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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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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선 한판 ‘당기고 싶다’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반환 7년 만에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도박 도시로 급성장…2002년 시장 개방·2003년 자유여행 허용한 중국 정부의 전략이 적중

12월21일로 중국 반환 7주년을 맞는 마카오의 변화가 숨가쁘다. 카지노 산업 개방과 함께 도시 전체가 흥청거리고 있다. 중국 본토 관광객 1천만 명 시대, 반환 기념일을 앞두고 현지 취재를 다녀온 박현숙 전문위원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반환 7주년 마카오 리포트 ①

▣ 마카오=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고스톱은커녕 아주 간단한 전자오락도 할 줄 모른다. 그렇기에 심심풀이용 오락이나 취미 도박 세계의 ‘재미’를 알 길이 없다. 뒤늦게 컴퓨터 고스톱에 ‘맛’을 들인 이들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눠 “세상에는 컴퓨터 고스톱을 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더 늦기 전에 인생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라”고 컴퓨터 고스톱을 배울 것을 ‘강추’했지만, 지금까지 그 꼬임에 한 번도 ‘동’한 적이 없다.

1인당 국민소득, 홍콩을 추월할지도

하지만 마카오 카지노는 달랐다. 인간의 부류를 ‘마카오 카지노에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으로 나누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춤추는’ 분수와 우아한 조명이 밝혀진 초현대식 인테리어 건물의 마카오 카지노에 들어서는 순간 한판 ‘당기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일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본 드라마 에서의 장면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다. 상품은 포장을 해야 가치를 발휘하듯이 도박도 현대식 카지노 산업으로 포장되면 얼마든지 폼나고 멋지게 즐길 수 있는 고급 레저문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박 예찬’을 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우리나라 종로구보다 조금 더 큰 도시가 카지노 산업 하나로 전 국민이 ‘배 두드리고’ 살게 된 마카오의 변화에 그만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 얘기다. 참고로 마카오는 일본과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 조만간 홍콩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중국 정부의 분석이 나온 바 있다.

1999년 12월21일,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마카오는 반환 7년 만에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도박 도시’가 됐다. 마카오를 ‘동양의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의 도박 도시’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은 단연 중국 대륙인들이다. 7년 전,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았다고 기뻐했던 중국인들은 지금 마카오를 향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중국인들은 마카오에 주로 ‘카지노 관광’을 하러 온다. 여기에다 전통적으로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도박 기질’을 간파한 라스베이거스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마카오는 지금 황금알을 낳는 노다지 땅으로 변했다.

“축하합니다. 당첨이 되셨습니다. 빵빠라 빵~.”

올 9월, 마카오에 문을 연 라스베이거스의 유명 카지노 업체 ‘윈’. 들어선 지 5분도 안 돼 누군가 ‘당첨’이 됐다는 안내방송이 요란하게 나온다. 중국인들로 보이는 서너 명의 남녀가 손뼉을 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마카오에 놀러왔다가 재미 삼아 들렀다는 이곳에서 운 좋게 당첨이 됐단다. ‘진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라며 벌어진 입들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90% 이상이 대륙 관광객

15분 간격으로 ‘춤추는’ 음악 분수 옆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도 “상금 150만위안의 주인공이 오늘 밤 드디어 탄생했습니다!”라는 알림광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떼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호객 행위성’ 광고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봤지만 마카오 카지노에 자주 온다는 ‘꾼’들의 말은 달랐다. “마카오 카지노는 그 확률이 50:50으로 아주 ‘공정’하다”는 게다. 절반의 ‘성공’ 확률 때문에 한번 마카오 카지노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제 발로 계속 찾아오게 돼 있다. 마카오 카지노에 중독된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대륙인들이다. 마카오 신세기호텔 고객담당 직원은 “손님의 90% 이상이 대륙 관광객”이라며 “매일 500개의 객실이 꽉 차고 있으며, 대륙 관광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카지노 오락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카오에 중국 대륙인 관광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 중국 정부가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일부 지역 주민들에 한해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자유여행을 허용하고 난 뒤부터다. 마카오 여유국 국장을 맡고 있는 포르투갈인 안토니오는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에는 대륙에서 마카오를 찾는 여행객 대부분이 홍콩인들이었으나 반환 뒤, 특히 2003년 자유여행을 허가한 뒤로는 매월 평균 100만 명 규모의 대륙 관광객들이 오고 있다”며 “현재는 마카오 관광객의 70% 이상이 대륙 관광객”이라고 했다. 통계를 보더라도 지난해 마카오 총 관광객 수는 1871만 명이었는데, 그중 대륙 관광객이 1040만 명을 차지했다.

마카오 카지노 산업이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카오의 ‘밥줄’을 쥐고 있던 사람은 그 유명한 ‘도박왕’ 스탠리 호였다. 올해 85살의 고령인 스탠리 호는 마카오 카지노 산업의 전설이자 역사다. 얼마 전 사망한 홍콩의 ‘붉은 자본가’ 훠잉동 등과 합작해 1961년 마카오 카지노 독점운영권을 따낸 그는 1970년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카지노 오락장 리스보아를 개장했다. 그 뒤 그는 30년 이상을 마카오의 ‘도박왕’으로 불리며 마카오 카지노 산업을 독점했다.

마카오 행정부 산하 사회문화처의 한 공무원은 “스탠리 호가 정부에 낸 세금은 정부 세수의 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그가 없었다면 정부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행정부 내 공무원의 절대다수도 스탠리 호가 ‘키운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는 한때 마카오의 ‘실세 행정장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스탠리 호의 독점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2002년 4월1일, 마카오 정부는 카지노 산업에 대한 개방을 ‘선언’했다. 스탠리 호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카지노 산업을 개방한 것은 반환 뒤 중국 정부의 ‘의지’도 작용했다. 스탠리 호가 독점하던 마카오 카지노 이미지는 그동안 어둡고 불건전한 측면들이 많았다. 그래서 카지노 산업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고급 레저문화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자 ‘대외 개방’을 선택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도박왕 스탠리 호의 시대는 끝나고

2004년 5월, 마카오 최초로 라스베이거스 자본인 샌즈 카지노가 설립됐다. 샌즈는 개장 1년 만에 투자자본을 모두 회수하고 지금 마카오 최대의 카지노가 됐다. 2년 뒤인 2006년 9월에는 역시 라스베이거스 자본인 윈 카지노가 문을 열었다. 샌즈와 윈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서로 불꽃 튀는 경쟁을 하는 상대다. 이들이 다시 마카오에서 ‘격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그 뒤 크고 작은 카지노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현재는 총 23개의 카지노 업체가 마카오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지금 마카오 코타이 지역의 금광대도에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6개의 카지노 업체가 새로 건설 중이다. 공사가 완공되면 이 지역은 아시아 최대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카지노 오락장 겸 복합 관광타운이 된다. 이 중에는 2007년 7월 개장 예정인 라스베이거스 최대 자본인 베네치안 마카오 리조트도 들어 있다. 마카오 대학에서 카지노 경제를 가르치는 쑤쯔위안 교수는 “라스베이거스 유명 카지노 자본들의 진출은 카지노 경영모델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왔고 그들의 브랜드 효과가 큰 작용을 하면서 마카오를 세계적인 카지노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그들은 카지노를 고급 레저산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마카오 경제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카지노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공신들이라는 것이다.

스탠리 호의 리스보아도 속속들이 몰려드는 라스베이거스의 거대 경쟁상대들과 맞서기 위해 지금 시내 중심가에 신 리스보아 카지노 호텔을 ‘맹렬히’ 건설 중이다. 바야흐로 마카오는 지금 카지노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쑤 교수에 따르면 현재 카지노 산업은 마카오 경제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정부 세수에서도 카지노는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카지노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총 세수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마카오에는 카지노를 포함해서 8대 주요 산업이 있지만 불과 5.1%를 점하는 제조업을 제외하면 다른 6개의 산업도 모두 카지노와 관련된 산업들이다. 마카오 인구 약 50만 명 중 실업률은 3.5%에 불과하다. 모두 카지노의 ‘힘’이다.

이렇게 마카오가 세계 최대의 카지노 관광 도시로 급성장하자, 가장 초조해하는 것은 홍콩이다. 상하이·선전·광저우 등 주변 대륙 도시들이 초고속 발전을 계속하면서 홍콩의 경제발전이 위협을 받고 있는데다, 마카오가 카지노 산업으로 1년 정부 예산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돈을 긁어모으는’ 형편이 되다 보니, 홍콩의 초조함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마카오 행정부 사회문화처의 한 공무원은 “홍콩은 몇 년 전부터 중앙정부에 카지노 산업 합법화 법안을 올리고 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이미 마카오는 홍콩의 경제발전 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속타는 홍콩 “카지노 합법화 해달라”

홍콩과 마찬가지로 대륙의 광저우나 저장성 등도 중앙정부에 카지노 설립 허가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역사적으로 도박 산업이 발전된 마카오를 제외하고는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한 태도다. 한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전국이 도박장화할 뿐 아니라 관료들의 부패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홍콩 입법위원들은 내년에도 중앙정부에 카지노 설립 허용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홍콩이 따라잡기엔 마카오 카지노 산업은 이미 너무 커져버렸다.

마카오 거리 곳곳은 지금도 죄다 공사판이다. 틈새가 있는 모든 곳에는 카지노가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 5년 이내에만 56개의 카지노 호텔이 더 세워질 예정이란다. 카지노를 만들기 위해 학교도 철거해야 할 판이라는 마카오 사람들의 말이 농담만은 아닌 듯하다.



역사가 만든 도박도시

19세기 광둥·1842년 홍콩의 도박금지령으로 반사 이익


1999년 12월21일 중국에 정식으로 반환된 마카오는 홍콩에 이은 중국의 두 번째 특별 행정구다. 우리나라 종로구보다 조금 큰 면적에 인구는 약 50만 명이다.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콜로아네 세 지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포르투갈은 16세기 중엽 작은 어촌이었던 마카오에 ‘물’을 얻는다는 구실을 대고 상륙했다. 1553년 마카오 사용권을 획득했고, 1887년부터 식민지로 편입해 통치했다.
18세기 중엽 서방의 한 선교사가 마카오에 거주하면서 남긴 마카오 인상기는 “방종한 욕망과 배반, 도박, 음주, 싸움, 사기와 살인 등 범죄가 판치는 도시”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박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광둥에서는 도박장을 여는 것을 엄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카오로 도박 원정을 왔다. 1842년 영국이 홍콩을 점령한 뒤 광둥 지역 사람들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홍콩에서 도박이 성행했다. 이에 홍콩 정부는 도박금지령을 반포했고, 홍콩 도박꾼들도 마카오로 몰려들기 시작해 마카오는 차츰 ‘도박도시’로 명성을 얻어갔다.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의 도박을 장려·합법화해 마카오가 도박도시로 자리잡는 데 큰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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