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살상을 계획했다는 종말론 저항세력에게 거둔 나자프 교전의 혁혁한 ‘성과’…아슈라 기념해 단체 순례여행을 떠난 마을주민 향한 ‘우발적 학살극’ 가능성 제기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1월28일 이라크 중부의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 인근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cnn> 등 외신들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전투 결과 미군의 화력 지원을 받은 이라크군이 저항세력 260여 명을 사살하고, 500여 명을 사로잡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수많은 교전이 이어져온 이라크의 최근 몇 년 사이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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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당국의 공식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전투는 1월28일 이른 아침에 시작됐다. 종말론을 믿는 저항단체 ‘천국의 전사들’(준드 알 사마) 소속 무장대원 500여 명이 나자프 외곽의 한 과수원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 이라크군이 이들을 포위한 뒤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저항세력의 공세가 워낙 격렬해 초기엔 밀리는 듯했지만, 미군이 탱크와 공격용 헬기·전폭기까지 출동시켜 화력 지원에 나서면서 전세는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이라크군 당국자는 “교전이 끝난 뒤 확인한 저항세력의 주검만 250구를 넘어선다”며 “숨진 이들 가운데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등 외국인도 많았다”고 밝혔다.
테러 목표에는 시아파 최고지도자도 있다?
특히 충격을 준 것은 ‘천국의 전사들’이 성지 순례에 나선 시아파들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슬람력 1월(무하람)의 열 번째 날인 ‘아슈라’(올해는 1월29일)가 되면, 1300여 년 전 수니파와의 전투에서 무참히 숨진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 이븐 알리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시아파 수십만 명이 나자프 인근의 또 다른 성지인 카르발라로 모여든다. 이들을 겨냥한 테러가 실제 벌어졌다면, 이미 불을 뿜고 있는 수니-시아파 간 유혈사태는 극한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테러 목표에는 시아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시스타니도 포함돼 있었단다. 시스타니를 포함한 나자프의 고위 성직자(울레마)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구세주 ‘마흐디’의 재림을 알리는 전조이기 때문이란다. 이라크군 당국은 ‘천국의 군대’가 보유했던 자동소총 500정과 박격포·기관총·러시아제 로켓 등을 현장에서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또 압둘 후세인 아브탄 나자프 부지사는 이날 교전으로 “(저항세력) 300명 이상을 사살하고, 부상자 200여 명을 포함해 650여 명을 생포했다”며 “이라크군 쪽 사상자는 사망 11명에 부상자 30명가량”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라크군이 최근 들어 거둔 최대의 ‘전과’인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자프 교전사태에 대한 이라크 당국의 설명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교전사태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천국의 전사들’이란 단체의 실체조차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라크군의 공식 발표가 사실이라면, ‘천국의 전사들’의 전투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미군과 이라크군의 정보망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그토록 막강한 화력과 전투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은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수니파 단체인 알카에다는 시아파를 이단시해 배척한다는 점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문은 쌓여만 가는데 이라크 당국은 사건 발생 이후 줄곧 교전 현장은 물론 나자프 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부상자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생포했다는 ‘저항세력’이나, 압수했다는 그들의 무기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정보’가 익명의 그늘에 숨은 채 계속해서 흘러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교전사태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학살극일 가능성이 있다”는 영국 의 보도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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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나타나준 ‘종말론추종세력’
는 1월30일치에서 “나자프 교전사태에 대한 이라크 당국의 공식 발표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의도치 않았던 우발적 학살극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이 이라크 현지 언론과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나자프 교전사태의 ‘진상’은 이렇다.
1월28일 일요일 새벽 200여 명의 순례자들이 아슈라를 기념하기 위해 나자프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자프와 남부 디와니야 사이에 위치한 마을에 사는 하와트마(또는 하와팀) 부족 출신이다. 이들의 순례 행렬이 나자프 인근 ‘자르가’란 마을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6시께다. 행렬의 선두는 하와트마 부족의 지도자인 하즈 사아드 니이프 하테미와 그의 부인이 탄 1982년식 도요타 자동차가 이끌었다.
그런데 행렬이 마을 들머리에 있는 이라크군 검문소에 다다를 무렵 사단이 벌어졌다. 이라크군이 이들을 겨냥해 무차별 발포를 했고, 하테미 부부와 타고 있던 차량의 운전기사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분노한 하와트마 주민들은 검문소를 향해 대응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치안 상황 탓에 장거리 여행에 나선 주민들은 총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교전이 벌어지자 자르가 마을에 사는 카자일 부족이 급히 중재에 나섰지만, 오히려 총격전에 휘말리게 됐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이라크 군경은 상부로 연락을 취했다. 고성능 화기로 무장한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였다. 즉각 병력이 증강됐고, ‘저항세력’이 돼버린 주민들을 부근 과수원으로 몰아간 뒤 포위했다.
“테러범들은 들어라. 즉각 항복하지 않으면 공습을 개시하겠다.” 잠시 뒤 미군 헬리콥터가 날아와 공중에서 전단을 뿌려댔다. 부족민들은 미군 헬기를 향해 발포를 했고, 얼마 뒤 헬리콥터가 추락해 타고 있던 미군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 헬리콥터의 추락 원인이 주민들의 총격 때문인지, 지상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아군 쪽의 오발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윽고 미 전폭기의 공습이 이어졌고, 1월29일 새벽 4시께 교전사태가 일단락됐다. 는 “교전에 연루됐다는 종말론 추종세력도 기실 자르가 마을에 기반을 두고 있는 단체”라며 “나자프 시 당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이 단체가 교전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 훌륭한 핑곗거리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라크 일간 도 1월31일치 인터넷 영문판 기사에서 “이라크군이 공격한 대상이 아슈라를 기념하기 위해 순례 여행에 나선 시아파 부족민들로 보인다”며 “순례자들이 무장을 한 이유는 나자프 인근 지역의 치안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은 또 ‘천국의 전사들’은 이라크 남부 최대 도시 바스라에 기반을 둔 단체로, 현지에선 ‘타이파트 마흐디야’(메시아 단체)로 알려져 있다”며 “이 단체는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선동일 뿐이라고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어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와 싸웠는지, 그들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천국의 전사들’이 세뇌를 당한 여성과 어린이까지 포함된 종말론 추종 집단이며, 나자프의 고위 성직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살된 이들은 물론 체포된 이들 가운데도 외국인이 포함돼 있었다는데, 당국은 왜 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걸까?” 이라크의 대표적 블로그 가운데 하나인 ‘힐링 이라크’의 지적이다. 와 의 보도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직까지 없다. 진실은 때가 되면 스스로를 드러낼 게다.</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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