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년, 그 시작을 알렸던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지난해 파산을 발표한 9월14일에 맞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뉴욕으로 날아갔다. 맨해튼 중심가 월스트리트의 페더럴홀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경제가 평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해서 벌써부터 맘을 놔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따 “위기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이를 무시하려 든다면, 금융산업뿐 아니라 미국 전체가 다시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 미 금융가를 휩쓴 ‘공황’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미 가계가 잃어버린 자산의 총가치가 약 5조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새삼 들춰냈다. 금융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하면서, 지난 1년 미국인들의 삶도 송두리째 무너져내렸다. 막대한 예산을 구제금융에 쏟아부었지만, 실업률은 두 자릿수에 다가서 있다. 미 전역에서 주택 가압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 모두에게 대공황에 견줄 만한 엄혹한 위기의 세월이었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 거대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만 빼고 말이다.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436배금융위기의 공포가 삽시간에 전세계를 휩쓴 결정적인 이유는 위기의 ‘깊이’를 알 수 없었던 탓이 크다. 개별 금융사가 보유한 부실자산의 총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 불확실성이 위기를 키웠다. 미 연방정부가 이른바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을 도입해 적극적인 구제조치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8월 초를 기준으로 650개 업체에 모두 4878억달러의 TARP 자금이 지원됐다. 이 가운데 금융위기의 ‘주범’ 격인 20대 거대 금융기업에 지원된 예산은 모두 2830억달러, 업체별로 최소 20억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받은 셈이다. 자구 노력은 필수였다. 구제금융을 받은 20대 거대 금융사들에서 해고된 이들만도 2008년 1월1일 이후 최근까지 약 16만 명에 이른단다. 그럼에도 이들 업체의 CEO들은 ‘추위’ 속에 ‘곁불’을 쬐느라 분주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PS)가 지난 9월10일 펴낸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미 20대 금융기업 CEO들의 평균연봉은 1378만466달러에 이른다. IPS는 보고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연봉이 40만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약 34배나 많은 액수”라며 “특히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임금과 따져보면 무려 436배나 많다”고 지적했다. 최고액 연봉자 역시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20대 금융사에서 배출됐다. IPS는 “모두 4294만6801달러를 챙겨 2008년 미 연봉왕에 오른 인물은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 로이드 블랭크페인”이라며 “이처럼 터무니없는 보상을 받기 때문에 금융기업 CEO들이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 모두를 다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뿐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와 함께 세계 금융산업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영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간 은 9월14일치에서 “금융위기 속에서도 영국 CEO들의 평균임금은 평균 10% 이상 상승했으며, 100대 상장 기업 CEO들의 연봉을 모두 합하면 10억파운드를 넘어선다”고 전했다. 임금 동결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잇따랐음에도 CEO들이 챙겨가는 돈 보따리는 되레 커진 게다. 같은 기간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3.1%에 그쳤단다.
거대 금융사들 되레 몸집 불려특히 다국적기업 CEO들의 연봉 상승률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5년 전만 해도 ‘불과’ 7천만파운드 수준에 그쳤던 10대 거대 기업 CEO의 연봉 총액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억4천만파운드로 두 배까지 뛰었고, 금융위기가 불을 뿜은 지난해에도 1억7천만파운드까지 ‘역주’를 멈추지 않았다. 모두의 위기가 ‘그들’에겐 기회였다. 위기는, 그래서 끝나지 않았다. 위기의 뿌리가 굵어졌으니, 그 과실의 독성은 더욱 강해졌을 터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9월14일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음에도 미국은 금융 시스템의 고질적인 병폐를 전혀 고치지 못했다. 미국을 포함해 상당수 나라에서 ‘대마불사론’에 힘입어 거대 금융사들이 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몸집을 불렸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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