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시대의 전환점’이 될 미국 대선, ‘최선’이 즐비한 민주당이 유력하지만 9회말의 일을 1회초에 어찌 알랴</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아이오와, 미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영국 일간 는 1월3일치에서 워싱턴발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가상전은 끝났다. 오늘 밤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주의 학교 교실에서, 예배당에서, 가정집에서,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첫 투표가 벌어진다. 현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가장 비용이 많이 들 것이며, 아마도 가장 중요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남의 나라 선거에 대한 관심치고는 표현이 다소 과해 보인다.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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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216B9C">△ 1월3일 저녁 미국 아이오와주 웨스트 드모인의 제212 선거구에서 민주당 당원대회가 시작되자, 선거구 대표인 그레그 니콜라스가 메가폰을 잡고 대회에 참석한 당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아이오와주 당원대회는 2008년 대선의 출발선이다. (사진/REUTERS/JIM BOURG)</font>
“과장법이 일상이 돼버린 미국 정치판이지만, 이번에는 약간의 과장법을 동원해도 괜찮을 듯싶다. 2008년 미 대선전이 막을 내릴 때쯤이면, 선거전에 뛰어든 후보들이 사용한 선거자금 총액은 1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 모두 전례 없이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임에도, 뚜렷한 선두주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에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냉전 이후 유일 초강국으로 남은 미국의 대선은 언제나 지구촌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2008년 대선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선거는 흔치 않았다”는 게 의 분석이다. 이를테면 신문은 1932년 미 대선을 떠올린다. 당시 선거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하면서 뉴딜정책이 도입됐고, 미국은 대공황의 파고를 넘었다. 이후 30여 년 동안 미국 정치는 ‘뉴딜’을 대표상품으로 내건 민주당이 주도해나갔다. 이런 미국의 상황이 지구촌에 끼친 파장도 결코 작지 않다.
선거운동 기간과 비용, 벌써 ‘기록적’
성격은 정반대지만, 1980년 대선도 떠올릴 법하다. 그해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승리는 이후 미국 사회에 ‘보수혁명’의 열풍을 몰고 왔다.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하긴 했지만, 그의 승리는 전통적 민주당 정책에서 훨씬 ‘오른쪽’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했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보수적 가치관을 집대성한 ‘미국과의 계약’을 내걸고 미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08년 대선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온 이런 판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는 내다봤다.
신문의 지적이 아니어도, 2008년 대선은 미국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우선 선거운동 기간과 비용이 벌써부터 ‘기록적’이다. ‘영원한 선거 기계’로 불리는 게 미국 정치권이다. 2008년 대통령 선거전이 지난 2006년 11월 중간선거 직후부터 사실상 시작된 것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이번 선거는 1928년 이래 현직 정·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첫 번째 대선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인기는 유례없이 바닥을 기고 있다. 처지는 정반대지만, 민주·공화 양당 모두 일찌감치 선거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거운동 기간이 길수록 늘어나는 건 비용이다. 2008년 대선이 사상 초유의 ‘돈잔치’가 될 것이란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2008년 한 해 미 정치 권력의 추가 흔들린다면, 진자가 민주당 쪽으로 움직일 것이란 점은 자명해 보인다.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던 이라크 상황이 최근 몇 달 새 다소 안정된 기미를 보이는 게 공화당으로선 그나마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상황이 언제 바뀔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란·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전역에서 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소말리아 등 대테러 전쟁의 최전선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의 끝자락에서 시작돼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점에 이른 미국의 일방통행에 전세계가 등을 돌리고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산적한 지구촌 공통의 난제를 풀기 위해선 미국 스스로 바뀌어야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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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내 사정도 전혀 다를 바 없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으로 시작된 신용경색은 이미 적색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원유 값은 사상 처음으로 100달러를 넘어섰고, 달러 가치는 자유낙하를 하는 모양새다. ‘경기침체’와 ‘불황’이란 음울한 단어가 금융가를 배회한 지도 이미 오래다. 〈NBC방송〉과 이 최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미국이 이미 경기침체에 빠져들었거나, 2008년에 경기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도 1월2일치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로렌스 서머즈 전 재무장관 등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들의 말을 따 “미국이 불황에 빠질 가능성과 그렇지 않은 가능성은 50 대 50”이라고 전했다.
정부에 대한 부정적 반응 70% 넘어서
미 유권자들의 위기감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갤럽이 지난해 12월6~9일 미국 성인남녀 1027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응답자는 전체의 27%에 그쳤다. 갤럽이 같은 여론조사를 처음 실시한 지난 1994년 11월 이후 부정적인 답변이 7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1년 9·11 동시테러 직후 90%까지 치솟았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30%대 안팎까지 추락한 터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가 열린 1월3일치에서 가 전한 현지발 기사는 이런 미국 내 분위기의 일단을 엿보게 해준다. 신문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차선’이 아닌 ‘최선’의 카드가 넘쳐나, 마치 고급 식당에서 메뉴를 쳐다보며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며 “너무 ‘대안’이 많다 보니 막판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많다”고 전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지지 후보가 확고하고, 막판까지 고심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민주당 경선을 주도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버락 오바마·존 에드워즈 후보가 공히 ‘변화’를 열쇳말 삼아 적극적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는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다. 다만 각 후보 진영의 접근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힐러리 후보는 ‘경험’을 최대의 무기로 활용한다. 에드워즈 후보는 극심해지는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에 분노를 표시한다. 오바마 후보는 젊음과 신선함, 그리고 당적을 뛰어넘는 화합 능력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승리를 섣불리 예단할 순 없다. 부시 대통령이 ‘근래 보기 드물게 인기 없는 대통령’이란 점은 분명하지만,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 역시 미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중간선거에서 ‘바꿔 열풍’을 부르며 12년 만에 상하 양원을 장악했음에도, 이라크 정책을 포함해 민주당 의회가 실제 바꿔놓은 것은 지난 1년여 동안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예상 밖의 반전을 이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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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으로는 블룸버그가 유력
실제로 테러나 전쟁, 국가안보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신뢰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중동에서 새로운 무력 갈등이 분출되거나 미국 본토가 다시 강력한 테러 공격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표심은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럴 경우 베트남전에 참전해 장기간 포로 생활까지 했던 존 매케인 후보나, 9·11 동시테러 당시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 후보가 선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선 성공적인 기업인 출신으로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낸 미트 롬니 후보와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보수 기독교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마이크 허커비 후보가 공화당 경선에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무명의 빌 클린턴 후보가 맞붙었던 지난 1992년 대선의 기억을 더듬어볼 필요도 있다. 당시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 염증을 느낀 미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며 독자 출마한 억만장자 출신의 로스 페로에게 열광했다. 페로 후보는 텔레비전 토론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기며 그해 6월 한때 지지율이 39%에 이르며 양당 후보를 앞서나갔다. 본게임에서도 그는 19%의 득표율을 올리는 저력을 보였다.
2008년 대선에서 무소속 출마가 유력한 인물로는 현 뉴욕시장이자 억만장자 기업인 출신의 마이클 블룸버그가 꼽힌다. 오랜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공화당으로 말을 갈아타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6월 공화당을 탈당해 현재 ‘무소속’인 상태로, 양당 경선이 시작된 현재까지 자신의 출마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 구도가 일찌감치 어느 한쪽으로 기울 경우, 블룸버그를 ‘대항마’로 삼으려는 정치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변수가 앞에 놓여 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는 대장정의 출발일 뿐이다. 앞으로 50개 주를 돌며 경선을 치르게 된다. 말하자면 ‘50회를 치르는 야구경기에서 1회’에 해당한다. 9회말 투아웃에도 승자는 바뀌는 법이니, 아이오와의 승리가 대선 승리의 보증수표가 될 순 없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막판 뒤집기 끝에 1위를 차지한 버락 오바마(민주당) 후보도, 2위와의 표차를 크게 벌인 마이크 허커비(공화당) 후보도 “경기는 이제부터”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1월8일 뉴햄프셔, 1월15일 미시간, 1월29일 플로리다에 이어 2월5일 ‘쓰나미 화요일’엔 22주 개에서 예비선거와 당원대회가 열린다. 그 무렵이면 민주·공화 양당의 선두주자도 분명해질 것이다. 그사이 민주·공화 각 당의 경선 후보도 제법 줄었을 게다. 아이오와 당원대회를 앞두고도 이미 부진한 지지율을 보이던 두 당 후보들은 ‘지지 예고’ 선언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 진보파의 상징인 데니스 쿠치니치 후보는 버락 오바마 후보를, 공화당의 강경파로 꼽히는 프레드 톰슨 후보는 존 매케인 후보를 각각 지지할 뜻임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크리스 도드·마이크 그레이블 후보는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부진한 결과가 나온 직후 아예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그날, 11월14일까지
오는 6월3일 뉴멕시코·몬태나·사우스다코타주를 끝으로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은 막을 내린다. 민주당은 8월25~27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공화당은 9월1~4일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각각 전당대회를 치르고 대선 후보를 공식 추대할 예정이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을 뽑는 11월4일까지, 올 한 해 미국은 온통 대선 열풍에 휩싸일 것이란 얘기다. 지구촌도 쉽게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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