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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EU가입, 일단 정지!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럽연합, 터키의 ‘인권·키프로스 문제’ 지적하며 가입 협상 일부 중단…가입 포기 기대하는 EU와 선거 앞둬 바쁜 터키, 당분간 ‘숙고의 시간’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지난 12월14~15일 이틀 동안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을 일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선 35개 협상 항목 가운데 8개 항목의 협상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터키 쪽에 큰 실망을 안겨줬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엔 11월8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터키 관련 보고서가 버티고 있다.

고문·소수민족 억압·키프로스 외면…

보고서가 지적한 협상 중단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권에 관한 것이다.

보고서는 터키 정치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의회 인권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전히 고문이 자행되고 있는데다 비무슬림의 재산권 보장에 제약이 있고,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점 등도 꼬집었다. 두 번째는 터키가 여전히 키프로스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즉 관세동맹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인 키프로스(그리스계)에 항구와 공항을 모두 개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터키는 오히려 “유럽연합이 터키계 키프로스에 취하고 있는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며 완강히 버티다, 요구 마감 시한인 12월6일이 다 돼서야 항구와 공항 1곳씩을 개방하겠다는 재협상안을 내놨다. 하지만 유럽연합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터키가 유럽연합과 처음 ‘제도적 관계’를 맺은 것은 1964년에 발효된 ‘앙카라 협정’ 이다. 이 협정으로 터키는 유럽경제공동체(ECC)의 협력국으로서 관세동맹에 참여하게 됐고, 이어 관세장벽과 수출쿼터제를 폐지하기로 해 회원국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1980년 터진 쿠데타는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1983년에야 양자 관계를 복원했고, 1987년엔 유럽공동체(EC) 회원국 후보 신청서를 냈으나 ‘협상 개시 불가’라는 통고를 받았다. 1997년에는 키프로스 등과 함께 다시 가입을 타진했으나 역시 고배를 마셨다.

터키가 가입 협상에서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된 것은 2002년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다.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간 총리는 개혁을 표방하며 ‘코펜하겐 기준’(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표준 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적으로는 △사형제 폐지 △고문 금지 △쿠르드족 인권보장 등을 약속했고, 경제적으로는 연평균 75%에 이르던 만성 인플레이션을 6%대로 안정시켰다. 2004~2005년엔 경제성장률이 7%에 달해 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을 3배가량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자 집행위원회는 유럽 정상들에게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을 권유하게 됐고, 2005년 10월부터 양쪽은 협상에 나서게 됐다.

터키가 회원국이 될 경우 유럽연합이 얻게 될 이익은 결코 적지 않다. 9·11 사태 이후 안보의 중요성이 커진 유럽에 터키는 이슬람은 물론 러시아와 이란을 견제해줄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터키는 또 카스피해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는 가스 파이프라인, 즉 바쿠-트빌리시-세이한을 연결하는 유럽 쪽 관문으로서 에너지 확보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슬람 국가와의 화해라는 측면에서 얻게 될 ‘도덕적 이익’도 크다.

“터키는 유럽이 아니다”

물론 적지 않은 부작용도 우려된다. 일단은 터키인 이주자 행렬이 문제다. 터키 인구의 25.5%는 15살 미만 인구다. 국경이 개방됨으로써 서유럽으로 몰려올 청년 구직자의 행렬을 보는 유럽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미국과 너무 밀착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터키에 미국은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다. 7천만 명이 넘는 터키의 거대한 몸집도 부담스럽다. 당장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럽의회 의원들을 배출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유럽의회의 판도 변화에도 큰 변수가 될 것이 자명한 탓이다.

하지만 터키의 가입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사실 모순적이다. 여지껏 회원국의 가입 여부는 가입 조건에 부합하는가 하는 기술적 문제가 핵심이었지, 가입 이후의 득실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가입 득실을 따진다는 것은 터키가 기존의 회원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결국 ‘정체성’이 문제인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 되고 말았지만, 유럽연합이 기대하는 것은 터키가 스스로 회원국 가입을 철회하는 것이다.

전 프랑스 대통령이자 유럽헌법회의 의장을 지낸 지스카르 데스탱은 2002년 “터키는 다른 문화, 다른 사고,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터키는 유럽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역시 “터키의 가입엔 회원국들의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며 간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터키가 회원국이 되기보다는 ‘특별동반자국가’가 돼주기를 바란다”며 완곡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에르도간 총리는 터키 의회 연설에서 “이번 결정은 유럽과 이슬람 국가 간의 관계를 심각한 시험대에 올려놓는 일이 될 것”이라며 “키프로스 문제는 유엔에서 해결할 일이지 유럽연합에서 논의할 일이 아니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여전히 따갑다. 야당의 총공세는 물론이고, 2004년에는 국민의 3분의 2에 이르렀던 유럽연합 가입 지지가 지금은 3분의 1로 줄어든 것도 부담이다. 2008년 11월 총선을 치를 에르도간 총리로선 언제까지나 유럽연합의 눈치를 볼 수만도 없다.

피할 수 없는 ‘숨 고르기’

부분적이나마 가입 협상 중단은 양쪽 모두에게 숨 고를 시간을 줄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확대에 대한 피로감”을 언급하며 유럽헌법이 비준되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확대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도 내년 총선까지는 국내 정치에 힘써야 할 처지다. 당분간 지속될 협상 중단의 시간은 터키나 유럽 모두 내부 문제에 힘쓰면서 협상 전략을 가다듬는 ‘숙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남·북 키프러스 ‘원한의 역사’

독립운동·쿠데타·분단… 그리스계와 터키계의 골깊은 갈등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던 키프로스를 1571년 점령해 400년 이상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터키를 대신해 1925년부터는 영국이 지배했다. 그리스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저항군이 조직돼 독립운동이 가열됐고, 1960년 마침내 독립을 이뤘다. 그사이 터키계 주민들은 영국군에 가담해 그리스계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이것은 지금의 원한 관계의 한 원인이 됐다.
주민의 78%가 그리스계, 18%가 터키계였기에 그리스계 대통령과 터키계 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독립 정부가 세워졌다. 하지만 두 지도자가 서로에 대한 거부권을 가짐으로써, 두 집단 간에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1967년엔 그리스계 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리스계가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자 터키계 주민들의 요구로 1974년 터키군이 북키프로스를 장악해 터키계 키프로스 정부를 세움으로써 분단국이 됐다.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집권 뒤 키프로스의 재통일 문제를 유엔에 맡기자고 줄곧 제안해왔다. 2004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아난 플랜’에 따라 ‘통일 키프로스’의 모델을 스위스 연방제에서 찾을 것을 제안했다. 즉,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연방의 권력을 유지하면서 최소 권력의 중앙정부를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터키계의 65%가 찬성을 한 반면 그리스계는 75%가 반대를 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스계 남키프로스는 정식 국가로 인정받아 유럽연합 회원국이 됐지만, 북키프로스는 아직 국가로 승인조차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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