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엔본부의 6배, 최대 규모인 주중 대사관의 10배… “이렇게 크면서 철저히 고립된 공관은 없었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파라오의 화려한 궁전이라도 재현하려는 걸까? 바벨의 무모한 첨탑이라도 다시 쌓고 싶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한때 중동 전역에 고립된 채 웅크리고 있던 ‘십자군의 성채’라도 흉내내려던 걸까? 메소포타미아를 가르는 티그리스의 푸른 물줄기 곁에서 ‘제국의 상징’이 마침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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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바티칸의 면적과 견줄 만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의 ‘안전지대’(그린존)에서 3년여 공사 끝에 새 미국 대사관이 마침내 준공을 마쳤다. 미 국무부는 “5월 안에 이전·입주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해외 공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대사관 운영비만도 한 해 1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새 대사관이 들어선 터는 한때 ‘바그다디’(바그다드 시민)들의 쉼터이자 강변공원이었던 땅이다. 해질 녘 강가로 나온 이라크인들은 천년의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웠을 게다. 혹은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거푸 차를 우려냈을 터다. 사담 후세인이 철권을 휘두르던 때도 그 땅은 이라크인들의 것이었다. 아르바타시 타무즈 다리의 서쪽, 북쪽으로는 알킨디 거리와 맞닿은 그곳이 ‘제한구역’이 된 것은 2003년 3월 이후다. 후세인의 ‘공화국 궁전’과 그린존 일대에 흩어져서 생활해온 미국인들이 이제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게 됐다.
2003년 3월 침공 전에도 바그다드에 미국 대사관이 있기는 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난해 10월10일 내놓은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현황보고서’를 보자. 지난 1979년 7월17일 사담 후세인 집권 이후 제1차 걸프전이 발발하기 나흘 전인 1991년 1월12일까지 미국은 바그다드에서 대사관을 운영했다. 당시 대사를 포함한 근무 인원은 모두 50명 남짓이었고, 연간 예산은 약 350만달러 수준이었단다.
미국이 바그다드에 다시 대사관을 개설한 건 침공 1년3개월여 만인 2004년 6월28일이다. 미 점령 당국이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이양한 직후였다. 의회조사국은 국무부 자료를 따 “(지난해 10월) 현재 국무·국방·농무·상무부 등 12개 미 연방 정부기관 파견자를 포함해 약 1천 명의 미국인 직원이 바그다드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다”며 “여기에 현지에서 직접 채용한 직원만도 200~300명에 이르는 등 바그다드 대사관은 최대 규모의 해외 공관”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새 건물과 함께 그 규모와 위세는 더욱 커지게 됐다.
미 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로 새 대사관의 설계와 건축 관련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료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국제시설관리협회(IFMA)가 내놓은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현황정보’를 보자. 부지 면적은 무려 42만880㎡, 약 12만7315평에 이른단다. 이는 뉴욕 소재 유엔본부의 6배, 지금까지 미국의 해외 공관 중 최대 규모로 꼽혀온 중국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는 4월18일치 기사에서 “새 이라크 주재 대사관은 미 국방부 청사의 4배에 이르며, 로마 바티칸의 면적과 견줄 만한 수준”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너른 땅에 들어선 건물만도 21개동으로, 평균 3500명에서 최대 75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대사관 신축공사를 맡았던 ‘퍼스트쿠웨이티제너럴트레이딩’이 쿠웨이트에서 실어나른 건축자재만 트럭으로 1만1천여 대 분량이고 바그다드로 공수된 물량도 비행기 252대 분량에 달했다는 게 시설관리협회 쪽의 설명이다. 대사를 포함한 고위직 외교관들은 별도의 숙소를 사용하지만, 하급직 관료들은 6개동으로 지어진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단다. 이들 건물엔 모두 619개 원룸이 들어섰다.
시공사, ‘과다 청구’로 질타받는 곳과 긴밀[%%IMAGE5%%]
대사관 부지 안엔 ‘미국’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우선 자체 상수도망과 하수처리 시설을 갖췄고, 전력 조달을 위한 발전소도 건설됐다. 업무용 외교공관 2동 외에도 체육관과 극장, 수영장을 포함한 각종 편의시설이 빼곡하다. 여기에 패스트푸드점과 식당, 미용실과 쇼핑몰까지 들어선단다. 테니스코트와 학교, 사교활동을 위한 ‘아메리칸 클럽’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았다.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급이 가능하다”는 말도 괜한 소리는 아닌 게다.
애초 새 대사관은 지난해 7월 완공이 목표였다. 하지만 전체 공사 기간의 3분의 1에 이르는 232일 동안 ‘안전상의 이유’로 자재 공급이 중단됐다. 공사현장이 직접 무장공세의 표적이 된 것도 모두 열두 차례에 이른다. 여기에 잦은 설계변경과 부실공사 등으로 착공에서 준공까지 걸린 기간만 2005년 6월부터 올 4월까지 33개월에 이른다. 9개월여 준공이 지연되는 사이 5억9200만달러로 추정했던 총 공사비는 10억44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우연찮게도, 공사를 따낸 ‘퍼스트쿠웨이티’는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잇따른 ‘비용 과다 청구’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단다.
“적어도 전통적 의미의 대사관은 현지인 공동체와의 접촉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파견된 외교관들은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고, 지역 시장에서 쇼핑을 했고, 주변 세탁소에 양복을 맡겼다. 현지 지도급 인물들과 두루 교분을 쌓았고, 파견국 시민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게 관례였다.”
제인 뢰플러 미 메릴랜드대학 교수(건축사)는 지난해 9·10월호 외교·안보 전문 격월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외교는 리모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선린관계를 쌓기 위해선 직접적인 접촉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에 들어서는 순간, 현지에서 근무하는 미국인들은 외부로 나갈 이유가 아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이라크 주재 미 외교관들은 명목상 현지에 파견돼 있지만, 사실상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다. 뢰플러 교수는 “이렇게 크고 비용을 많이 들였으면서도, 철저히 고립된 공관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은 외교공관이 아닌 ‘최전선의 전초기지’로 보인다.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거나 마찬가지
“이라크인들 시선에선 한마디로 점령의 상징으로 보일 뿐이다.” 는 4월24일치에서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새 미국 대사관을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이라크인들의 반응을 전했다. 신문은 ‘아누아르’라고만 이름을 밝힌 이라크 대학원생이 “새 대사관의 엄청난 규모로 볼 때,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 전역에서 계획한 일들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후세인 시절에도 거대한 ‘성채’가 지어졌다. 바그다드는 물론 이라크 전역에 산재했던 ‘대통령궁’은 무소불위한 절대권력의 상징이었고, 두려움과 터부의 대상이었다. 바그다드대학 정치학과 압둘 자바르 아메드 교수는 와 한 인터뷰에서 “이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세력이 쌓아올린 성채를 목도하고 있다”며 “마치 ‘조심해라. 후세인 정권도 붕괴시켰으니, 다른 정권도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라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 오만과 두려움의 위태로운 동거가 새삼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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