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광이라면 알 듯하다. 아틀레틱 빌바오. 1898년 창단된 축구클럽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8회, 국왕컵 24회를 우승한 명문구단이다. 이천수가 잠시 뛰었던 레알 소시에다드와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팀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 건축물”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수만 개의 티타늄판이 빛나며 환상적 느낌을 자아내는 초대형 건축물로, 금색 뱀 머리의 메두사를 연상시키는 파격적 건축양식은 ‘금속꽃’이라 불린다. 모두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을 대표한다. 축구와 미술, 언뜻 얼마나 평화로워 보이는가?
끝나지 않은 꿈, 민족국가하지만 ‘바스크 조국과 자유’(Euskadi ta Askatasuna), 이 이름을 듣는 순간 평화로워 보이던 바스크는 분쟁의 땅이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 사이에 위치한 바스크의 분리독립을 목표로 하는 무장단체 ETA다. ETA는 지난 9월5일 공개된 성명에서 “무장공격을 감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휴전선언은 1981년 이후 이미 11번째. 국제사회는 ETA가 휴전 약속을 지킬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분리독립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TA는 성명에서 “분쟁의 진정한 해결로 향하는 문은 바스크 조국이 국가로 인정될 때 열릴 것”이라며 ‘바스크 조국의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ETA의 무장투쟁이 분리독립을 추구하듯, 지금 국제사회는 ‘독립’이라는 주제와 다시 마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9월2일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에 들어갔다. 9월9일 유엔총회에서는 코소보 독립이 논의됐다. 나라 없는 집시는 프랑스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며 쓰라린 설움을 겪고 있다. 9월18일 칠레 등 남미는 올해 독립 200주년을 맞는다. 이런 독립의 문제가 먼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올해 우리는 1910년 경술국치 100년 뒤에도 국권을 빼앗긴 조약의 성격을 놓고 ‘병합’이냐 ‘합병’이냐 ‘병탄’이냐 논란을 벌였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뒤 주필 장지연은 이렇게 목 놓아 한탄하지 않았는가. 독립과 조국, 국가는 무엇인가?
9월2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자가 직접 참여하는 중동평화협상이 1년8개월 만에 공식 재개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포괄적 협정을 타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하지만 ‘2국가 해법’, 곧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인정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 국민을 위한 2개 주권국가’의 공존에 합의하느냐의 난제가 앞에 놓여있다. 당장 9월26일 끝나는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유예를 연장하는 문제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을 통해 1948년 팔레스타인에 독립된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꿈을 이뤘지만,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에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다.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집시 추방 사태는 독립된 국가가 없는 민족의 처절한 설움을 보여준다. 프랑스 정부는 유랑자 범죄를 빌미로 무차별적 강제 철거와 추방을 시행하고 있다. 8월26일 집시 283명을 추방하고 집시촌 한 곳을 폐쇄하는 등 올해 프랑스에서 추방된 루마니아·불가리아 출신 집시는 8313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추방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며 논란이 번지고 있다. 인도 아리안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집시들은 14세기 중동과 발칸을 거쳐 유럽으로 옮겨온 뒤,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떠돌며 학살과 멸시의 대상으로 차별에 시달려왔다.
코소보, 성공한 민족주의?
바스크인의 10% 남짓만 완전한 분리독립을 원하는 상황에서, ETA가 원하는 분리독립은 멀어 보인다. ETA에 ‘상당한 자치를 누리지 않느냐. 자치가 더 현실적이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바스크는 자체 의회와 경찰을 갖고 있고 교육자치를 누리며 자체 세금도 징수하지만, ETA는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다. ETA에게 독립과 조국은 무엇일까? ETA는 9월5일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치 체제는 바스크인들의 소망을 만족시키는 방식이 아님이 드러났다. 바스크 조국의 분열과 해체를 유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이나 코소보도 상당한 자치를 누렸지만 독립국가를 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1978년 제정된 스페인 헌법 2조는 “스페인 국가가 분할될 수 없고, 해체 불가능한 통일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지역들의 자치권을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ETA는 그동안 자치 대신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며 무장투쟁과 테러의 길을 버리지 않았고 지난 40년간 8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스크기에는 정치를 상징하는 뱀이 무장투쟁을 상징하는 도끼를 휘감고 있고 그 아래에 뱀과 도끼 두 가지를 모두 수호하자는 뜻의 ‘비에탄 자라이’(Bietan Jarrai)란 구호가 적혀 있다. ETA의 눈에는 어쩌면 독립국가에 다가선 코소보가 가물거리는지 모른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7월22일 200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에서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것에 대해 “국제법상 위법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자국 내에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는 러시아와 중국, 스페인 등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과 독일 등에 이어 유엔 회원국 중 70번째로 온두라스가 9월3일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만으로 코소보가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어서, 코소보는 유엔총회를 앞두고 최대한 많은 나라에서 독립을 인정받으려 외교전을 펼쳤다.
ETA는 스페인 역사의 배설물이다. ETA는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총통의 군부독재(1939~75)에 맞선 학생 저항운동으로 1959년 탄생했다. 프랑코 체제하에서 바스크 언어가 금지되는 등 고유 문화는 탄압받았고, 엘리트들은 정치·문화적 신념 때문에 수감되고 고문받았다. 프랑코 독재체제의 핵심 정책은 반공산주의, 반분리주의였던 것이다. 이런 정책은 잠복해 있던 바스크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다. 바스크는 고대부터 피레네 산맥에 고립돼 광적이라 할만큼 정체성에 강하게 집착했다. 여기에 1960년대 초 시작된 ‘제2산업화’를 바스크가 주도하면서 스페인 4개 언어권 가운데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어권 이민자가 몰려들자, 바스크의 인종적·민족적 순수성이 오염된다는 거부감과 반발이 끓어오르던 터였다.
결국 프랑코의 탄압은 바스크 민족주의 공동체를 더욱 결속시켰다. 이런 탄압에 맞선 ETA의 선택은 알제리와 쿠바의 반식민지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적·혁명적 노선이었다. 착취당하는 식민지에서 게릴라 전쟁은 탄압하는 ‘외세’를 몰아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무장테러 투쟁이 테러로 비난받지만, 1970년대까지도 ‘에킨차’, 곧 애국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스페인사 전공자 김원중 박사는 “프랑코 독재세력에 맞선 폭력테러는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를 위하는 헌신이자 민주화운동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프랑코 사망 뒤에도 폭력을 부인하면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모순이 있었고, 민주화 이행기에서 비폭력 화해협력 방침에 바스크는 소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스페인이지만,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북동부 카탈루냐가 걸어온 길은 바스크와 크게 다르다. 카탈루냐 역시 카스티야 중심의 병합에 반대했지만, 1970년대에 부활한 카탈루냐 민족주의운동을 주도한 ‘카탈루냐총회’는 타협에 기반한 단체였다. 카탈루냐는 오랫동안 무장투쟁 대신 화해와 절제를 내세우며 스페인 국가의 틀 안에서 최대한 자치를 보장받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세계적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는 ETA를 ‘서유럽의 마지막 테러조직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ETA는 이제 스페인 정부와의 협상 조건으로 영구적인 무장투쟁 포기를 요구받고 있다. 신·구교 세력이 30년간 유혈분쟁을 벌인 영국령 북아일랜드에서 1998년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2005년 7월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무장투쟁 포기 및 무장해제를 선언한 것은 테러와 폭력으로는 분리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의 반영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무장투쟁과 테러는 알제리와 앙골라, 케냐 등 여러 곳에서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는 데 기여한 게 사실이다. 1999년 10월20일 독립한 신생국 동티모르는 20년의 독립투쟁 기간에 인구의 4분의 1인 20만여 명이 희생된 끝에 16세기 이후 400년간의 포르투갈 식민지배와 25년간의 인도네시아 지배를 벗어났다. 동티모르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사나나 구스마오는 2002년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는 또 다른 사람의 독립투사”라거나, “지배가 저항을 낳았고 테러리즘은 약자가 선택한 저항의 한 형태”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ETA의 경우에서 보듯, 테러라는 형태의 폭력적 수단을 통해 ‘분리독립’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저항의 원인과 정치적 대의를 설득시키기보다는 무고한 피를 흘린다는 사실 때문에 범죄시되고 대중은 오히려 멀어진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민간이 10만여 명이 숨지는 초국가적 국가테러는 묵인돼도, 독립국가를 위한 테러는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길이 더욱 멀어ETA는 “갈등의 민주적 해결책을 찾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세계가 ‘무장독립 투쟁’을 내세운 테러를 거부하는 지금, 대신 대화와 협상이 독립이라는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중동평화협상은 벌써부터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무장투쟁을 내세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배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 하마스는 “거짓 약속에 수없이 속아왔다”며 중단 없는 항전을 선언해왔다. 중동평화협상이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말처럼, 바스크나 중동이나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참고 문헌: ‘스페인 소수 민족주의 운동의 어제와 오늘: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을 중심으로’(김원중) (다카사키 미치히로 지음, 노길호 옮김. 깊은강 펴냄) (조너선 바커 지음, 이광수 옮김. 이후 펴냄) (공진성 지음, 책세상 펴냄)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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