터 한국산 중고차 수출을 하고 있다. 인터뷰는 3월2일 인천 연수구 송도 수출 2단지에 자리한 모하메드의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컨테이너 벽에는 리비아 시위대의 반카다피 상징이 된 옛 왕정 깃발이 걸려 있었다.
-리비아 등 아랍권에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모하메드: 나라 구석구석에 문제가 많다. (두 손가락으로 머리에 뿔난 모양을 하며) 리비아인들이 화가 머리까지 나 있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카다피는 어린아이까지 죽이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 국민이 이길 것이다. 리비아 사람들은 카다피가 쫓겨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리를 지키려면 리비아인을 모두 죽여야 할 것이고, 카다피를 쫓아내려면 그를 죽여야 한다. 리비아인은 그가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하무다: 이집트 시위 당시 이집트에 머물고 있었다. 시위 이전에 이집트는 죽은 나라 같았지만, 시위를 보면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수도 카이로의 광장에 가고 싶었지만, 당시 지방에 있어서 교통이 차단되고 치안도 불안해 가지 못했다. 하지만 무바라크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제 우리는 자유로워졌다. 무바라크 축출 이틀 전에 돌아왔는데, 한국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모하메드: 분노한 우리 리비아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주한 리비아경제협력대표부가 리비아인과 함께하고 카다피 편에 서지 않기를 희망했다. 희생이 더 커지기 전에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싶었다.
=하무다: 같은 아랍인으로서 리비아인을 지지하고 싶었다. 이집트와 리비아가 다른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종교와 언어, 정치 상황 모든 게 같다. 그래서 이태원의 카다피 규탄시위에 참가했다. 아랍 국가들은 모두 똑같다.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느낀다. 걸프만과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들은 모두 형제다.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에 가서 무엇을 기도했나.=하무다: 신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를 기도했다.
=모하메드: 나도 마찬가지다. 카다피가 끝장나기를 바랐다.
-무엇이 이번 시위를 촉발했나.
=하무다: 부자들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더 가난하다. 미래가 없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하루에 5명씩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의 고통을 겪었지만 나라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정치인과 기업가 몇 명이 돈과 나라를 주무르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였다. 아름다운 해변과 고대 유적 등을 부자들이 차지한다. 무바라크 주변에 나쁜 사람이 많았다. 무바라크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졌고, 수많은 도둑질을 했다. 무바라크가 쫓겨나기 전 1만 개나 되는 기업 비리에 관한 파일을 갖고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국가경제가 발전하기를 원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가 수십 년간 집권한 늙은 나라였고, 과거와 같은 위대한 나라가 아니었다.
=모하메드: 리비아라는 나라는 부자지만, 리비아 사람들은 가난하다(그는“리비아 사람 돈 없어”라고 한국말로 다시 말했다). 실업률이 30% 가까이 된다. 일과 집이 없고, 일해도 한 달에 200달러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카다피는 리비아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카다피는 진짜 리비아 사람이 아니다. 엄마가 리비아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인이다(이런 주장은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편집자). 진짜 리비아인이라면 리비아인을 죽이겠나. 그는 중범죄자다. 리비아의 어린이와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1996년에는 벵가지 아부슬림 감옥에서 정치범 1200여 명을 한꺼번에 죽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벵가지에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면서, 모든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도록 텔레비전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요구보다 경제적 궁핍함이 시위의 더 큰 배경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하무다: 먼저 경제가 성장하지 않은 게 문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없어도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경제정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는 최고 지도자가 좋다고 하면 그대로 따라간다. 이집트는 무바라크가 원하고 말하는 대로만 이뤄졌다. 민주주의와 경제는 같이 나아가야 한다.
=모하메드: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자유다.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뜻을 말할 수 있어야 좋은 나라다.
-리비아 시위는 동부와 서부로 갈라져 대결을 벌이는 양상인데.=모하메드: 아니다. 모든 리비아가 형제다. 동부와 서부가 갈라진 게 아니다. (손가락을 흔들며) 절대 아니다. 리비아는 하나의 나라다. 벵가지는 자유로워졌고 카다피가 있는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할 것이다. 카다피가 저항하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수십 년간 독재가 이어졌는데, 왜 그동안은 참아왔나.=하무다: 우리 이집트와 아랍 국가 국민은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무바라크가 통치를 더 잘하고 나라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기회를 주고 기다렸다.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할 것으로 믿고 기다렸다. 또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 저항이 쉽지 않았다. 30년간 비상계엄을 유지하면서 누구든지 이유 없이 잡아 가둘 수 있었다. 언론도 대통령이 장악해 국민이 원하는 바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에 시위와 개혁 요구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확대되지도 않고 효과도 없다가, 이번에 파급이 컸던 것이다. 이슬람법은 최고 지도자가 이슬람 종교 원리를 벗어날 때까지 따르도록 돼 있다. 이맘(이슬람교 지도자)이 이슬람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말해주는데, 일부 이맘은 무바라크가 이슬람법을 어기고 있다고 한 반면 일부는 대통령이 이슬람을 벗어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모하메드: 아랍 사람은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꿔라, 바꿔라, 바꿔라 요구해왔다. 잘하라, 잘하라고 해왔고 잘하면 문제없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에 무척 화가 났고 많은 사람들이 지쳤다. 일부 이맘도 대통령의 통제를 받아 국민을 헷갈리게 해왔다.
=하무다: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튀니지도 했다. 인구도 많고 더 큰 나라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튀니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랍권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이 컸다.
=하무다: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언론이 대통령에게 통제돼, 국민에게 좋은 것만 말하다 보니 국민이 뉴스에서 말하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은 몰랐다. 이제 모든 사람이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 수 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유럽과 일본,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민주주의가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이제 1시간 안에 시위를 조직하고 장소를 정해 모일 수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데 더 강력한 수단이 생겼고, 대통령과 왕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모하메드: 매일매일 인터넷을 체크한다. 한국에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두 알 수 있다.
-무바라크와 카다피는 한때 영웅이었다가 독재자로 전락했다.
=하무다: 이집트 사람들이 무바라크를 독재자로 만들었다. 그 주위 사람들이 무바라크에게 ‘국민이 당신을 좋아한다.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무바라크는 주위 사람들에게 소식을 접하는데,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신처럼 모셨고, 결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변화를 요구하면, 미국의 지시를 받았다는 식으로 호도하며 불순 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모하메드: 카다피는 과거부터 영웅이 아니다. 거짓말만 해왔다. (‘기름 팔아 훔진 돈 어디로 갔나’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며) 그는 지난 40년 동안 석유를 판매한 수익을 국민에게 1달러도 주지 않고 모두 가져갔다. 현금만도 어마어마하게 갖고 있다.
-이슬람교의 신 알라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뭐라고 할 것 같나.
=하무다: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모하메드: 맞다. 알라는 정의와 자유가 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도 화가 났을 것이다. 우리의 시위에 신도 찬성할 것이다. 카다피는 알라에 의해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5년, 10년마다 최고 지도자가 바뀌어야 하는데, 리비아는 42년간 카다피가 통치했다.
=하무다: 이슬람법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잘 몰랐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주의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이슬람법에 따라 민주주의를 이뤄나갈 것이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퇴진 뒤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하무다: 이집트에서는 지금 원하지 않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범죄가 이어지고 있는데 빨리 안전한 나라가 돼야 한다. 이집트는 군대가 통제하고 있고 국민은 군대를 믿는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모하메드: 리비아는 과거는 (카다피의 통치 철학을 담은 정치사상서)을 따랐지만, (불태우는 시늉을 하며) 이제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한) 벵가지에서 은 불태워지고 있다.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고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도 을 좋아하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 황당한 책이다. 지금은 누구에 의해서도 통제되지 않고 있지만, 리비아도 새로운 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기를 바라나.
=하무다: 과거의 법은 폐기됐다. 이제 새로운 법을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 국가고, 이슬람법(정신)에 따라 만들어갈 것이다.
=모하메드: 카다피를 상징하는 녹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왕도, 카다피도 원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자유와 정의를 말한다. 리비아인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런 나라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득세를 서구는 우려한다.=하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아랍 국가들에서 그렇게 영향력이 크지 않다. 무슬림형제단을 강하게 만든 것은 무바라크 대통령이다. 이집트에서는 영향력이 알려진 만큼 강하지 않다. 무바라크와 미국, 영국 등이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두려워하도록 세력을 부풀려 말해왔다.
=모하메드: 맞다. 리비아에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없다. 세력이 전혀 강하지 않다.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에 찬성하나.=모하메드: 반대한다. 필요 없다. 리비아 국민이 해낼 수 있다.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만 설정해주면 우리가 할 수 있다. 미국은 리비아에 들어오면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가 그렇지 않았나. 군대는 안 된다. 아랍 국가는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유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석유를 위해 행동한다. 미국은 언제나 자신들을 위해 행동해왔다.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원하는 것이다. 카다피는 반드시 우리가 리비아 안에서 잡아 법정에 세우고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그는 나쁜 짓을 해왔고 많은 사람이 그에 의해 죽었다.
=하무다: 나도 반대한다. 지금 서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과 영국은 카다피와 무바라크의 오랜 친구였다. 아랍의 독재자들이 쫓겨나고 아랍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된다면 그들에게는 무척 나쁜 상황이다. 아랍인들이 폭파범으로 테러를 저지른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쁜 대통령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나쁘다고 비판하면 감옥에 가니,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다. 미국 등이 무바라크 등을 지원하니까, ‘나쁜 카다피와 무바라크를 지원하는 너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외국에 나가 테러나 폭파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우리의 지시를 따른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나쁘게 보이는 것이다.
-반정부 시위가 번져 중동의 왕정국가도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나.=하무다: 예멘과 알제리는 물론 왕정국가인 바레인, 오만 등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살아남는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도일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서방의 튼튼한 지원을 받는다. 두바이는 중동 상업거래의 중심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거대 석유생산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문제가 생기면 석유 가격이 치솟을 테니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시위대를 달래려고 엄청난 돈을 나눠주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모하메드: 카타르도 국왕이 좋은 사람이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끝으로 한국에 살아본 사람으로서 이번 시위를 보며 특별히 느끼는 게 있나.=모하메드: 지금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리비아에서 하면 바로 감옥에 간다. 그런 차이다. 이태원에 가서 시위를 했는데, 그런 게 민주주의다. 리비아에서는 할 수 없다. 우리가 갔을 때 한국 경찰들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통제했다.
=하무다: 한국과 같이 무척 좋은 나라와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은 무척 좋은 나라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이집트는 아니었다. 한국은 길이 잘 닦여 있고 좋은 건물이 넘친다. 사람들도 좋고 민주주의 국가여서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이곳에선 권리가 보장되지만 이집트는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한국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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