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북 미사일’ 발사 뒤 대화 방식은

백악관, ‘제재’ 표현 안써… 안보리 논의 뒤 북-미 접촉 재개할 듯
등록 2009-04-07 11:36 수정 2020-05-03 04:25

4월3일 오후 현재까지 북한은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연료 주입 등 로켓(인공위성 또는 미사일) 발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쪽은 ‘국제사회의 엄정하고 단합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쪽은 부쩍 ‘자제’란 낱말을 자주 입에 올리고 있다. 일본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추가 제재 결의안’에 집중하고 있다. 모두의 관심은 이미 ‘발사 이후’에 모아져 있다.
지난 2월24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담화문을 내어 ‘인공위성 발사’를 공언한 이후 조성된 ‘미사일 정국’은 대체로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여간 모양새다. 남한과 일본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는 더없이 무르익었다. ‘발사 이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것이란 점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어 보인다. 남은 문제는 대화의 시점과 방식이다. 더듬어보자.

지난 3월29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 있는 북한 미사일 기지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 로켓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미 ‘발시 이후’로 옮겨간 모양새다. 사진 REUTERS

지난 3월29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 있는 북한 미사일 기지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 로켓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미 ‘발시 이후’로 옮겨간 모양새다. 사진 REUTERS

제재 결의안 마련돼도 통과 힘들어

4월2일 영국 런던에서 30분 남짓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내놓은 ‘정상회담 서면 브리핑’ 자료에서 “두 정상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분명 ‘제재 결의안’이라고 했다. 뜻밖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간 ‘(대북) 제재’란 표현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그간 미사일 발사 문제를 유엔안보리에서 논의만 해도 6자회담에 불참하겠다고 을러대왔다. 모종의 변화가 있는 건가?

흥미로운 건 백악관 쪽이 같은 날 내놓은 설명에선 ‘제재’란 낱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자료를 보면, 브리핑에 나선 ‘행정부 고위 인사’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푼다는 미국의 변함없는 정책 목표를 강조했다. 6자회담의 유효성도 역설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 위반이란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유엔 차원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한-미 간에 긴밀히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한쪽이 ‘과잉’ 또는 ‘과소해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으로선 반발할 테지만, ‘발사 이후’ 국면에서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논의하는 건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당장 일본이 문제다. 최악의 지지율에 허덕이는 아소 다로 총리 정부는 ‘미사일 정국’을 적극 활용해왔다. 위협을 과도하게 부풀린, 말하자면 일본판 ‘북풍’인 셈이다. ‘발사 이후’에도 모종의 ‘뒷감당’을 할 수밖에 없는 사세다. 미 국무부 쪽도 “미사일이건 인공위성이건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것”이란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다만 안보리의 논의 결과가 ‘대북 제재 결의안’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제재’를 하게 되면, 냉각기만 길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부권을 쥔 중국이 ‘자제’를 말하고 있는 형편이다. 설령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마련된다 해도,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의 행태를 비판하는 안보리 의장 성명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북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꾸짖으면서도, 대화의 동력(모멘텀)은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인도적 석방-인도적 지원 ‘딜’ 가능성

끊겼던 대화의 끈을 이으려면 막힌 물꼬부터 터야 한다. 불법 월경 등의 혐의로 지난 3월17일부터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미 인터넷 방송 소속 여기자 2명의 신병처리 문제가 그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도적 차원’의 문제가 만남의 명분으로 최적이기 때문이다. 북이 ‘인도적 차원’에서 여기자들을 석방하면, 미국도 ‘인도적 식량지원’으로 화답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선 ‘만남’이 필요하다. 전례에 비춰 ‘고위급 인사’가 나설 것이란 분석이 많다. 벌써부터 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의 이름이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함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단 물꼬가 트이면 ‘의제’가 중요해진다. 북-미 대화의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지난 3월23일 오전 미 워싱턴의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아시아 2009: 의회의 시각’이란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재단이 홈페이지에 올린 토론회 동영상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한반도 정책 책임자로 일했던 프랭크 자누치 상원 외교위 민주당 전문위원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대북 안전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북한 경제 정상화 △대북 인도·경제 지원 등 크게 네 부문으로 나눠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네 가지를 모두 얻어내지 않고는 북한이 핵 폐기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란 게다. 자누치 전문위원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해서 미 의회와 행정부가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욕구를 느끼게 될 테지만, 과민하게 반응해선 안 된다. 시점이 언제가 됐든 대북 협상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과민반응은 대화의 공백기만 길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응이 없을 순 없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북한을 뺀 나머지 5개국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협상이 곧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아니다. 되레 ‘좋은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이다.”

4월8일 개막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3기 체제의 핵심은 ‘경제’로 모아질 터다. 막을 내린 2기 체제에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자위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의 부활은 북-미 관계 정상화 없인 불가능하다. 북쪽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어느 때보다 대화에 적극적일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서둘러 ‘대북 창구’를 구축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부에선 “보즈워스 특별대표와 성김 6자회담 수석대표로 창구가 이원화해 혼란이 생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워싱턴 정가 안팎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자누치 전문위원도 헤리티지재단 토론회에서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가 했던 역할을 맡게 된 것이고, 성김 대사는 그간 수행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일 뿐”이라며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총괄책임질 것이며, 성김 수석대표는 2인자”라고 잘라 말했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의 당면 과제는 북한의 위협이 아니라 무너진 미국 경제다. 보즈워스 특별대표에게 대북 협상에서 상당한 ‘권한’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협상의 진척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꽃게가 미국 발목 물어 꼬일 수도

‘돌발 변수’는 없을까? 역시 꽃게잡이철이 다가온 서해다.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는 한편 남한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이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경우, 자칫 미국의 발걸음마저 묶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은 ‘동맹국’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 인수위 정보팀장을 지낸 아서 브라운 전 미 중앙정보국 동아시아지부장의 최근 발언을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최근 방한해 등 일부 언론과 만나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국책연구소의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를 두고 “해석에 따라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의 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미국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란 경고로도 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다. ‘통미봉남’(通美封南)에 이어 최근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국 따돌림)이란 말이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니 ‘발사 이후’ 가장 바빠야 할 것은 우리 정부다. ‘기다리는 것’은 결코 정책이 될 수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