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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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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분신, 중국판 용산 참사

세계 최고의 토지개발 전성기에 벌어진 비극… 당국 “합법적인 철거에 폭력적 저항” 일축
등록 2009-12-16 17:37 수정 2020-05-03 04:25

“탐욕에 젖은 그들 한명 한명이 자신이 태어난 토지를 악성종양처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들판과 들판을 연이어 집어삼키고, 수천 에이커의 땅을 울타리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백 명의 농민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은 사기나 공갈, 협박을 통해 땅을 포기하기도 하고, 조직적으로 학대를 당하다가 결국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가엾은 농민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법원의 철거 강제집행 결정에 항의하는 한 주민이 베이징 외곽 샤먼 지역에서 홀로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CLARO CORTES IV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법원의 철거 강제집행 결정에 항의하는 한 주민이 베이징 외곽 샤먼 지역에서 홀로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CLARO CORTES IV


잘나가는 의류공장에 닥친 ‘철거 통보’

16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초기 자본주의의 전초전이었던 ‘인클로저 운동’을 묘사한 토머스 모어의 에 나오는 말이다. 인클로저 운동은 알다시피 15~16세기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양모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대지주나 영주가 자신들의 사유지를 목초지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이 그 땅에서 강제 추방당한 사건을 일컫는다. 토머스 모어는 에서 당시 사회를 “양이 사람들까지 먹어치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양이 사람을 먹어치우는’ 사회는 현재 세계 최고 토지개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21세기 중국판 인클로저 운동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13일 중국 쓰촨성 청두시 진뉴구에 있는 한 3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올해 47살의 탕푸전이라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16일 뒤인 11월29일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그의 분신 사유는 당국의 발표에 따르자면, “합법적인 철거 과정에서 (그의) 폭력적인 저항으로 빚어진 불상사”였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면서까지 ‘폭력적으로 저항’하고 싶었던 사연은 뭘까? 유가족과 친척들은 그의 분신 사유를 “폭력적인 강제 철거에 저항하다 궁지에 몰린 나머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탕푸전이 분신을 한 11월13일 새벽 5시께 30여 명의 철거반원이 탕푸전과 그의 전남편 소유의 3층짜리 건물을 철거하기 위해 몰려왔다. 당시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온 탕푸전은 가족과 친척들을 동원해 한바탕 ‘폭력적인 저항’을 하던 중 자신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물러나! 우리 앉아서 협상을 하자. 안 그러면 나 분신한다”며 철거반원들을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절규에도 아랑곳 없이 철거반원들의 구타와 폭력, 철거가 계속되자 결국 그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켜서 온몸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탕푸전이 분신으로 항거하면서까지 강제 철거를 막고자 했던 그의 3층짜리 건물은 그들 부부가 지난 10년 이상 공들여 투자하고 경영해온 의류공장이었다. 1996년 당시 쓰촨성 청두에서 의류업을 하던 탕푸전과 그의 남편은 진뉴구 산하의 한 촌 간부에게서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 촌 정부가 싼 가격으로 토지를 임대해줄 테니 투자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재산증명서도 나중에 촌 정부가 일괄적으로 처리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귀가 솔깃해진 부부는 당장 토지를 임대해 약 700만위안 이상을 투자해 그곳에 의류가공 공장을 지었다. 그 뒤 탕푸전 부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그 지역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해졌다. 현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그들을 성공한 지역 기업가로 소개했는가 하면 지방정부에서도 그들에게 모범기업가상을 주었다. 탕푸전 역시 해당 지방정부 부녀자 연합회에서 여성 자주창업 모범 기업가라는 칭호를 받았다.


현장에 있던 지방정부 관리 “계속 철거”

한때 지방의 잘나가는 기업가였던 이들 부부의 삶이 극적으로 전환된 것은 지난 2005년 해당 촌 정부에서 갑작스런 ‘철거 통지’를 받으면서부터다. 오수처리장을 짓기 위해 길을 정비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당국은 탕 부부의 건물이 합법적인 부동산증명서가 없기 때문에 불법 건물이라며 90만위안 정도의 보상밖에 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1996년 건물을 지을 당시 재산증명서 발급을 약속했던 해당 촌 정부는 그 뒤 10년이 넘도록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발급을 해주지 않은 터였다. 700만위안 이상을 건물에 투자한 부부에게 고작 90만위안이라는 보상액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 이들 부부의 삶은 성공한 기업가에서 지방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알박기’로 전락했다. 몇 차례의 협상 끝에 보상액이 200만위안 이상으로까지 올라갔지만 탕 부부는 끝까지 투자금액 전액 보상을 요구하며 철거를 거부했다. 2006년부터 탕푸전의 남편은 거리로 나와 1인시위까지 하는 등 본격적인 반철거 투쟁을 시작했고 그사이 의류사업도 거의 망하다시피 했다.

2009년 들어 도시철거관리국에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최후통첩’이 전달되었고, 지난 4월에는 철거반원과 이들 부부 간에 한 차례 철거 전쟁이 벌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에도 탕푸전은 손에 기름을 들고 분신 경고를 해서 철거반원들의 철거를 중지시켰다. 하지만 11월13일 또 한 차례 들이닥친 철거반원들은 이번에는 탕의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철거를 강행했다. 탕푸전 역시 자신의 ‘경고대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가 분신할 당시 건물 아래에서는 지방정부 관리들이 직접 분신 현장을 보고 있었음에도 ‘계속 철거’를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판 ‘용산 참사‘라고 해도 무방한 이 탕푸전 사건은 12월3일께부터 언론과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그의 분신 사진이 생생하게 보도되면서 중국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건 발생 당시 한 목격자의 휴대전화에 찍힌 그의 분신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면서 자칫 흔한 ‘불상사’쯤으로 묻힐 뻔했던 사건은 지금 중국의 철거 관련 ‘악법’을 폐지시킬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탕푸전 사건이 일파만파로 민심에 영향을 미치자 중앙정부에서도 서둘러 관련 대책을 지시하고 해당 지역 도시관리국 간부를 전격 면직했다.

철거·개발·뒷돈의 데자뷰

사건이 터진 뒤, 베이징대 법대 교수 5명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사유재산에 대한 불법적 철거를 허용하는 ‘도시철거조례’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거나 대폭 수정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보냈다. 중국 국무원 및 관련 기관에서도 지금 이 법의 폐지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철거관련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2007년 정식 발효된 ‘물권법’에서 보장하는 ‘사유재산 보호’ 조항과 충돌을 빚기 때문이다. 물권법에 따르자면 개인이 취득한 사유재산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보호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물권법 규정과는 달리, 중국의 철거 관련 조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각 지방정부가 해당 토지의 철거를 ‘합법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공공의 이익’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여기에다 소유권과 사용권이 분리돼 있는 중국의 토지 관련 법률의 모순은 지방정부가 임의대로 토지를 처분하는 ‘횡포’를 막을 수 없다. 언제든지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개인의 사유재산을 협박이나 공갈, 사기 등으로 싼값에 강탈해 비싼 시장가격으로 개발업자에 팔아치우면 그 차액만으로도 지방관료의 뒷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도 남는 것이다. 중국 주간지 은 지난 12월3일치 기사에서 “운동 경기의 심판이 돼야 할 지방정부가 직접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철거로 인해 얻는) 막대한 이익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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