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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리더십, 일본은 어디로 가나

간 나오토 총리의 ‘소비세 인상’ 공약 부작용, 민주당 참의원 선거 참패… 정치적 불안정 지속될 듯
등록 2010-07-22 23:20 수정 2020-05-03 04:26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왼쪽)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 간 총리의 인기가 급속히 식자, 오자와 전 간사장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AP 연합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왼쪽)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 간 총리의 인기가 급속히 식자, 오자와 전 간사장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AP 연합

“간 나오토 총리가 자살골을 넣은 거지.”

지난 7월11일 밤, 이날 치러진 참의원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다니가키 사다카즈 일본 자민당 총재는 자민당의 압승 분위기가 뚜렷해지자 경계감을 풀고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비례대표 지지율이 20%를 밑돌 정도로 빈사 상태에 빠져 있던 자민당이 승리를 거둔 것은 자민당이 잘해서였다기보다는 간 총리의 실수가 빚어낸 반사이익임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소비세, 역대 정권의 뜨거운 감자

임기 6년의 참의원 242명 가운데 절반인 121명을 교체한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51석, 민주당은 44석을 얻었다. 선거 대상이 된 의석은 민주당이 54석으로 자민당(38석)보다 16석이 더 많았는데, 자민당이 13석을 늘린 반면 민주당은 10석이나 잃은 것이다. 이로써 민주당은 연립정권을 구성한 국민신당과 의석을 합해, 참의원 과반수에서 12석이 모자라게 됐다.

민주당의 참패를 부른 악재는 간 나오토 총리가 내놓은 ‘소비세 증세’ 공약이었다. 선거 한 달여 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전격 사퇴로 총리 자리에 오른 간 총리는 일본의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소비세 증세를 포함한 재정 재건을 약속했다. 현행 5%인 소비세율은 자민당이 공약한 10%를 참고해 증세안을 짜겠다고 했다. 물론 실제 증세는 총선(중의원 선거)을 거쳐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여론은 이미 민주당의 ‘증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국민은 불안감을 느꼈고, 내각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비세는 일본 역대 정권에 몇 번이나 저승사자가 된 바 있다. 세율 3%짜리 소비세를 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총리가 세 명이나 바뀌었다. 증세는 그것이 국가 전체로 볼 때 아무리 합리적 이유를 가졌다고 해도 큰 저항을 부르곤 한다. 한국에서도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시위대가 세무서를 불태웠는데, 이는 그해 도입한 부가가치세에 대한 저항이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지방세를 인두세로 개편하려다 폭동 사태를 빚어 결국 하야했던 역사도 있다. 간 총리는 ‘하토야마 내각과의 차이’와 ‘책임 정치’를 강조하려다, 증세의 정치적 위험성을 간과했다.

선거전이 진행될수록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졌다. 투표 사흘 전, 일본 언론들의 판세 분석 결과 민주당은 50석가량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민주당 의석은 그보다도 훨씬 적었다. 나눠먹기를 하는 2~5인 선거구와 달리, 선거 승패를 사실상 좌우하는 1인 선거구 29곳 가운데 무려 21곳에서 자민당 후보가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간 나오토 내각 지지율 가장 빨리 떨어져

민주당이 참의원에서 과반수에 크게 미달함에 따라, 정국 운영은 험난해졌다. 참의원은 총리 선임과 조약 비준, 예산안 통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반 법안에 대해 중의원과 대등한 권한을 갖는다. 중의원이 통과시킨 법률이라도 참의원이 부결시키면 법안이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중의원에서 3분의 2의 찬성으로 재가결하면 되지만, 민주당과 국민신당의 연립여당 의석은 중의원의 3분의 2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50석을 획득하며 참의원을 여소야대 정국으로 만든 뒤, 집권 자민당은 정국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민주당은 중앙은행 총재 임명 동의를 늦췄고, 한시법인 휘발유세 부과법의 시행을 연장해주지 않아 한 달간 세금 공백 사태를 빚게 했다. 자민당은 16개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돼, 중의원 3분의 2 재가결을 거쳐야 했다. 3년 뒤 선거에서 승리한 자민당은 이제 공명당·다함께당 등 보수 야당과 공조해 그때의 일을 앙갚음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이 공약한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중의원과 달리 참의원은 총리의 해산권도 미치지 않아, 121명을 다시 뽑는 3년 뒤 선거 때까지 민주당의 고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의석수가 좀 부족해도 총리 지지율이 높다면 야당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그렇지도 않다. 패자를 멀리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성은 이번 참의원 선거 뒤 여론조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간 총리의 지지율은 취임 초 최고 69%에 이르렀으나, 선거 직후 조사에선 30%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새 내각이 들어설 때마다 국민은 큰 기대를 갖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가 식어가는 현상은 최근 5개 내각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간 나오토 내각의 지지율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빨리 떨어졌다.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은 당면 정책 과제 실현의 지연, 이로 인한 경제 침체와 국민 불만 확산, 그리고 그것이 다시 정치적 리더십을 흔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져왔다. 이번에도 그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중의원 480석 가운데 306석을 갖고 있어, 다음 중의원 선거 때까지 정권은 유지할 수 있다. 총리가 중의원을 조기 해산하지 않는 한 중의원 선거는 3년 뒤인 2013년 8월 말에나 치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9월 민주당 당 대표 선거는 앞으로 3년간 민주당의 행보를 좌우하게 된다. 민주당 당 대표는 곧 총리가 되는 까닭이다.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역할에 주목

간 총리는 민주당 안에서 선거 참패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다. 자신도 “소비세 증세안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다”고 그 책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9월 당 대표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선에 실패해 총리 자리를 내준다면, ‘100일짜리 단명 총리’로서 두고두고 불명예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해도 인기 없는 총리로 험난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관심사는 민주당의 최대 실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다. 일본 현대 정치사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질 때마다 핵심에는 그가 있었다. 그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경륜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일부에선 오자와가 9월 당 대표 선거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와타나베 고조 전 중의원 부의장은 7월15일 밤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오자와가 당당하게 입후보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오자와가 총리가 되겠다고 정면 승부에 뛰어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는 총리 자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아왔다. 정치자금 문제로 강제 기소당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가 자신을 대신할 후보를 내세우고 간 총리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본은 다시 한번 ‘불안한 리더십’을 세계에 자랑하게 된다. ‘장막 뒤의 총리’ 오자와 이치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도쿄(일본)=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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