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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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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은 짭새가 듣고, 밤라디오는 시민이 듣고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외국인과 말만 해도 잡혀가는 버마, 시민들은 국영신문이 ‘협잡꾼’이라 말하는 방송만 신뢰해

▣랑군(버마)=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버마(현 미얀마)는 상상을 초월하는 언론통제 국가다. 과거 아웅산 수치가 석방될 때면 잠시 ‘취재비자’란 걸 내주기도 했다는데, 버마에 취재비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근거리에 선 외국 기자까지 ‘쏴 죽일’ 정도로 카메라에 질겁을 하는 나라에서 공식적인 취재는 불가능하다. 한때 버마 군부 못지않게 카메라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도 이젠 카메라뿐 아니라 기자까지 ‘활용’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건만, 버마 군부는 요지부동이다. 게다가 지난 10월31일 버마 중부 포코쿠에서 승려들이 한 달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행진에 나서자 인터넷과 휴대전화 연결을 곧바로 끊어버렸다. 내부 소식이 새나가지 않게 하려고 버마 군부가 얼마나 애쓰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다.

걸핏하면 입으로 가는 엄지손가락

버마 내부 취재가 어려운 건 싸움이 벌어져서도 아니고, 납치의 위험이 있어서도 아니다. 극심한 빈곤에도 버마는 범죄율이 낮고 치안상태가 좋은 편이다. 물론 군부가 ‘반정부 세력’으로 낙인찍은 사람들에겐 예외일 테지만 말이다. 버마 취재의 장벽은 따로 있다. 바로 굳게 닫힌 현지인들의 입과 사방에 깔린 사복 공안요원들의 눈이다. 외국인과 대화한 현지인들은 어김없이 공안당국의 괴롭힘을 당한다.

입 안에서 우물우물하거나 걸핏하면 엄지손가락을 입에 갖다대고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는 주민들을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취재를 목적으로 통역이나 가이드를 고용하는 건 꿈도 못 꾼다. 그러니 취재 환경만 놓고 보면, 버마는 아프간보다 훨씬 열악한 나라다.

“3~4년 전인가, 만달레이에서 승려들과 무슬림들이 큰 싸움을 벌인 일이 있었다. 한 미국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러 거길 갔다 왔는데, 그가 떠난 뒤 그를 태워준 트라쇼(수동으로 운전하는 세 바퀴 탈 것) 운전기사가 불려가서 심문을 당했다. 그 기사는 결국 운전을 그만뒀고….”

버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트라쇼를 몰았던 초윈 나잉(40·가명)은 동료 2명이 그런 일로 불려간 뒤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단다. 자기가 태운 외국인과 어쩌다 약품과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비밀경찰이 이를 엿듣고 달려와 “그런 얘기 너무 오래 하지 말라”고 슬쩍 으름장을 놓고 갔다는 게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린 정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전혀 없다. 비밀경찰들은 성능 좋은 장비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멀리서도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는다. 대부분 영어도 다 알아듣는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BBC〉는 거짓말…〈VOA〉는 사기…”

싱가포르에서 들여왔다는 도청장치가 비밀경찰들에게 얼마나 보급돼 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지난 2004년 11월 버마 군부의 수장인 탄 슈웨 장군이 정보국 출신의 킨 당시 총리를 해임하고 정보국마저 해체한 뒤 군부의 정보력이 취약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랑군(현 양곤) 주재 한 서방 외교관계자는 “킨 해임 이후 취약해진 정보력 때문에 지난 9월과 같은 시위 사태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버마에서 취재를 한 지난 한 달여 동안 이따금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다.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주변에서 전자기기가 작동할 때마다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응’을 하는 내 외장 스피커가, 버마 안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웅웅거렸기 때문이다. 랑군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한적한 마을 포코쿠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호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감시하고 있는 거야?’

‘90년 전통’의 국영 영자신문 (이하 )는 3년여 전 버마를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심각한 ‘찌라시’가 돼 있었다. 기사 내용이야 논외로 치자. 3년 전만 해도 의 프로파간다는 크게 두 가지였다. 1면에 실리는 ‘네 가지 정치·경제·사회적 목표’와 ‘우리는 안정과 평화를 원하고, 불안과 폭력을 반대한다’는 이른바 ‘인민들의 소망’이 그것이다. 3년 만에 다시 집어든 엔 ‘네 가지 목표’와 ‘인민들의 소망’은 물론 읽기조차 민망한 문구들이 뒷면에 한가득이다.

“(RFA), (VOA), 〈BBC〉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 “〈RFA〉 〈VOA〉 〈BBC〉는 파괴자, 모두들 조심하세!” “대중은 ‘킬러 방송’(〈RFA〉 〈VOA〉 〈BBC〉)을 경계하라!”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들이 지금 국가를 파괴하려 든다.” “〈BBC〉는 거짓말을 하고, 〈VOA〉는 사기를 치고, 〈RFA〉는 적대감을 부추긴다. 조심, 또 조심! 협잡꾼들에게 속아넘어가지 말자.”

‘찌라시’를 가방 안에 구겨넣고, 랑군 시내 중심가 ‘인와서점’에 들어서면 등 주류 외신 잡지가 진열대에 가득하다. 지난호는 싼 가격에, 최신호는 제 가격에 팔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잡지에 실린 지난 9월의 버마 시위 관련 페이지는 모조리 찢겨나간 채였다.

“새거 없어요?”

“그거 새 거예요.”

“근데, 여기가 왜…?”

여기까지 말을 주고받고 나니, 서점 직원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두 번 이렇게 반복했다. “센서(검열), 센서….”

숨기려는 세력과 폭로하려는 세력

‘찌라시’도 거부하고, 또 찢겨나간 페이지도 찾을 수 없는 버마인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통로는 라디오다. 버마 국민 대부분은 ‘메이드 인 차이나’ 라디오를 통해 가 ‘협잡꾼’으로 규정한 〈BBC〉 〈VOA〉 〈RFA〉를 매일 챙겨 듣고 있다. 만달레이 야시장에서 판매하는 소형 라디오는 3천차트(미화 2.4달러)에서부터 6천차트 정도였다. 일용 노동자의 하루 벌이가 1천차트가량이니 그럭저럭 구입할 만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만난 수많은 현지인들이 거의 예외 없이 라디오를 통해 ‘세상 얘기’를 듣는다고 했다.

“우리가 신뢰하는 언론은 〈BBC〉 〈VOA〉 〈RFA〉 (DVB)뿐이다.” 어렵사리 만난 민족민주동맹(NLD)의 한 여성위원은 “버마인들 절대다수가 열심히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도 어렵잖게 이들 라디오를 듣고 있다. 군 지휘부와 하급장교·병사 간에 인식의 격차가 있다. 미디어 활동을 통해 이들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데 집중할 것이다.”

독재의 오랜 서슬에 눌린 버마에선 지금 숨막히는 ‘전쟁’이 한창이다. 군부가 ‘미디어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민주세력은 ‘미디어를 통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숨기려는 세력과 폭로하려는 세력,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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