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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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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웃었다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클린턴 후보가 11차례 전패 후 얻은 ‘미니 슈퍼 화요일’ 승리, 적어도 4월22일까지는 후보 확정 기다려야 할 듯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 달을 하루같이 기다렸다. 마침내 다시 ‘색종이’가 뿌려졌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이제야 몸이 풀리고 있다”던 전날의 호언장담을 보란 듯이 현실로 바꿔놓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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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요 주에서 뚜렷한 강세를 보여

버몬트·로드아일랜드·오하이오·텍사스 4개 주에서 미 민주·공화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과 당원대회가 치러진 3월4일 ‘미니 슈퍼 화요일’, 그 주인공은 단연 민주당 클린턴 후보였다. 이날 4개 주를 휩쓸며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포효도 클린턴 후보의 ‘재기’에 열광하는 언론의 관심을 이기지 못했다.

2월 한 달은 클린턴 후보에게 ‘악몽’이었다. 2월5일 ‘슈퍼 화요일’ 이후 치러진 11차례 예비선거와 당원대회에서 전패를 기록한 그는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었다.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 후보의 연전연승은 ‘대세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미니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대의원이 많은 텍사스나 오하이오주 둘 중 한 곳에서만 패배해도 경선 포기를 선언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무성했던 터다.

위기였기에, 그의 ‘저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로드아일랜드·텍사스·오하이오주 세 곳에서 승리한 그는 버몬트주를 챙기는 데 그친 오바마 후보의 연승 행진을 차단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클린턴 후보는 이날 밤 출구조사가 발표된 직후 〈CNN방송〉 등이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미국은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내 선거운동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든 공화당 후보든 오하이오주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본선에서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뉴욕-캘리포니아-뉴저지-매사추세츠-오하이오-텍사스….’ 지금까지 클린턴 후보가 오바마 후보를 압도한 지역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유권자 수가 많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주에서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곧장 클린턴 후보가 오바마 후보에 비해 ‘본선 경쟁력’에서 앞선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클린턴 후보의 승리, 그러니까 오바마 후보의 패인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두 가지다. 열세에 몰린 클린턴 후보의 공세적·네거티브 선거전략이 들어맞았다는 게 첫 번째 설명이라면, 오바마 후보의 본선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해 호의적이기만 했던 언론이 ‘검증의 날’을 벼리기 시작한 탓이란 게 두 번째 지적이다. 실제로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선 시카고의 부동산 개발업자 토니 레즈코와 오바마 후보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깨끗함’을 내세운 오바마 후보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백인 유권자 표 대거 탈환

미국 경제의 위기 증후 역시 ‘검증되지 않은’ 오바마 후보에게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는 3월4일 인터넷판에서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자 10명 가운데 8명은 국제교역의 증대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보다 일자리를 잃게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경제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며 “특히 응답자 4분의 3이 가계경제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클린턴 후보의 ‘노련미’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전문 인터넷매체 가 3월5일 내놓은 분석도 흥미롭다. 이 매체는 “출구조사 결과, 오하이오주에서 오바마 후보가 최근 잠식해온 백인 유권자 표를 클린턴 후보가 대거 탈환했다”며 “특히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클린턴 후보 쪽으로 기울었으며, 그의 경제정책에 공감한 생산직 노동자가 폭넓게 지지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에디슨미디어’ 등이 내놓은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오하이오주에선 백인 여성의 65%, 백인 남성의 55%가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유권자 10명 중 6명이 그를 지지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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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월19일 예비선거를 치른 백인 유권자가 많은 위스콘신주에선 오바마 후보가 백인 유권자 60%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오하이오주 흑인 유권자 90%가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지만, 수적으로 경쟁이 되지 않았던 게다. 한편 오바마 후보가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버몬트주에선 유권자의 65%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한 반면, 클린턴 후보가 승리한 오하이오주에선 유권자의 40%만이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니 슈퍼 화요일’ 승리로 클린턴 후보가 ‘재기’의 발판은 마련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바마 후보를 압도하기 시작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확보한 대의원 규모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날 경선 전까지 오바마 후보가 1386명, 클린턴 후보가 1276명의 대의원을 확보한 상태였다. 3월4일 경선 결과 클린턴 후보는 △오하이오주 75명 △로드아일랜드주 13명 △텍사스주 65명 △버몬트주 6명 등 모두 159명의 대의원을 추가했다.

그럼 오바마 후보는 어떨까? 3개 주에서 패배했음에도 오바마 후보는 이날 경선에서 모두 144명의 대의원을 추가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오하이오주 66명 △로드아일랜드주 8명 △텍사스주 61명 △버몬트주 9명 등이다. 승자가 모든 대의원을 독식하는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에선 지역구별 지지율에 따라 대의원을 분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텍사스주의 경우 모든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예비선거와 당원만 투표가 가능한 당원대회를 동시에 치른다. 텍사스주 예비선거에선 클린턴 후보가 이겼지만, 당원대회에서 오바마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결국 텍사스주 경선에서 ‘승자’인 클린턴 후보와 ‘패자’인 오바마 후보가 확보한 대의원 수 차이는 고작 4명에 그쳤다.

그러니 ‘미니 슈퍼 화요일’을 거치며 클린턴 후보는 15명의 대의원을 더 얻는 데 그친 게다. 오바마 후보가 3월4일 밤 “경선 판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 것도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는 3월5일 현재까지 오바마 후보가 1458명, 클린턴 후보가 1370명의 대의원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했다. 최종 후보로 확정되기 위해선 2025명의 대의원이 필요하다.

공화당은 본격 대선 행보 시작

“백악관을 향한 경쟁은 오늘 밤 시작됐다.” 3월4일 밤 유일한 경쟁자였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주 주지사의 경선 포기 선언과 함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직후 매케인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튿날인 3월5일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나란히 서 현직 대통령의 지지 선언을 받아내기도 했다. 클린턴·오바마 두 민주당 후보가 ‘집안 싸움’으로 체력을 낭비하는 사이, 매케인 후보는 본격 대선 행보를 시작한 게다. 출발이 이른 건 분명 강점일 터다.

그렇다고 매케인 후보가 마냥 즐거워할 일도 아니다. 민주당 경선이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쳐나가는 동안 언론의 초점은 단연 클린턴 후보와 오바마 후보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매케인 후보는 이미 ‘상수’가 된 탓이다. 3월4일 밤 여론의 관심이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매케인 후보가 아니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적어도 오는 4월22일 치러지는 펜실베이니아주 경선(대의원 158명) 때까진 정해지지 않을 터다. 민주당 두 후보가 ‘네거티브 공세’의 이전투구를 벌이지 않는다면, 매케인 후보로선 되레 기다림이 지루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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