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아프간화’도 가능한 상황, 미국은 친위 쿠데타 이후 지원을 중단할 수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나라는 어디일까?’ 미 시사주간지 는 지난 10월29일치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바로 파키스탄”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잡지가 제시한 근거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파키스탄은 오사마 빈라덴이 바람직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우선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하다. 과격 이슬람 세력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반서방 성향으로 똘똘 뭉친 분노한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서부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과격 이슬람 세력이 활용할 만한 외딴 ‘훈련 장소’도 널려 있다. 또 최첨단 전자기술에 접근하기도 쉽고, 서방 세계로 향하는 정기 항공편도 갖추고 있다. 파키스탄 보안당국은 과격 이슬람 세력을 통제하려 들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처럼 지속적으로 테러범 소탕작전을 벌일 만한 미군 병력도 주둔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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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게다가 파키스탄은 핵무기 보유 국가다. 는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남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브루스 리델의 말을 따 “알카에다가 핵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지구촌을 둘러본다면, 자기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아프간)에서 지척인 파키스탄에서 쉽게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1월3일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전격 선포하면서 불거진 파키스탄의 정정 불안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화들짝’ 놀라는 이유다.
국내외의 비난과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무샤라프 대통령이 굳이 ‘친위 쿠데타’를 벌인 이유는 자명하다. 여느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벌인 일인 게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파키스탄 안팎의 정치 지형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8년여 무샤라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99년 5~7월 파키스탄과 ‘숙적’ 인도는 해묵은 국경 분쟁에 휘말린다. 카슈미르의 키르길 지역에서 무력충돌이 빚어지면서 두 나라 국경지대에선 전운이 감돌았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 내부에선 육군 참모총장인 무샤라프가 국경 충돌을 유발했다는 비난이 비등했고, 나와즈 샤리프 당시 파키스탄 총리는 그를 해임함으로써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해 10월12일 샤리프 총리는 무샤라프를 전격 해임하고, 콰자 지아우딘 정보국장(ISI)을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했다. 당일 외국을 방문 중이던 무샤라프는 즉각 민항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지만, 샤리프 총리는 카라치 공항 폐쇄 명령을 내린다. 귀국을 막으려는 조처였다. 하지만 샤리프 총리의 참모총장 해임 결정에 반발한 군 장성들이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군 병력을 동원해 정부와 의회를 해산하고, 공항을 장악한 뒤 무샤라프의 귀환을 반겼다. 무혈 쿠데타가 성공을 거둔 순간이다.
정권을 장악한 무샤라프는 2001년 6월 스스로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까지 라피크 타라르 당시 대통령의 명맥을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그와 파키스탄 법조계의 악연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듬해인 2000년 무샤라프가 전국 판사들에게 “군사정권의 뜻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도록 한 게 발단이었다. 상당수 판사들이 이를 거부하고 나섰고, 새롭게 들어선 군사정부와의 마찰을 피할 순 없었다.
권력 장악 때 법조계와 악연 시작
그는 이어 2002년 4월 국민투표를 거쳐 군복을 입은 채로 5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새롭게 취임했다. 당시 국민투표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는 “71% 투표율에 97.5% 찬성”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투표율은 “기껏해야 10~30% 수준일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같은 해에 치러진 의회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선출된 의회가 위헌 논란 속에 무샤라프 대통령의 육군 참모총장직 겸임을 2007년 말까지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대선과 총선이 거푸 치러져야 할 운명의 2007년이 다가왔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선 두 가지 걸림돌을 극복해야 했다. 민간정부 이양을 줄기차게 요구하며 군부정권에 압박을 가해온 사법부와 북서부 아프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과격 이슬람 세력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우선 깐깐한 판결로 자신을 괴롭혀온 이프티카르 모하마드 차우드리 대법원장에게 손을 댔다. 지난 3월9일 권력 남용과 부패 등의 이유를 들어 차우드리 대법원장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장 해임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파키스탄 엘리트 집단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결국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 7월20일 차우드리 대법원장을 복귀시킬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지원하면서 시작된 과격 이슬람 세력과의 대치 국면은 지난 7월 ‘붉은 사원’(랄마스지드) 사태를 겪으며 정점으로 치달았다. 당시 사원에 은신해 있던 ‘과격 이슬람주의자’ 소탕을 위해 보안군 병력을 투입했던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에 반발한 자살폭탄 공격이 도처에서 잇따르면서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취약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든든한 동맹국임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장기 집권으로 가는 길에서 역풍으로 작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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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증폭되는 상황임에도 무샤라프 대통령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10월7일 파키스탄 의회와 4개 지방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은 예상대로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육군 참모총장직을 유지한 채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으니, 무샤라프 대통령의 입후보 자격이 정당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대선 승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무사랴프 대통령은 11월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대법원이 이에 대한 판결을 내놓는 것 자체를 봉쇄해버렸다.
3월과는 전혀 다른 분석
나라 밖 상황은 어떨까? 외교·안보 전문 사이트 〈PINR〉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 직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지금까지 미국이 무샤라프 정권을 지원한 이유는 파키스탄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무샤라프 정권은 파키스탄에서 안정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미국으로선 무샤라프 대통령을 대체할 만한 세력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그를 지지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파국이 임박했다’는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재밌는 것은 지난 3월 차우드리 대법원장 해임 사태 직후만 해도 이 단체가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당시 보고서에서 〈PINR〉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과격 이슬람 세력의 발호를 차단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라며 “이런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면서 무샤라프 대통령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한, 미국으로선 무샤라프 정권이 흔들리는 걸 달가워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지대는 험준한 산악지대다.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눈길을 피해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데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아예 국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이란 국가보다는 아프간 땅에 사는 파슈툰족에 대한 형제애가 더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파키스탄 거주 파슈툰족이 흔히 아프간으로 넘어가 동족과 어깨를 겯고 ‘점령군’에 맞서 전투를 벌인 뒤, 국경을 넘어와 파키스탄 땅에 숨어들기를 지난 몇 년째 반복해왔다.
국경 지역 일대에 마련된 아프간 난민캠프 역시 미국으로선 골칫거리다. 새로운 ‘이슬람 전사’를 키워내는 모병지이자, 훈련장 노릇을 하고 있는 탓이다. 1990년대 중반 탈레반이 발흥한 곳도 이곳 난민캠프의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였다. 여기에 파키스탄-아프간 국경 지역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실상 느슨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압도적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과 나토군은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파키스탄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벌일 엄두도 내지 못해왔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급격히 세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남부 지역을 근거지로 강력한 무장저항을 벌이며 대중적 지지를 모아가고 있는 탈레반의 기세에 눌린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는 최근 화해의 눈짓을 잇따라 보내고 있다. 갈수록 엄중해지는 정세 속에 극도로 권력 기반이 취약한 카르자이 정권은 조만간 탈레반 세력과 일정한 형태의 권력 분점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다.
미국으로선 이 모든 정세를 흘려보낼 수 없는 처지다. 지금까지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대체재’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무샤라프 정권 스스로 파국을 향해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상황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인 게다. 일부에선 미국에 한 가지 ‘대안’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간 국경 너머 파키스탄에서도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 소탕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면 된다는 것이다.
홀로서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하지만 파키스탄군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의 양해 없이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파키스탄 중앙정부가 이를 묵인하더라도, 국경지대 파슈툰족의 거센 저항을 부를 것이 뻔한 탓이다. 최악의 경우 ‘파키스탄의 아프간화’도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닌 게다. ‘친미’를 이유로 독재정권을 지원해온 미국의 처지가 외로워 보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지난 2001년 이후 파키스탄에 모두 100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했는데, 그 대부분은 군사원조였다.
“지난 8월 어느 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새벽 2시에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말라는 요청이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는 11월4일치에서 “하지만 11월2일 라이스 장관이 같은 내용의 긴급 전화를 걸었을 때,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다”고 전했다. 그가 홀로서기를 시도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부시 행정부의 압박을 의식한 탓인가? 무샤라프 대통령은 11월8일 기자들과 만나 2008년 2월15일까지 총선을 치르고, 군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바뀌어 있다. 미국은 쉼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터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도박이 갈수록 아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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