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CIA가 공개한 ‘내부문서’ 1탄, 암살·감시… 광기의 역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 중앙정보국(CIA)이 ‘가문의 보석’을 꺼내놨다. ‘가보’처럼 아끼고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마침내 세상에 공개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내놓은 건 아니다. 조지워싱턴대에 딸린 국가안보자료실 등이 벌써 15년여째 줄기차게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비밀해제를 요구해온 터다. 마이클 하이든 CIA 국장은 문서 공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부분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지만, 이 역시 CIA의 역사”라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기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 제거하면 15만달러 주겠다”
지난 6월25일 CIA가 일반에 공개한 내부문서는 모두 702쪽 분량으로 방대하다. 문서의 표지를 보면 ‘가문의 보석’이 1973년 5월16일 CIA 운영위원회 사무총장에게 제출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1947년 제정된 미 국가안보법은 CIA의 국내 문제 개입을 금시하고 있지만, 공개된 문서에는 CIA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점이 극명히 드러나 있다. 몇 가지 대표적 사례를 들여다보자.
1960년 8월 CIA 요원 리처드 비셀은 산하 보안국의 셰필드 에드워즈 대령에게 접근한다. 보안국이 ‘갱단 스타일’로 작전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작전’의 목표물은 당시 미국이 눈엣가시로 여기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다. 공개된 문서를 보면 “사안의 민감성 탓에 극소수만이 이 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며 “(앨런 듈레스 당시) CIA 국장은 관련 브리핑을 받은 뒤, 이를 승인했다”고 나와 있다.
비셀 요원은 보안국의 신원 확인을 거쳐 로버트 매휴란 인물을 만났고,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은 매휴는 안면이 있던 라스베이거스 마피아 거물 조니 로젤리를 추천한다. 비셀 요원은 매휴에게 ‘접선’을 지시했고, 그는 로젤리를 만나 “쿠바에서 사업을 하던 고객들이 카스트로 때문에 큰 사업상의 손실을 입어, 그를 제거하려 한다”며 “미국 정부가 모르도록 비밀리에 카스트로를 제거해주면 15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매휴를 앞잡이 삼은 CIA와 로젤리 사이엔 긴밀한 접촉이 이어졌고, “총기를 사용하는 대신 독살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란 ‘작전계획’까지 수립하기에 이른다. 독살을 실행에 옮길 사람은 카스트로 주변 접근이 가능한 쿠바 공무원 후안 오르타로 정해졌고, 실제 그에게 독극물 6알이 전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오르타가 암살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서 한동안 진행돼온 ‘작전’은 결국 무위에 그치게 된다.
‘암살 대상자 명단’에도 암살 관련설 일축
비슷한 시기 CIA는 다른 경로를 통해 카스트로 암살작전을 모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문서를 보면, CIA는 쿠바 망명자 출신들에게 자금과 장비를 제공해 암살 기도에 나서기도 했다. 카스트로 외에도 당시 CIA의 ‘암살 대상자 명단’에는 여러 명이 올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트리스 루뭄바 콩고공화국 총리(1961년 1월17일 암살)와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1961년 5월30일 암살) 등의 이름도 언급되고 있는 탓이다. 물론 CIA는 그때나 지금이나 암살 관련설을 일축하고 있다.
언론인에 대한 감시와 사찰도 비일비재했다. CIA는 1971년 10월6~9일, 같은 해 10월27일~12월10일, 이듬해인 1972년 1월3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당시 기자였던 마이클 게틀러를 감시했다. 공개된 문서를 보면 이는 리처드 헬름스 당시 CIA 국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감시의 목적은 게틀러가 쓴 국가안보 관련 기사의 취재원을 찾아내는 것이었단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CIA 국장의 지시에 따라 잭 앤더슨과 그의 취재보조원인 브리트 흄, 레슬리 위튼, 조셉 스피어에 대한 감시활동이 1972년 2월12일부터 같은 해 4월12일까지 진행됐음. 미행 외에도 앤더슨의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스태틀러 힐튼호텔에 잠복근무 장소를 마련하고, 사무실을 감시했음. 앤더슨에 대한 감시활동은 그가 쓰는 칼럼에 자주 등장하는 CIA의 1급 비밀을 흘려주는 취재원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음.” 앤더슨은 앞서 언급한 로젤리 사건을 포함해 “CIA가 모두 6차례에 걸쳐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내용을 1971년 2월 를 통해 보도해 파문을 부른 바 있다.
감시·사찰의 음습한 손길은 시민사회로까지 뻗쳤고, 이를 위해 CIA는 경찰력을 ‘활용’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문서를 보자. “1969년부터 1971년까지 (CIA는) 워싱턴DC 경찰청 보안국에 (베트남전) 반전 시위대 감시용 통신장비 등을 제공했음. 라디오 송수신 장치와 차량, 요원 파견 등이 이뤄졌음. 이를 통해 CIA 본부에서 경찰 통신 내용을 확인해 반전 시위대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었음.” 명백한 국내 정치 개입이자, 불법 행위다. 이같은 내용은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시모어 허시가 1974년 12월22일치 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 전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개된 문서에는 CIA의 국내 정치 개입이 낳은 ‘희극’도 등장한다. 1972년 봄 CIA 요원 하워드 헌트는 정보국에 딸린 퇴직요원 구직지원 부서 쪽에 ‘은퇴한 열쇠따기 전문가’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은밀한 작전’을 위해서였다. 구직지원 부서에선 직전 해인 1971년 7월 말 현직에서 물러난 토머스 아마토란 인물을 소개해준 것으로 나오는데, 헌트가 ‘열쇠따기 전문가’를 찾은 이유를 짐작할 만한 사건이 그해 5월28일과 6월17일 각각 벌어진다. 워싱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불법 침입했던 괴한들이 붙잡히면서 촉발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헌트는 사건의 주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돼 징역 33개월형에 처해졌다.
‘요주의 인물’은 우편물도 특별 관리
남의 우편물 ‘훔쳐보기’도 당시 CIA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1953년 이래 CIA는 소련 및 동구권 국가로 들고 나는 우편물은 뉴욕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중국으로 들고 나는 우편물은 샌프란스시코 국제공항에서 각각 ‘내놓고’ 검열했다. 공개된 문서를 보면, CIA 요원들은 공항 우체국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 우편물 내용을 확인하고 촬영까지 했다. 또 검열을 거친 우편물은 따로 목록을 만들어 관리했으며, ‘요주의 인물’ 명단도 따로 만들어 ‘우편물 가공’의 속도를 높이는 등 체계적인 검열 작업을 적어도 20년 이상 장기간 벌인 사실이 공개된 문서에서 확인된다. ‘제3세계’ 군사독재 정권의 행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셈이다.
오랜 ‘가문의 보석’을 풀어놨으니, CIA가 숨겨둔 ‘가보’는 더 이상 없는 걸까? 9·11 동시테러가 몰고 온 광기가 만들어낸 숱한 ’희극’과 ’비극’을 되새긴다면 대답은 쉬워진다. 조작된 정보에 기반해 이라크를 침공했고,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선 온갖 고문이 자행됐다.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갇힌 ‘적 전투원’들은 재판 없는 영구 구금 상태에 놓여 있고, 유럽 각지에서 CIA가 불법 구금시설을 운영했다는 물증도 제시됐다. 게다가 ‘애국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수많은 자국민에 대한 도·감청을 밥 먹듯 해온 터다. 앞으로 20~30년 뒤쯤 CIA가 선보일 ‘가문의 보석 2’ 역시 ‘전작’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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