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그라탱과 함께 벨기에의 대표 홍합 요리… 의외로 현지인들은 홍합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
▣ 브뤼셀(벨기에)=글·사진 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벨기에인에게 “당신들의 대표적인 음식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가정이긴 하지만,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를테면 ‘카르보나드 플라망’(삶은 쇠고기에 플라망 소스를 얹은 것), ‘볼오방’(삶은 닭가슴살과 페이스트리에 크림소스를 얹은 것), ‘스툼프’(으깬 감자 요리), ‘워터주이’(삶은 닭고기 요리), ‘아르덴식 샤커테리’(벨기에 남부 아르덴에서 유래된 훈제 소시지와 베이컨이 주가 되는 요리), ‘쉬콩 그라탱’(작은 배추에 베이컨을 말아 치즈와 함께 오븐에 구운 것) 등등.
160년 전통의 ‘세즈 레옹’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낀 그다지 특색 없을 것 같은 이 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요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갖가지 대답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 우리나라 사람에게 물어보자. “대표적인 벨기에 음식이 무엇일까요?” 벨기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그 대답은 이럴 것이다. “홍합 요리!”
사실 유럽에서 홍합 요리는 벨기에만의 것은 아니다. 홍합 요리는 프랑스 북부에서부터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과 네덜란드 지역까지 해안을 중심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는 매년 9월이면 홍합 축제를 열고 식당 앞에 홍합 껍데기를 쌓아놓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벨기에 홍합 요리 못지않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에 갖가지 해물을 넣은 소스를 얹어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홍합은 중요한 부재료가 된다.
그렇다면 벨기에 홍합 요리는 왜 유난히 유명하게 됐을까? 무엇보다 오랜 전통을 가진 홍합 전문점이 여전히 많이 건재해 있다는 데 이유가 있다. 특히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홍합 요리 전문점 ‘세즈 레옹’은 그 전통이 무려 160년에 이른다. 일부 프랑스 어학 교재에는 이 식당을 무대로 한 회화 내용이 담겨져 있고,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도 같은 이름의 식당이 있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이 식당의 원조가 프랑스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벨기에 홍합의 대명사가 된 세즈 레옹 본점은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옆 먹자골목에 있다. 허름한 건물 두 채를 터서 만든 이곳은 1893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사한 뒤 100년이 넘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사업이 잘돼서인지 설립자 레옹 발랑케르의 후손이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레옹의 5대손이자 집안의 제일 큰형인 폴은 주방의 총책임자로 있고, 그의 막내동생인 루디는 경영을 총괄한다. 폴은 벌써 40년 넘게 주방을 지키고 있는데, 주인이 직접 주방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집의 음식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폴은 이곳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홍합의 양은 평균 1t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람당 1kg씩 먹는다고 해도 매일 1천 명이 먹는 엄청난 양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벨기에에 출장을 온 직장인들은 이곳에서 접대를 받은 경험이 많아서, 또 관광객은 여행 가이드가 제일 많이 추천하는 맛집이 바로 이곳이어서 그렇다. 최근에는 한국 손님들의 흐름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인들은 주로 출장을 온 비즈니스맨들이었지만, 요즘에는 맛기행에 나선 젊은 여행객이 많다고 이곳의 웨이터는 귀띔한다.
식사 전 달고 독한 포도주, 식사 중 독한 맥주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홍합은 주로 네덜란드의 질랜드라는 지역에서 들여온다. 홍합의 제철은 지역마다 다소 다르겠지만 9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로 알려져 있는데, 벨기에에서는 7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먹는 것을 ‘제철 홍합’으로 친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당국이 생홍합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프랑스·이탈리아·노르웨이 등에서 들여오는 것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네덜란드 것이 알도 굵고 맛도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벨기에식 홍합 요리는 몇 가지나 될까? 식당마다 다르겠지만, 전문점에선 대개 14~15가지를 홍합 메뉴로 제공한다. 하지만 조리 방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홍합 요리의 대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홍합찜’이다. 프랑스어로 ‘카세롤’이라 불리는 홍합 전용 냄비에 1kg 정도의 홍합을 넣고 셀러리·파슬리·양파·버터·포도주 등을 적당히 혼합해 찌는데,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양이 워낙 많아 ‘양으로 승부하는 이’에게 제격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국물이 매우 적고 짜고 느끼해서 우리가 기대하는 뜨끈하고 개운한 국물 맛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홍합 그라탱’이다. 치즈와 마늘이 주양념인데, 특징이라면 달팽이 요리에 이용되는 소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홍합찜에 비해 양이 매우 적어서, 식사보다는 여럿이 나눠 먹는 요리로 적당하다. 이미 카세롤을 여러 번 먹어본 미식가라면 조금 잘난 척하며 주문해볼 수 있는 메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홍합회’(프랑스어로는 ‘물 파켓 크루’라고 부른다)를 꼽을 수 있다. 마요르 소스(플랑드르 전통 소스)와 레몬이 함께 제공되는데, 사실 별미라기보다는 ‘홍합도 회로 먹을 수 있구나’ 하는 정도의 의미로 먹으면 그다지 실망스럽지는 않다.
어떤 홍합 요리를 주문하든 벨기에인들이 사랑하는 튀긴 감자가 함께 제공되고, 주문자의 식성에 따라 포도주나 맥주를 곁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홍합 요리에 첨가되는 소스들이 워낙 느끼한데다 튀긴 감자까지 함께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한 경우가 많다. 특히 밥과 고추장이 없으면 안 되는 여행객은 주의를 해야 한다. 이럴 때는 식사 전에 달고 독한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식사 중에는 독한 맥주를 곁들이는 것이 소화에 도움이 된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벨기에가 홍합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지인들은 홍합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벨기에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벨기에인 집주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신도 홍합 요리를 자주 해먹느냐?“ 그러자 집주인은 “당신 같으면 손질하기 까다롭고, 느끼한 국물에, 쓰레기 잔뜩 나오는 홍합을 자주 해먹겠소?”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질 까다롭고, 쓰레기 잔뜩 나오고…
그래서인지 벨기에인들은 홍합 요리를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도 유난히 홍합을 많이 먹는 날이 있다. 바로 금요일 저녁이다. 가톨릭 전통에 따라 금요일에는 육류를 자제하는 대신 저렴하고 푸짐한 홍합을 자주 먹게 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금요일 저녁,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동네 식당에 가보면 홍합을 먹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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