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PPP에 가더라도 “쿠데타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군부, 그들이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는 이유는
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의 ‘귀환’이 기이하다. 잇따른 부패 스캔들로 벼랑으로 몰리다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그다. 사법당국의 처벌이 무서워 귀국도 못하던 그다. 그런데도 이겼다. 군부가 여전히 권력을 쥔 채 실시된 총선에서 그를 따르는 ‘피플파워당’(PPP)이 압승을 거뒀다. 국민들이 부패한 지도자에게 정치적 사면을 단행한 셈이다.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 타이 국민들도 ‘실용’을 선택한 것인가? 정문태 아시아네트워크 팀장이 타이 총선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탁신은 돌아와 경제를 살리라?’ 지난 12월23일 치러진 타이 총선에서 부패 추문으로 등 떠밀려 망명길에 오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피플파워당이 압승을 거뒀다. 한 지지자가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선거벽보가 나부끼는 치앙마이의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REUTERS/ SUKREE SUKPLANG)
▣ 방콕=정문태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별’들이 수상하다. 그 동선이 심상치 않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총총히 움직인다. 자신들이 바라지 않던 선거 결과 탓이다. ‘별 중의 별’ 쁘렘 띤술라논다 장군이 다시 나섰다. 국왕의 입 노릇을 하는 추밀원장에다 군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쁘렘 장군은 12월23일 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반한 실라파아차 찻타이당 총재와 수윗 쿤끼띠 쁘애빤딘당 총재를 집으로 불렀다. 2006년 9월19일 쿠데타의 막후 조정자로 의심받아온 쁘렘 장군이 만난 두 당 총재는 단독정부 구성에 실패한 제1당 피플파워당(PPP)과 제2당 민주당(DP) 사이에서 새 정부 선택권을 지닌 인물들이다. 비밀스런 만남이었고,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아는 이가 없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수상스런 ‘별들의 속삭임’
같은 날 밤, 9·19 쿠데타를 주도한 현 부총리 손티 분야랏까린 장군도 급히 쁘렘 장군 집을 찾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2월26일, 쁘렘 장군은 자신의 집에서 총리인 수라윳 출라논 장군과 손티 장군, 합참의장 분스랑 니엠쁘라딧 장군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쁘렘 장군은 ‘화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같은 날 저녁, 육군본부에서 별들이 또 모였다. 손티 장군과 그 후임 육군참모총장 아누뽕 빠오진다 장군이 군 지휘관들을 불러모았다. 출라촘끄라오 왕립사관학교 동창 모임이라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어 12월28일, 다시 군 최고지휘관들이 쁘렘 장군 집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건 해마다 공식적으로 벌어지는 신년 하례식이지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군의 충성과 단결을 과시하며, 어떤 형태로든 정치판을 향해 ‘경고장’을 날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군부가 원치 않았던 선거 결과와 그에 따른 군부 움직임을 놓고 타이 사회에서는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정치·군사 전문가들은 저마다 군부와 PPP가 구성할 새 정부 사이의 마찰을 예견하면서 또 다른 쿠데타 가능성을 입에 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는 크고 작은 군사 쿠데타로 얼룩져온 타이 현대사를 보면 그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셈이다. 게다가 PPP와 군부 쪽에서도 이미 힘겨루기가 시작된 기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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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PPP 총재이며 차기 총리로 유력한 사막 순다라??은 “쿠데타는 죽었다”고 외쳤다. 그러나 군부 쪽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새 정부가 군대를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권력이 PPP로 가더라도 결코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방장관 분라웃 솜타스 장군은 가슴에 담긴 말을 뱉어냈다.
“만약 새 정부가 나를 해임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새 정부는 법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군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군참모총장 아누뽕 장군은 좀더 ‘기술적’인 엄포를 날렸다.
“우리는 PPP가 새 정부를 구성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아직 기회를 잃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합참의장 분스랑 장군은 선거 결과를 군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띄운 셈이다. 분스랑 장군의 말은 쁘렘 장군이 군 최고지도자들과 정당 총재들을 만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흘려들을 수 없다.
그동안 정치 분석가들은 9·19 쿠데타를 정치성 없는 군인들의 상황- 군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에 밀린 ‘울며 겨자 먹기’식 도발로 보았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과 의제 설정을 놓고 볼 때 쿠데타 주동자들을 별로 영리하지 못한 이들로 판단해왔다. 실제로 9·19 쿠데타는 이전 쿠데타들과 달리 주동 군인들의 정치적 야망이 드러나지 않는 좀 별난 경우였다. 쿠데타를 주도한 손티 장군은 처음부터 스스로 “총리 자격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말을 줄기차게 강조해왔고, 결국 2007년 9월 말 육군참모총장에서 정년퇴임한 뒤 현 과도정부에서 부총리를 하면서 내일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비록 손티 장군이 지난여름 정년을 앞두고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혁명기구인 국가안보평의회(CNS) 의장직까지 사임하면서 순조롭게 ‘빠져나가는’ 모양을 취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유력했던 강경파 사쁘랑 장군을 한직인 국방부 상임 부비서로 돌리고 대신 온건파로 알려진 아누뽕 장군을 임명하는 한편, 국가안보평의회 의장에는 공군참모총장 찰릿 장군을 임명하면서 쿠데타 주동세력들의 힘을 분산시켰다.
영리한 군인들의 두 가지 안전장치
말하자면, 지난 15개월 동안 쿠데타 세력들은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쿠데타 원죄에서 벗어날 궁리만 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군인들은 ‘혁명과업’으로 내걸었던 부정부패 척결도 사회통합도 모조리 실패했다. 부정부패 핵심으로 지목해온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그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명의 공직자나 정치가도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그 사이, 사회통합도 물 건너갔다. ‘반탁신’ 대 ‘친탁신’으로 갈라진 정치구조는 더 악질로 변했고, 북부-북동부와 남부로 나뉜 사회구조는 더 깊이 파였고,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분쟁은 해결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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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러난 현상과 달리 군인들은 매우 이기적이고 영리했다. 적어도 군부와 자신들의 이문을 챙기는 지점에서만은 매우 정교했다. 군부는 지난 15개월 동안 두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하나는 국가보안법(ISA)으로, 군이 국가 안보를 내걸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군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군사전문가인 수라찻 출라롱콘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국가보안법으로 군은 국가 안의 국가가 된 셈”이다.
다른 하나는 재산조사위원회(ASC)다. 이는 탁신 전 총리를 타격 목표로 하여 설치한 조직인데, 추후 예상되는 탁신의 정치적 복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다. PPP 총재인 사막은 차기 정부를 구성하면 이 재산조사위원회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해온 터라, 군과 정치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킬 지점으로 보인다. 군은 이미 재산조사위원회를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맞받아쳤다.
아무도 점검할 수 없는 증액 예산
이렇듯 군부는 지난 15개월 동안 자신들을 위한 안전장치 확보뿐만 아니라 군 예산의 대폭 증액을 통해 실질적으로 빛나는 이문을 남겼다. 2006년 860억밧(약 26억달러)이던 군 예산을 쿠데타 뒤인 2007년 무려 33%나 증액한 1150억밧(약 34억달러)으로, 그리고 다시 2008년 예산에서 24.3% 증액한 1430억밧(약 43억달러)으로 올렸다. 군부는 9·19 쿠데타를 일으킨 뒤 곧장 비상자금으로 1억5260만밧(약 460만달러)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계엄령 아래 군이 집행한 이 자금은 아무도 점검할 수 없는 금역이었다.
덧붙여 군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군 예산을 2008~2018 회계연도의 첫 5년 동안 GDP 1.8%로, 그리고 나머지 5년 동안 2%로 상향하도록 차기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돈줄이 트인 군부는 2007년 9월 우크라이나에서 말썽 많은 경장갑차(BTR-3E1) 96대, 이스라엘에서 자동화기 그리고 중국에서 지대지 미사일 구매를 결정했고, 이어 10월에는 스웨덴에서 전투기(Saab Gripen) 12대와 조기경보기(AWE) 2대를 11억달러에 구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타이 군이 구입한 무기들이 대부분 불필요한 것으로 진단해왔다. 특히 12월 초 푸미폰 국왕이 잠수함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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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9·19 쿠데타로 군은 1997년 경제위기 때부터 거의 동결됐던 예산을 마음껏 늘려 충분한 재원을 확보했고, 국가보안법으로 정치 개입의 길을 트며 생존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1992년 쿠데타 이후 더 이상 쿠데타가 없을 것이라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15년 만에 다시 잠자던 쿠데타 ‘전통’을 일으켜세움으로써 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치판을 다시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군이 정치판을 향한 강력한 경고장을 띄워놓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군과 PPP 정부 사이에 상당 기간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사회통합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는 PPP 정부가 보복을 통해 군을 자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쿠데타 주도세력들은 이미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2008년을 기점으로 모두 정년퇴직을 하면서 9·19 쿠데타의 책임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돈만 넘친다면야…
이런 상황들을 놓고 볼 때, 현재 방콕의 군사·정치 전문가들 사이에 나도는 제2 쿠데타 발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그리고 9·19 쿠데타에서 보았듯이 21세기판 타이 군사 쿠데타는 20세기 그것들과 달리 정치적 야망을 좇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군인들이 권력을 넘어선 금력의 정체, 그 자본주의 정치철학에 눈을 뜬 탓이다. 돈만 넘친다면 목숨 걸고 뛰쳐나가야 하는 쿠데타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타이 정치가 넘어야 할 21세기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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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잔치 뒤끝처럼 허무한 기운에 휩쓸려 있다. 지난 2006년 9월19일, 탱크를 몰고 나온 군인들에게 꽃을 던지며 열광했던 시민들은 온데간데없다. 15개월 만인 지난 12월23일 선거에서 그 탱크몰이 9·19 쿠데타 군인들은 참패했다.
대신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뒤를 받치는 피플파워당(PPP)이 12월26일 현재 480석 하원 의석 가운데 233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떠올랐다. PPP는 2007년 5월 군부가 탁신의 타이락타이(TRT)당을 해산시키면서 탁신 정부에 참여했던 고위 정치가 115명을 5년 동안 정치 규제자로 묶어버리자, 타이락타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런던에 망명 중인 ‘탁신의 복귀’를 구호로 내걸고 선거전에 뛰어들어 전통적인 표밭인 북부와 북동부를 휩쓸었다. 한편 타이 최장수 정당으로서 남부를 요새 삼아온 민주당(DP)은 남부 몰표와 방콕 압승을 기반으로 165석을 확보해 제2당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타이 사회가 지닌 양분 현상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타이 최고 갑부로서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던 탁신 전 총리의 고향인 북부는 PPP를 선택했고, 추안 릭파이 전 총리의 고향인 남부 지역은 변함없이 민주당을 지원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9·19 쿠데타 군인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온 추밀원장 쁘렘 띤술라논다 장군의 출신지가 남부라는 사실도 민주당 몰표에 한몫했다. 하여 이번 선거의 북부-남부전은 9·19 쿠데타 세력을 놓고 ‘지역 대리전’ 양상을 보인 셈이다.
또 다른 전선은 방콕과 동북부를 낀 계층 사이에 펼쳐졌다. 최대 선거구를 지닌 최빈곤 지역 동북부는 탁신 전 총리가 무제한 살포한 포퓰리즘에 반해 2001년부터 타이락타이당의 요새로 둔갑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탁신 복귀를 염원하며 몰표를 던졌다. 최고 갑부와 빈곤층이 만난 이 희한한 조합은 정치적 우화로 기록될 만한 현상이다. 반면 중산층이 포진한 방콕은 2001년, 2005년 선거와 달리 중산층과 서민을 표방한 전통의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주며 탁신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계층 대리전’ 양상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단독정부 구성에 실패한 제1당 PPP와 제2당 민주당은 차기 정부 조합을 놓고 중소 규모 정당을 낀 심각한 암투를 벌이고 있다. 37석을 건진 찻타이당(CT)과 25석을 채운 쁘애빤딘당(PP)은 차기 정부 구성에 결정적인 열쇠를 쥔 채, 제1당과 제2당 사이에서 느긋한 ‘흥정’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악의 경우 PPP가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9석짜리 루암짜이 타이찻빠따나당(RJTCP)과 7석짜리 맛치마 팁빠따야당(MT)도 몸값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PPP는 이미 중소 정당들과 정부 구성에 합의했다고 밝혀 민주당과 심각한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적인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1월3일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적인 최종 선거결과 발표와 줄줄이 걸린 선거무효 심판이 남아 있는 탓이다. 이미 선거관리위원회는 동북부 쪽 PPP 당선자 3명에 대해 부정적인 판정을 내린 상태다. PPP는 정치적 공작이라며 대들고 있다.
이제 타이 정치판을 읽는 계절로 접어든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았듯이 사회 양분 현상을 심각하게 노출해온 타이에서 앞으로도 당분간 정치적 안정을 구경하기는 힘들 듯싶다.
게다가 여전히 군인들도 움직이고 있다. 탁신도 2월 귀국설을 흘리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가운데 분명한 게 하나 있다. 타이 정치판의 앞날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반탁신과 친탁신 진영을 낀 물리적 충돌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2008년 1월을 눈여겨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