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저항세력과 연루” 거론된 지난해 모술 사건, 인터넷 매체에서 뜻밖의 사실 밝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해 5월 한 달 동안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병사는 무려 126명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미군 당국은 3만여 병력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라크 중부에 증파해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다. 2007년 하반기 들어 이라크에서 유혈사태가 눈에 띄게 주춤한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 병사는 23명에 그쳐, 저항세력의 공세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2004년 2월 이후 가장 적은 사망자를 낸 달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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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 중인 미군 2명 쏴
하지만 2007년 한 해 전체를 놓고 보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장병은 모두 901명에 이른다. 2003년 침공 이후 최악의 해였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지난해 하반기의 상황에 비춰 ‘낙관론’에 무게를 두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지금까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불길한 조짐을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지난해 12월26일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벌어진 탓이다. 〈AP통신〉이 1월5일 뒤늦게 미군 당국의 발표 내용을 따 전한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보자.
“한 이라크 병사가 합동순찰 근무 중이던 미군 2명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사망자는 미 육군 3기갑연대 3대대 소속 로디 인먼(38) 대위와 벤저민 포텔(27) 병장으로 확인됐다. 총을 쏜 병사가 소속된 이라크 육군 제2사단의 부타 하비브 자심 알카즈라치 사단장은 ‘문제의 병사가 현지 저항세력과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병사는 모술 남부 알카야라 지역 출신의 수니파로 알려졌다. 모술 인근에선 알카에다와 연루된 수니파 저항세력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이라크군에 침투한 저항세력이 저지른 짓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건은 과거에도 두어 차례 벌어진 바 있다. 지난 2006년 4월엔 시리아 국경지역 카임에서 미 해병대원이 이라크 병사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또 2004년 6월22일에는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2명이 중부 발라드에서 이라크 치안요원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까?
“합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미군과 이라크군의 관계에 파열음이 나고 있다.” 진보적 인터넷 매체 〈IPS뉴스〉는 1월7일치 기사에서 공식 발표를 뒤엎는 소식을 전했다. 문제의 총격 사건을 벌인 이라크 병사를 ‘카이사르 사디 알 주부리’라고 밝혀낸 이 매체는, 그의 삼촌이자 이라크군 현역 대령인 하짐 알 주부리의 말을 따 “카이사르는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인 여성에게 뭇매를 퍼붓는 것을 막으려다, 미군이 이를 거부하자 총을 쏜 것”이라고 전했다.
〈IPS뉴스〉가 접촉한 현장 목격자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당시 미군들이 사건 현장 주변의 한 민가를 급습했다. 그리고 한 여성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찾고 있는 남성들이 어디 있느냐며 말이다. 그 여성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잘못한 것도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곤 무서웠던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군 대위가 그 여성과 자기 병사들에게 고함을 쳤고, 미군 병사들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나왔다. 그때 이라크 병사 한 명이 ‘안 돼, 안 돼’ 하고 외쳤지만, 미군 대위가 그에게 되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라크 병사는 ‘여성을 놔주라’고 욕설을 퍼붓고는 미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라크인의 명예를 지킨 영웅”
〈IPS뉴스〉는 “현지 위성방송 을 통해 이런 사실이 처음 알려진 이후, 이라크 전역에서 카이사르를 ‘이라크인의 명예를 지킨 영웅’이라 부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건 직후 현장을 빠져나간 카이사르는 곧 체포돼 현재 모술 인근 알키즈라니 부대에 구금된 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터에선 불안과 공포가 종종 참극을 부른다. 곁에 선 이라크군을 믿지 못하게 될 때, 미군 병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미군의 과도한 행동을 지켜보며, 점령군에 분연히 맞선 ‘동료’를 떠올릴 이라크 병사는 없을까? 부시 행정부가 ‘성공작’이라 내세우는 미군과 이라크군의 ‘합동작전’이 갈수록 불안해진다. 2003년 3월 침공 이후 1월9일 오후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 장병은 모두 3921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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