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 빈곤 타개책으로 도입한 시장경제가 양극화 불러… 2010년까지 빈곤층 10%로 줄이는시행 사업이 관건
▣ 호찌민·하노이(베트남)=글·사진 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naver.com
쌀 수출 세계 2위, 석유 매장량 200억t의 산유국, 해안 길이 3200km에 배타적 경제수역 1천만㎢, 1986년 ‘도이머이’ 정책 선언 이래 20년 동안 연평균 8% 내외의 고도성장을 해왔고, 앞으로 10여 년은 고도성장을 계속 이어갈 나라, 베트남.
유럽 축구,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다
대도시엔 하루가 다르게 고층 빌딩과 대형 상가, 현대식 아파트와 호화 빌라가 들어선다. 밤거리엔 승용차와 오토바이 불빛이 꼬리를 문다. 물건이 넘쳐나는 상점에선 네온사인이 화려한 조명을 거리에 흩뿌려준다. 도시엔 그렇게 경제 활황의 푸른 신호등이 하루 종일 켜져 있다. 하지만 빌딩숲 한편 개천가에 작게 웅크린 야자수 초막집, 호화빌라 옆구리에 낮게 엎드린 함석집, 농어촌이나 산간마을의 모로 누운 움막집에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국가 경제발전 어쩌고저쩌고’ 하는 뉴스가 마치 남의 나라 소식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은 유럽 축구나 한국 드라마에 더욱 열광한다. 경제발전의 성과가 빈곤층의 주머니와 가슴을 부풀리지 못하는 것은 ‘사회주의 베트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도이머이 이전 시기인 ‘배급시대’에는 경제발전의 성과물이 고스란히 국민 각자의 주머니와 배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눠가질 것이 항상 부족했다. 다 함께 배를 곯아야 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되새김되진 않는다. 도이머이는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될 만큼 배급의 추억은 뼈아팠던 게다. 베트남 정부는 만성적 빈곤 타개책으로 86년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병폐인 사회 양극화를 막고자 사회주의적 가치를 그대로 고수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사회주의 지향의 국가관리 시장경제’, 시장경제 도입을 통해 생산력의 효율성을 높이고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사회복지를 이루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배급을 없애고 생산물에 대한 개인 소유를 인정하자, 억눌려 있던 국민 잠재력이 순식간에 분출했다. 배급 시절엔 언제나 부족했던 쌀이 도이머이 첫해부터 200만t이나 남아돌았다. 2년의 비축 기간을 거쳐, 89년에 400만t의 쌀을 수출하면서 순식간에 세계 3대 쌀 수출국이 되었다. 달라진 사회 환경에 눈치 빠르게 적응한 이들은 부자가 되었고, 돈벌이에 둔감하거나 나태한 이들은 빈민이 되었다. 양극화가 난치성 전염병처럼 천지사방으로 번졌다.
베트남 정부는 일단 91년에 ‘서로 돕기 운동’을 장려했다. 93년부터는 ‘가난 퇴치’를 국가 공식 과제로 삼아 예산을 편성했다. 당시 기준으로 베트남 국민의 59%가 빈민층이었다. 2002년부터는 유엔의 지원을 받아 가난 퇴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부와 유엔이 가난 퇴치 5개년 계획(2006~2010년)을 세운 2005년 당시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전체 1850만 가구 중 22%에 해당하는 407만 가구가 빈민 가구로 파악됐다. 빈민 가구의 기준은 1인 한 달 소득을 기준으로 농촌이 20만동 이하, 지방도시가 26만동 이하, 하노이는 35만동 이하, 호찌민시는 50만동 이하로 매겨졌다.
무상 의료보험, 법률지원 포함
베트남 정부는 현재 5개년 계획에 따라 3조5천억동의 예산을 들여 빈민들에게 △무상 의료보험 △무료 법률지원 △학비 감면 △기술교육비 감면 △신용우대 대출 1인당 400만~500만동 △50만 가구 무상 집수리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빈민 가구의 비율을 오는 2010년까지 전 국민의 10% 안팎으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베트남 사회주의가 ‘사회 양극화 해소, 성장과 분배의 합리적 균형’이라는 좋은 답안을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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