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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혁명의 기억] 소모사를 위해 싸운 한국 병사가 있다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혁명군 전투교관 출신 플로레스의 증언 “1970년대 니카라과 전선에서 20명가량의 주검을 목격했다”

▣ 마나과(니카라과)=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willofangels@yahoo.co.kr

“알고 있나? 한국인 병사(한국 출신 용병)들도 나카라과에서 소모사 정권을 위해 싸웠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1970년대 산디니스타 혁명군의 전투교관으로서 게릴라를 이끌고 수많은 전선을 누볐던 루이스 플로레스(58)의 말이라곤 해도 너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선선히 믿기지 않았다. 무려 30여 년 전에 한국인 병사들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남의 나라 정부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니….

그 시절 한국 출신 용병이 있기나 했을까? 설령 용병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이 왜 니카라과까지 날아와 소모사 독재정권을 지키려 했을까? 믿지 못하는 눈치를 알아챘는지 플로레스가 “1970년대 중반 남부 국경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던 때 분명 한국인 병사들의 주검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못을 박았다.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요약한다.

한국인 용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

=니카라과 남부의 전투현장에서 황인종이면서 체구가 작은 주검을 봤다. 소모사 정권과 계약을 맺어 돈을 받고 니카라과 민중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니카라과로 온 훈련이 잘된 용병들이었다. 처음엔 니카라과 병사로 알았다. 하지만 체구가 니카라과 사람들보다 작았다. 그들은 ‘작은 어린이’라고 불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성년 남성들이었다. 내가 직접 그들의 주검을 확인했다. 피부색과 체구, 신분증 등을 모두 보고 나서야, 베트남과 한국(남한)에서 온 용병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당시 남부전선 전투에 참여했던 이들 상당수가 베트남과 한국인 용병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용병들은 전선에서 어떤 일을 했나?

=소모사 정권의 병사들과 함께 작은 규모의 팀을 구성해 산으로 잠입한 뒤 우리가 설치해놓은 통신시설을 끊는 일을 주로 했다. 전투가 끝난 뒤 지하 벙커에서 총을 껴안은 채 숨져 있는 용병들의 주검을 본 일이 있는데, 한 20명가량 됐다. 용병들은 저격수도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그들과 전투를 벌이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되곤 했다. 작은 몸집에 날쌘 장점을 이용해 주로 치고 빠지는 식의 전투를 벌이면서, 우리 쪽 방어선 깊숙이까지 침입하기도 했다.

한국·베트남 출신 용병들을 목격했던 상황을 자세히 말해달라.

=지하 벙커에서 죽어 있는 그들을 발견했다. 발견된 주검을 모두 옮겼고, 그들이 남긴 장비와 무기류를 수거했다. 당시엔 물자가 귀했기 때문에 전투 뒤 적에게서 빼앗은 보급품은 모두 재활용을 했는데, 그들이 입고 있던 군복이 너무 작아서 입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연령대는 주로 20~30대로 보였는데, 항복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웠다.

몇 군데서 한국인 용병을 봤나? 다른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나?

=내가 목격한 것은 20명 남짓 주검으로 발견된 이들이 전부다. 니카라과 남부 국경지대인 타이야강 부근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들이 활동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그들을 산 채로 잡을 수는 없었다. 한국·베트남 용병들은 주로 M-16 소총이나 (이스라엘제) 갈릴 소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소모사 병사들과는 금방 구별됐다.

그들 외에 다른 나라에서 온 용병들은 없었나?

=한국과 베트남에서 온 용병들만 보였고, 미국 출신 용병들은 전선에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미국 출신 용병들은 최전선에 배치되지 않았다. 주로 후방에서 정보활동이나 병참지원 등의 일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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