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 자녀도 공부할 수 있지만 단속이 무서워, 돈이 없어서 80%가 포기해
▣ 암만(요르단)=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요!” 마르와(14)는 요르단 체류 4년차 여자아이다. 이라크전쟁 직후 바그다드를 빠져나와 암만에 살고 있다. 그동안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다. 마르와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라크 출신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한 통계 자료조차 없다.
지난해 ‘합법 거주 확인서’에 줄줄이 그만둬
이라크 피란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암만 시내 하쉬미 쉬말리 지역을 찾았다. ‘사파나 빈트 하팀 앗타이 여학교’(교장 수함 야신 앗수베이하). 1991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초·중·고교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학생 1100여명이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과밀학교다. 최대 수용인원이 30~40명에 불과한 교실이 스무 개 남짓밖에 없는 탓이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라크 출신 여학생은 전체 학생의 2.5% 남짓인 28명, 모두 오후반(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었다.
앗수베이하(49) 교장은 이번 학기에 처음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만 교장실로 따로 불러냈다. 마르와를 비롯해 라미스(14)·비얀(15)·리반(15)·무나(15)·아시일(15)·루브나(14)·테사미(15)·누르(14) 등 10여 명이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체류 기간은 다르지만 다들 이라크전쟁 이후에 요르단에 정착했다.
“다시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아요. 하나도 쉬운 게 없지만….” 그동안 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에, 이라크 아이들은 나이에 맞는 학년보다 낮은 학년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반 편성 시험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학교에서 알아서 학년과 반을 편성해줬지요.” 한두 학년 유급은 기본이다.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이라크 사투리와 전혀 다른 요르단 사투리도 수업을 따라가는 데 장애물이다. ‘왕따’ 같은 것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2007~2008학년(요르단은 가을학기에 시작해 봄학기에 학년이 끝난다) 들어 요르단 국·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에 다니는 이라크 출신 어린이와 청소년의 수가 급증했다. “불법체류자 자녀들도 공부할 수 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국·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다.” 지난여름 취학 연령대 자녀를 둔 이라크 피란민 가정에 전해진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정말 학교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학교로 돌아온 이라크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 이라크 출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 교육을 포기한 데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2005~2006년에는 요르단의 국·공립학교를 다닌 이라크 학생이 최대로 추정해 6만 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2006~2007년에 들어서면서 이라크 학생이 급격히 줄어들어 고작 1만4천여 명에 불과했다. 학교 당국이 ‘합법 거주 사실 확인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법 체류 중인 대부분의 이라크인 난민 가정은 자녀 교육을 포기해야 했다.
“곧 요르단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올해 들어 “다음 학년도부터는 불법 체류 가정의 아이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이 ‘루머’처럼 이라크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번져갔다. 요르단 정부가 요르단 내에서의 체류 신분을 묻지 않고 취학 연령 이라크 난민에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얘기였다. 이를 두고 피란민들 사이에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선뜻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머’가 ‘사실’이 된 뒤에도 새로 등록한 이라크 학생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요르단 정부는 등록 마감 시한을 지난 9월15일에서 2주 연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큰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요르단 교육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그동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중간에 그만둔 이라크 학생 5만 명가량이 이번 학기에 다시 학교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지 교육 관계자들은 “그 정도 수치는 요르단 교육부의 희망사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유엔난민기구(UNHCR)와 ‘세이브 더 칠드런’ 등 난민지원단체가 내놓은 추정치를 보면, 현재 암만에 살고 있는 5∼17살 이라크 어린이와 청소년은 약 25만 명에 이른다. 결국 이라크 청소년 중 최소한 80% 이상은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라크 난민이 몰려 살고 있는 서민 지역 하쉬미 쉬말리, 하쉬미 제누비, 자발 쿠스르, 자발 앤누즈하, 마하타 지역의 각급 학교는 이라크 학생들이 제법 많아졌다. 어림잡아 3% 안팎이다. “교사, 교실, 의자, 교육 기자재 등 채워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정 확충이 절실하다.” 하쉬미 쉬말리 지역 등 암만의 이라크인 과밀 지역의 30여 개 학교에서는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다. 이라크 학생들 때문만이 아니다. 최소한 한 학생에 연간 100만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현지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육 환경을 적절히 갖추는 데 필요한 재정과 인력을 수급해야 하는 요르단 정부로선 신경쓸 일이 하나둘이 아닌 게다. 학교 교육을 원하는 이라크 학생 모두가 공부할 수 있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가 신분이 드러나 가족들이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요르단 정부가 학교의 문호를 개방했음에도 이라크 난민 가정에선 혹시나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릴 것을 우려해 여전히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난민 신청을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릴리얀(15·가명)의 부모는 또 다른 이유로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곧 요르단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데 학교에 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그들의 말이다.
물론 가장 흔한 이유는 ‘돈’이다. 1년치 등록금과 책값, 학용품비 등을 포함해 우리 돈 7만5천∼14만원이 필요한데, 이 정도 금액도 피란민 가정엔 부담이 된다. 평일 학교 수업 시간에 이라크인 밀집 지역을 둘러보면, 골목마다 아이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많은 이라크인 가정이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 무관심하다. 아니,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불법 노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밥벌이를 할 방도가 없다. 되레 생계에 보탬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들을 일터로 내보내기도 한다.
25% 만성적 불안감 시달려
지난 6월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피란민 청소년 가운데 43%가 이라크에서 폭력사태를 목격하거나 경험했다. 39%는 가까운 친인척을 잃었고, 25%는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다. 하지만 상담 치료 등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라크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교사로 일했던 한 미국인 인권운동가는 “자살폭탄 공격 등 끔찍한 유혈사태를 목격한 이라크 청소년들 중에는 정신적 상처로 인해 대인 공포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덫!’ 희망을 잃은 이라크 어린이들의 신산스런 난민 생활은 끝 모르게 계속된다. 애초 아이들이 선택한 삶은 아니다. 대다수 이라크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 있다. 그들의 바람도 아니다. 이라크 청소년의 미래는 그렇게 떠돌고 있다. 꿈이 없는 아이들, 희망을 잃은 아이들이 지금 절망의 올무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들이 이라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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