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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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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세계의 풍경] 키보드 두드리는 블랙베리족들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미국 사무직 종사자의 스마트폰 열풍이 일반인에게로… 일반전화 사용률 높은 상황 곧 역전될 듯

▣ 에임스(미국)=글·사진 김수현 전문위원 soohyunkim5@gmail.com

미 중부 아이오와에 사는 케시(18)는 얼마 전 동부 사립 명문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케시는 기뻐하는 아버지한테 ‘블랙베리’(BlackBerry)폰을 입학 선물로 사달라고 조를 작정이다. 조만간 비행기로 5시간 가야 하는 캠퍼스 타운에서 살게 될 그는 화면이 넓고 문자 입력이 편리한 블랙베리폰으로 친구들과 전자우편을 주고받거나 채팅을 하고, 미국판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닷컴’에 접속해 블로깅을 하려고 한다. 새로 마련한 애플 노트북 ‘맥북’과 블랙베리폰 정도면 세련된 ‘필수 디지털 액세서리’는 대충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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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부터 미 대도시 사무직 종사자 사이에서 불기 시작한 스마트폰 열풍이 최근 더욱 거세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동전화와 개인휴대용단말기(PDA)를 결합한 ‘전화기 같은 컴퓨터’이자 ‘컴퓨터 같은 전화기’로, 캐나다의 PDA 제조업체 ‘리서치인모션’이 내놓은 ‘블랙베리’가 대표적이다. ‘윈도 모바일’ 같은 운영체제를 탑재해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동한다. 1개의 숫자판에 영문 세 글자씩 배정된 기존 자판 입력 체계 대신 컴퓨터 키보드와 동일한 키보드를 달았다.

‘푸싱 이메일’로 바로바로 전자우편 확인

미 화이트칼라들의 ‘블랙베리 증후군’은 애초 이 전화에 탑재된 ‘푸싱 이메일’ 기능에서 비롯됐다. 야후 등 포털 전자우편이든 회사 전자우편이든 일단 등록만 해놓으면 전화기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전자우편이 도착하면 곧 이를 알려준다. 외근 중에 쓴 전자우편 답장은 회사에 있는 자기 컴퓨터에도 자동으로 남는다.

이미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목소리를 내는 대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동부와 서부 연안 대도시의 공항과 통근 전철엔 엄지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조작하는 ‘블랙베리족’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500달러에 이르는 단말기 가격과 매달 30달러에 이르는 인터넷 사용료 때문에 일반인들은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쟁 모델이 늘고 100달러 미만짜리 단말기가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애플이 내놓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아이폰’이 요란하게 스마트폰 시장에 합류하면서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지난해 말 블랙베리는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40%를 점유했고, 아이폰은 17.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디지털 기능이 휴대전화 속으로

문자 서비스 마케팅도 보편화하고 있다.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인 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 은 지난 3월부터 5월 말까지 진행된 ‘시즌7 경연대회’에서 시청자 투표로 7800만 통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동전화업체 ‘AT&T’ 가입자들은 투표를 의미하는 ‘VOTE’라는 문자를 출연 후보별로 지정된 4자리 번호에 전송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 4월 미국 내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도 ‘텍스트 메시지 쇼핑’을 개시했다. 물건의 고유번호를 262966(전화 키패드 상에서 ‘amazon’을 의미한다)번으로 보내면 된다.

미 노동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01년만 해도 미국인 한 사람의 연간 휴대전화 이용료는 일반전화 비용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6년 휴대전화 이용료는 524달러로, 일반전화 비용인 542달러에 가까워졌다. 뉴스·영화·스포츠 등 각종 콘텐츠들이 텔레비전 상자 안에 모여들었듯, 각종 디지털 기능들이 차근차근 휴대전화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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