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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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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선 공부하면 바보?

등록 2007-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카지노 업체 앞에서는 중학교를 나오든 대학교를 나오든 모두가 ‘평등’…평균 2배 임금으로 유인하니 카지노 학교는 최고 학부, 학교는 폐교 직전

반환 7주년 마카오 리포트 ③

▣마카오=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 대륙 대학생들은 정말 ‘가련한’ 청춘들이다. 4년 내내 죽자 사자 공부만 해도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그나마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더 팍팍해진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도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중국 젊은이들에게 대학은 사실상 ‘필수’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한국도 중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도 대학 졸업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인생의 출발점부터가 다르지 않는가. 하지만 마카오는 다르다. 마카오 젊은이들은 굳이 대학에 가려고 ‘용’을 쓰지 않는다. 설령 대학에 간다고 해도 ‘학문’을 즐기지는 않는다. 이들이 즐기고 소비하는 것은 ‘젊음’ 그 자체다. 행복하겠다고? ‘글쎄다~!’

‘딴따라’로 변한 학생들

“마카오 대학생들 진짜 공부 안 해요. 그저 건성건성 학교에 나와서 대충 수업이나 듣고 졸업장만 간신히 따는 거죠. 그나마 졸업이라도 하려고 맘을 먹는 학생들은 좀 나은 편이고 상당수 학생들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휴학을 하고 카지노로 돈 벌러 가요.”

마카오대학의 한 교수가 털어놓은 푸념이다. 마카오대학은 마카오 최고의 국립대학이다. 마카오 최고의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사실은 마카오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사회적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들 역시 “공부가 밥 먹여준다”며 학생들을 설득할 구실을 대지 못한다. 마카오에서는 이제 공부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카지노 기술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은 마카오 고등학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내년에 졸업하면 제발 카지노에는 취직하지 마라.’ 위안 선생은 9월 새 학기가 되자 고3 학생들에게 이렇게 힘주어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교실 안의 몇몇 책상이 또 ‘텅’ 비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업 뒤 그는 동료 교사한테서 또다시 몇몇 학생들이 자퇴를 하고 카지노로 돈 벌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안 선생은 망연자실해져서 ‘마카오에서 선생질 해먹기 진짜 힘들구나’라고 한탄을 했다.”

마카오 관련 특집 보도를 한 중국 대륙 시사잡지 이 소개한 일화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마카오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교사든 대학 교수든 간에 마카오에서는 ‘정말로’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듯하다. 거꾸로 마카오 학생들도 공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학벌을 인생의 ‘보증수표’처럼 여기는 중국 대륙이나 한국과는 달리 마카오에서 학벌은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2년 카지노 산업이 개방된 뒤의 일이다.

중학교를 나오든 대학교를 나오든 카지노 업체에서는 모두 ‘평등하게’ 대우해준다. 오히려 대학을 나와서 은행 직원이나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중학교만 졸업해서 카지노에 취직하는 게 월급은 배가 더 많다. 마카오 대학생들이나 고등학생들이 ‘딴따라 학생’들로 변한 것은 순전히 그들 탓만은 아니다.

‘기웃거리던 곳’에서 최고 직장으로

마카오 시내 타이파 지역에 위치한 카지노 인재 양성 학교.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학구열’이 느껴진다. 마카오대학 강의실 안에서도 보지 못했던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이곳 카지노 학교에서는 도처에서 번뜩이고 있다. 마카오 이공대학과 마카오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카지노 인재 양성 학교는 지금 마카오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 학부’다. 이곳에서 3~5개월 정도 ‘공부’를 하고 졸업장을 받으면, 거의 100% 카지노 업체에 취직이 된다.

이곳에서 각종 카지노 게임 방법을 공부하고 있는 허쉐이(31·여)는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카지노 학교에 등록했다. 금융 계통 직장에서 일했다는 그는 대학도 ‘번듯하게’ 나온 사람이다. 그가 카지노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장래성과 돈” 때문이다. 그는 “지금 마카오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카지노로, 앞으로 전망도 아주 밝다”며 “임금도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2~3배 많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카지노업에 종사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허쉐이는 “카지노 산업이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카오에서는 카지노에서 일하는 것이 그다지 큰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나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곳 정도로 인식됐다는 게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졸자들도 카지노에 취직하기 위해 카지노 학교에 등록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젠항도 그중 한 명이다.

“얼마 전에 대학을 졸업했다. 다른 일자리도 구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이곳을 선택했다. 여기서 전문 기술을 공부해서 졸업장을 따면 비교적 쉽게 카지노 사업장에 취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카지노 업계는 기회가 많다.” 카지노 학교에는 젠항과 같은 대졸자들이 전체 학생 가운데 20%를 넘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카지노가 아닌 직장에서 받는 초임은 약 7천~8천홍콩달러(약 83만~95만원) 수준이다. 반면 카지노에 취직을 해서 받는 초임은 대략 1만2천~1만4천홍콩달러(약 143만~167만원)다. 전체 마카오 사람들의 평균 임금 수준이 약 5900홍콩달러(약 70만원)임을 감안하면 카지노에서 받는 월급은 이들의 2배 이상이나 되는 셈이다.

2002년 카지노 산업 개방 이후 카지노 종사자들에 대한 규정도 변했다. 이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 카지노 학교를 이수한 사람이라야 카지노업에 종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카지노 학교 수료증만 있으면 누구나 취직이 가능하다. 인력 부족 사태를 메우기 위해 문턱을 낮춘 것이다. 게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들이 들어오면서 ‘스카우트 전쟁’까지 벌어지다 보니 임금과 복지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정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카지노 산업이 개방된 뒤로는 마카오에 있는 중소기업들이나 심지어 은행 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잘 다니던 사람들도 임금을 2~3배 더 준다는 말에 죄다 카지노로 이직을 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마카오에선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돼도 중학교만 마치고 카지노에 취직한 사람보다 임금이 형편없이 낮은데 누가 기를 쓰고 공부를 하려 들겠는가?” 마카오에서 7년 이상을 거주한 한 동포는 “지금 마카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폐교 직전”이라고 말했다. 교실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모두 카지노로 몰려간 탓이다. 카지노 경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마카오 정부로선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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